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정준우 기자]
HD현대중공업(329180)이 이번 하반기 토지 재평가를 통해 자본을 한층 더 두텁게 쌓았다. 선박 발주 감소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등 조선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이뤄진 조치로, 선별 수주 강화 등 경쟁력 유지를 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저수익 선박 수주를 무리하게 받지 않고 고수익 프로젝트 위주로 수주를 구성하려면 탄탄한 자본력이 필수다. 자본 수치가 탄탄할수록 자금조달이나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올해 LNG선 등 고수익 선박 발주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이 인도한 VLCC(사진=HD현대)
토지 재평가 통한 추가 자본 확충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3분기 울산 조선소 부지 등에 대한 토지 재평가를 통해 자본을 한차례 확충했다. 토지 재평가에 따른 장부가액 증가분은 2305억원으로, 해당 재평가 이익은 자본총계 항목의 기타포괄손익누계액에 포함된다. 여기에 기타 손익을 종합한 결과 현대중공업의 기타포괄손익누계약은 8543억원(지난해 말 기준)에서 1조241억원으로 뛰었다. 3분기 말 기준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토지의 평가액은 3조3448억원이다.
토지 재평가 이익은 실제 현금 유입과 무관하다. 다만, 자본총계를 늘려 재무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회계적인 재무개선만 이뤄질 경우 재평가 효과는 제한적이다.
다만, 현재 현대중공업의 현금창출력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회계적인 자본확충이 동반된다면 효과는 더 커진다. 단순히 자산 재평가만 할 경우 재무 개선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현금흐름 개선 등이 동반될 경우 재평가에 따른 지속성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재평가모형 도입 이후 규정상 재평가 주기는 3~5년마다 돌아온다. 기업이 공정가치 변동 정도가 커졌다 판단되면 적절한 재평가 시점을 정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과거 2009년, 2016년, 2020년에 토지 재평가를 실시한 이력이 있다. 2009년 토지 재평가는 상장 전 자본력 개선, 2016년은 조선 불황속 재무구조 개선 등이 재평가 원인이었다. 2016년과 달리 이번 자산 재평가는 지속성과 효과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자본확충은 선별 수주 전략 강화의 효과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조선산업의 표면상 실적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연간 수천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토지 재평가가 여기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이번 3분기 매출 12조3829억원, 영업이익 1조4648억원, 영업활동현금흐름은 3조7949억원을 거뒀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했을 때 세 항목은 각각 18.2%, 248.5%, 168.3%씩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수주 전망이 낙관적이라 보기 어렵다.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은 올해 신규 발주가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치 달성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LNG선 등 고수익 선박 신규 발주가 급감했다.
올해 1~10월 현대중공업은 다수의 컨테이너선, LPG선 등을 수주했다. 그러나 LNG선 신규 수주는 없었다. 지난해까지 받아 둔 48척의 LNG선만 있다. 이에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두고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소들이 구사하는 선별 수주 전략이 지속되려면 탄탄한 자본력이 필수인 것은 업계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주 경쟁 고조 전망에 재무 영향력 커질 전망
국내 조선업계는 대거 자본을 확충한 상태다. 수주 선박을 건조하려면 탄탄한 자기자본 능력, 자금 조달 역량 등이 요구된다.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내년도 신규 선박 발주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노후선 교체 잠재 수요는 있지만 국제해사기구의 탄소중립 조치 유예, 지속적인 해상운임 약세 등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역시 수주 감소의 여파를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쌓아 둔 일감이 넉넉하기 때문에 내년도 수주 부진에 따른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향후 선박 발주 감소가 지속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자본이 탄탄할수록 자금조달이나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 등에서 유리하다. 금융권 지원도 재무상태가 우수한 대형 조선소에 몰리는 실정이다. 중소 조선소들이 공격적으로 수주 활동을 펴기 어려운 것도 자본 문제로 인한 RG 발급 제한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부채는 감소하고 있다. 계약 부채를 제외한 현대중공업의 3분기 부채총계는 4조4308억원이다. 지난해 말(5조9784억원)에서 1조원 이상 감소했다. 외부 자금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만큼 영업활동현금흐름이 확대되고 있고, 재무 건전성 강화 전략까지 더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타 조선소도 자본을 착착 쌓아가는 중이다. 삼성중공업은 결손금을 착실히 줄여나가고 있고,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편입 당시 조달한 신종자본증권와 유상증자로 자본규모를 5조2177억원(올해 3분기 별도 기준)까지 늘렸다.
한편 조선소 부지는 일반적인 토지 재평가 방식으로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 조선소 부지를 거래 사례도 거의 없어 참고할 수 있는 예시도 적고, 조선소라는 특수한 성격때문에 일반 용지와 동일선상에 놓고 가치를 평가하기도 무리가 있다.
이에 외부 감정평가법인은 인근 지역의 지가 상승률, 관련 산업 집적 및 자연환경 등 입지 조건 등 관측하기 어려운 요소의 가치를 반영해 가치를 평가한다.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표준지를 산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토지의 가치 상승폭은 감정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설비 개선 등에 따라 토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높아질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인 것이다. 토지 자체의 가치 평가가 가장 우선시되며, 설비 투자의 가치는 기계장치 가치 평가를 통해 획득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IB토마토>에 “IFRS 권고사안에 따른 3~5년 재평가 주기에 맞춰 계열사 전체가 토지에 한정해 재평가를 실시한 사안이라 특별한 목적이 있어 재평가를 실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