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지스 경영권, 국경을 넘길 일인가
압도적 자금력 앞세운 차이나 머니의 공습
자본 논리 넘어선 '부동산 안보' 지켜야 할 때
공개 2025-12-10 10:27:12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0일 10:27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1위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이 ‘쩐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계 사모펀드(PEF)로 알려진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무려 1조1000억원을 베팅하면서 판이 급격히 커진 것이다. 토종 자본인 흥국생명과 한화생명(088350)이 필사적으로 맞서고 있지만,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계 펀드의 공세는 매섭다. 사실 기업 인수·합병(M&A)이라면 시장 논리에 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상이 우리나라 부동산 인프라와 공공자산을 쥐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진=이지스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은 단순한 빌딩 주인이 아니다. 부산항 신항 양곡 부두 개발에 선순위 대출자로 참여했고, 국가 핵심 인프라인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국책사업인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사업권도 확보했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을 장악한다면, 중국 자본은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식량 안보, 데이터 통신망, 전력망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지스자산운용이 구축한 ‘이지스 딜 보드’와 같은 데이터 분석 시스템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칫 한국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 공공 자산의 운용 현황이 고스란히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힐하우스는 단순 재무적 투자자(FI)가 아닌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다. 인수 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 개입은 필수다.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사회가 외인들로 채워지고, 한국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결정이 그들의 입맛대로 좌지우지되는 시나리오는 기우가 아니다.
 
힐하우스가 2023년 인수한 SK에코프라임의 사례도 서늘한 전조로 보인다. 힐하우스는 인수 직후 순이익의 4배가 넘는 금액을 배당으로 챙겨갔다. ‘먹튀’가 아닌 ‘자본재조정’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과도한 배당이 기업과 투자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연기금 6조원이 이지스자산운용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불편함을 자극한다. 국민의 노후 자금이 외국 자본의 수익률 제고를 위한 밑거름으로 쓰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과 한화생명 등 국내 기업들의 분투는 눈물겹다. 흥국생명은 사옥까지 매각하며 1조원이 넘는 실탄을 마련해 배수진을 쳤고, 한화생명 역시 오너 3세 경영의 사활을 걸고 있다. 단순 사업 확장을 넘어 국내 우량 자산이 해외로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방어적 성격도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자금력 앞에서 노력만으로 방어막을 치기엔 역부족이다. 
 
이제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갔다. 금융위원회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마지막 관문을 쥐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주주들이 외국자본 배제 입장을 보였던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금융당국은 이번 매각 건을 단순한 사적 계약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인수 주체의 자금 성격, 향후 경영 계획,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가 불황인 상황에서 중국계 PEF 운용사가 1조1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쏟아부으며 가져가려는 속내도 살펴야 한다. 그저 자본 수익만을 노린 게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 
 
장 레이 회장이 이끄는 힐하우스는 텐센트·바이두 등 중국 IT 공룡을 키워낸 굴지의 투자자본이다. 그 역량은 인정한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과 안보에 직결되는 자산의 통제권을 넘길 수는 없다. 자본에 국경은 없다고 하지만, 국익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가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땅과 데이터’ 일부를 함께 내어주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엄중하고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지금 막지 못하면, 나중에는 막을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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