데스크칼럼
10억원 제재로 12조 상장을 막겠다는 착각
중복상장 세부기준 방향은 맞지만 절차 중심 한계
절차보다 주주보호 실질 따지는 거래소 심사 필요
공개 2026-07-08 08:52:37
이 기사는 2026년 07월 08일 08:52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10억원과 12조7500억원. 앞의 숫자는 이번 중복상장 세부기준이 정한 제재금 상한이다. 뒤는 2022년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공모로 조달한 금액이다. 규제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 조 단위 이익 앞에서 10억원짜리 제재는 비용에 가깝다.
 
(출처=연합뉴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7일부터 의견수렴에 들어간 '중복상장 원칙금지·예외허용' 세부기준은 방향 자체로는 옳다. 규율 대상을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에서 중복상장 전반으로 넓혔다.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영향평가, 주주보호 방안 마련, 주주소통과 동의 확인, 찬반 결의와 자회사 통지, 단계별 공시라는 5대 의무를 부과했다. 사외이사와 외부전문가가 3분의 2 이상인 독립 특별위원회 심의도 거치도록 했다. 상법상 주주충실의무를 상장 관문에서 구체화한 첫 시도라는 의미도 있다.

 

문제는 의무들이 모두 절차라는 점이다. 절차의 운명은 대개 정해져 있다. 바로 서류다. 주주영향평가서를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이 대신 작성하는 시장이 형성되는 순간, 평가는 이사회 면책 도구가 된다. 물론 공시로 끝나던 과거의 형식 규제와 달리 이번에는 상장 심사라는 관문이 걸려 있다. 하지만 결국 서류를 읽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주주충실의무라는 실체적 의무가 절차로 바뀌는 순간, 실체가 증발할 수도 있고 이를 막을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ESG 보고서가 그랬다. 

 

독립 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사외이사 3분의 2라는 구성 요건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사외이사를 뽑은 주체는 여전히 지배주주다. 상장사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거수기에 불과한 현실에서 특별위원회가 지배주주의 숙원인 자회사 상장에 제동을 걸리는 만무하다. 절차의 독립성과 판단의 독립성은 다른 문제다.

 

미미한 제재는 우려를 더 키운다. 조 단위 공모가 걸린 거래 앞에서 최대 10억원의 제재금은 억지력이 아니라 통행료에 가깝다. 1일 매매거래정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시장 경고라는 의미는 있다. 하지만 손실의 1차 부담은 위반 결정을 한 이사회가 아니라 일반주주 몫이 된다. 이 제도가 보호하겠다는 대상이 오히려 비용을 먼저 떠안는 구조다.

 

예외 문도 넓다. 금융당국은 물적분할 자회사에는 주주동의를 필수로 요구했다. 하지만 일반 자회사의 경우 주주동의가 없더라도 거래소의 개별심사를 거치면 가능하다. 대규모 시설투자나 연구개발 자금 조달 필요성이 강조되는 첨단산업일수록 예외 논리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물적분할 상장 논란의 원점인 LG에너지솔루션도 첨단산업의 대규모 시설투자 논리가 적용됐다. 예외가 원칙을 얼마든지 잠식할 수 있는 구조다. 제도 성패가 운용에 달린 이유다. 열쇠는 거래소가 쥐고 있다. 당국은 반기마다 심사 사례를 공개해 기준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이 경우 첫 심사가 시험대가 된다. 5대 의무를 서류상 모두 갖췄지만 주주보호의 실질이 약한 신청이 들어왔을 때 거래소가 돌려세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평가서 형식이 아니라 자사주 소각, 현물배당, 모회사 주주에 대한 실질 보상 같은 보호 방안의 효과를 따져 묻거나 판단 근거를 판례처럼 공개하기도 어렵다. 

 

예고기간은 오는 14일까지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다듬어야 할 것은 절차의 개수가 아니라 강제 장치다. 주주영향평가서 검증 기준, 특별위원회 판단 독립성, 주주보호 방안의 최소 요건, 위반 시 책임 소재 등이 더 구체화돼야 한다. 절차는 실체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릇만 빚고 내용을 채우지 못하면 주주충실의무는 또 하나의 체크리스트로 전락할지 모를 일이다.

 

유창선 금융투자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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