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흰우유 소비는 줄고 있지만 유업체들이 원유 구매량까지 그에 맞춰 줄이기는 어렵다. 판매량 감소에도 원유 매입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힘든 구조 때문이다. 결국 팔리지 못한 원유는 재고로 쌓이고, 그 부담은 유업체 수익성을 갉아먹는다. 해마다 '재고우유' 문제가 커지는 가운데 <IB토마토>는 국내 주요 유업체들이 잉여원유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보현 기자] 흰우유 공급 구조가 소비 감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 낙농가 보호를 위해 도입된 원유 쿼터제가 재고 우유를 만드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가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도 잉여 원유 해결 방안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마트에 진열된 흰우유. (사진=뉴시스)
소비는 주는데 원유는 그대로…20년 넘은 쿼터제의 한계
6일 낙농진흥회 통계에 따르면 생산과 소비는 모두 감소 추세다. 2020년 21억리터(20억8900만리터)에 육박했던 국내 원유 생산량은 2024년 19억4200만리터로 20만리터가 무너졌다. 4년 새 7.04%(1억4700만리터) 줄어든것이다. 시유 생산량 또한 2024년 15억4200만리터로 2020년(16억4800만리터) 대비 1억리터(1억600만리터) 이상 감소했다. 젖소 사육 마릿수 역시 23만9000마리에서 4년간 1만1000마리가 줄어든 22만8000마리다.
생산 기반 자체가 축소된 것과 달리 잉여 원유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저출생 등으로 흰우유 소비가 줄며 각 기업들은 재고가 된 원유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유업계에서는 생산량보다 원유 공급 구조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유 공급 구조는 2002년부터 원유 쿼터제를 활용한다. 해당 제도는 농가별 생산 물량을 배정하고 유업체가 일정 수준 구매한다. 원유는 저장 기간이 짧아 생산자가 가격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생산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문제는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식습관 변화 등으로 흰우유 소비는 꾸준히 줄고 있지만 원유 공급 구조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원유는 음용유 중심으로 배분되지만 시장에서 가공유제품 소비가 늘고 있어 수요·공급 구조가 엇갈린다. 즉, 공급 과잉 구조가 고착화됐다. 농림축산식품부도 2021년 '낙농산업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난 20년간 국내 원유 생산 구조가 소비시장 변화에 적시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재고 처리도 비용…유업계 "남는 원유가 가장 큰 부담"
원유 공급 과잉 구조는 유업체의 비용 부담으로 직결된다. 판매량이 줄더라도 원유 조달을 줄이기 어려워서다. 특히 국산 원유는 국제 시세 대비 가격이 높다. 국내산 원유 가공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수입산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공품 판매가 원활하지 않으면 분유 재고가 다시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분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비용 부담 또한 크다. 남는 원유는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분유 등 저장성이 높은 제품으로 가공해야 한다. 국산 탈지분유의 제조원가는 kg당 1만 3000~1만 4000원 수준으로, 국내 유통되는 수입 분유 가격(4500~5000원)보다 최대 약 3배 많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분유 재고는 지난해 12월 7098톤(t)에서 올해 지난 1만 1300t으로 약 59% 증가했다.
업계는 수요에 맞춘 생산 조절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소비량이 줄어도 원유 구매량을 즉각 줄일 수 없어 결국 가공용 전환이나 재고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특히 흰우유 재고는 분말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재고 처분 비용보다 분말로 전환 생산하는 비용이 더 들어 사실상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공급 과잉 구조에 골머리를 앓는 업계의 관심은 현재 진행 중인 원유 배분 협상으로 쏠리고 있다. 음용유와 가공유 배분 비율은 2년마다 협상을 통해 조정된다. 올해 협상 결과는 2027~2028년 원유 수급 운영 기준에 반영된다.
이해관계는 첨예하다. 유업체는 소비 감소에 맞춰 음용유 물량을 줄이고 가공용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농가는 안정적인 원유 생산 기반 유지를 우선시하며 평행선을 달린다. 협상 결과에 따라 향후 2년간 유업체들의 원유 재고 부담과 수익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정부가 2023년부터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 또한 근본적 해결책은 못되고 있다. 해당 제도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용도에 따라 가격을 차등 적용한다. 도입 이후 국산 원유의 가공유 활용 비중이 증가하는 등 일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음용유 중심의 공급 구조 자체는 유지돼 근본적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업전망 2024' 및 낙농산업 관련 연구자료를 통해 "음용유 소비 감소와 가공유 소비 증가라는 시장 구조 변화 속에서도 기존 원유 수급 체계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이후 가공유 활용이 늘어나는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만, 음용유 중심의 공급 구조가 유지되고 있어 잉여 원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이보현 기자 bob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