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SKC(011790)가 실적 부진에도 오히려 현금성자산 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매각과 외부 자금 조달로 영업활동현금 유출 방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실적 이외에 운전자본 관리까지 현금흐름에 부담을 주면서 당분간 현금흐름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SKC)
OCF, 작년보다 네 배 악화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C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활동현금흐름(OCF)은 –438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201억원과 비교하면 현금유출 폭이 네 배 가까이 확대됐다. 같은 기간 분기순손실은 –2207억원으로 집계됐다. 손익 기준으로도 적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목할 부분은 현금흐름 악화 속도가 손익 악화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영업손실이 확대되면 영업현금흐름도 함께 나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SKC의 경우 손익에서 발생한 적자를 넘어, 실제 현금 유출 규모가 –4387억원에 달했다는 점에서 ‘손익보다 현금이 더 빠르게 마르는 구조’가 형성된 상태로 분석된다. 이는 단순한 회계상 손실을 넘어 매출이 현금으로 전환되는 과정 자체가 막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현금흐름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운전자본 부담이 커진 탓이다. 올 3분기 기준 매출채권은 2678억원으로, 지난해 말(2182억원) 대비 약 500억원 가까이 늘었다. 매출은 발생했지만 그만큼 현금 회수가 지연됐다는 의미다. 재고자산 역시 같은 기간 2347억원에서 3134억원으로 큰 폭 증가했다. 판매로 이어지지 못한 재고가 쌓이면서 매입과 생산 단계에서 투입된 현금이 묶여버린 것이다.
현금흐름표의 운전자본 조정 항목을 보면 이 같은 문제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3분기에는 운전자본 조정 항목이 +753억원으로 영업현금흐름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지만, 올 3분기에는 –2089억원으로 급변했다. 매출채권 회수 지연과 재고 증가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영업활동에서 발생한 손익이 현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추가 유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현금유출에도 현금곳간은 ‘두둑’
영업을 통한 현금창출력이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SKC의 현금성자산은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해 말 4036억원이었던 현금성및현금성자산은 올 3분기 7935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유동성이 개선된 듯한 모습이지만, 이 같은 유동성 증가분이 영업활동에서 창출된 현금이 아니라 재무활동과 자산유동화를 통해 만들어진 점에서 시장의 우려가 적지 않다.
올 3분기까지 SKC의 재무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5414억원으로 집계됐다. 단기차입금과 장기차입금 증가, 사채 발행, 신종자본증권(영구교환사채) 발행 등이 현금 유입의 주요 원천이었다. 실제로 회사는 올해에만 두 차례 영구교환사채를 발행해 총 385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투자활동현금흐름에서도 자산 매각이 눈에 띈다. 회사는 매각예정자산 처분을 통해 올해에만 4191억원의 현금이 유입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수치지만, 여전히 영업현금흐름의 대규모 적자를 보전하는 핵심 재원이 됐다. 결과적으로 현금성자산 증가는 ‘영업에서 돈을 벌어서 쌓은 현금’이 아니라 ‘팔고 빌려서 쌓은 현금’인 것이다.
누적 손실이 자본에 미치는 부담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SKC의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말 6859억원에서 올 3분기 4933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익잉여금은 과거 벌어들인 이익이 누적된 수치를 나타내는 계정으로, 이 항목이 줄어든다는 것은 손실이 쌓이면서 과거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현금의 양은 늘었지만 질은 오히려 나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 차입과 자산 매각에 의존해 유동성을 방어하는 구조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차입 확대는 이자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 자산 매각 역시 지속가능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SKC의 늘어난 현금성자산은 비주력 사업 매각 등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확보한 유동성은 재무건전성 개선과 글라스기판과 같은 신사업 추진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