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단축과 품질 균일화, 인력난 대응의 해법으로 주목받아 온 모듈러(OSC) 주택은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며 차세대 건설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 검증이 상당 부분 이뤄졌음에도 시장은 여전히 공공 발주에 의존한 채 산업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부 선도 기업들마저 사업 전략을 재조정하면서 시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IB토마토>는 공공 중심의 시장 구조와 민간 확산의 한계, 원가와 생산성, 대형 건설사의 사업 전략 변화, 전문업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모듈러가 건설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과제를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만큼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프로젝트별 단발성 발주가 이어지면서 높은 제조원가가 발생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모듈러가 진정한 제조업 기반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동화보다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포스코DX 산업용 로봇 현장 (사진=포스코DX)
모듈러, 제조업이 되지 못한 이유
13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모듈러 건축은 생산공장과 자동화 설비 구축에 막대한 초기 투자(CAPEX)가 필요한 대표적인 제조업형 건설산업으로 제조업 방식의 장점을 갖췄다. 대규모 초기 투자와 불확실한 수요 구조로 인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것은 단점이다. 공장식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생산시설이 최대 생산능력에 가깝게 가동돼야 하지만, 건설산업은 프로젝트 단위 발주와 경기 변동의 영향이 커 안정적인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 모듈러 시장이 공공 실증사업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민간 기업들이 생산공장과 자동화 설비 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안정적인 발주 물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생산라인 가동률이 떨어지고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뭉리가. 공장식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효과 또한 제한적이다.
자동화 흐름은
포스코(005490)그룹에서도 나타났다.
포스코DX(022100)와 포스코A&C는 모듈러 제작 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철골 조립과 용접 공정에 산업용 로봇을 적용하는 자동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포스코DX는 로봇자동화 시스템 설계와 엔지니어링, 포스코A&C는 제작공정 최적화와 생산 프로세스 검증을 각각 담당하며 모듈러 생산라인 고도화에 나섰다.
양사는 군산공장에 로봇 테스트 셀(Test Cell)을 구축해 생산성 검증(PoC)을 진행했다.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서산 모듈러 신공장에는 대블록 용접과 중조립 공정을 시작으로 산업용 로봇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생산 전 공정을 자동화해 공장 중심의 제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모듈러 생산 공정을 기존 건설 현장의 인력 중심 작업에서 공장 중심의 표준화·자동화 생산체계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철골 절단과 용접, 조립 등 반복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 편차를 줄여 제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포스코DX는 모듈러뿐 아니라 제철소와 이차전지 공장 등 제조 현장에서도 스마트팩토리와 산업용 로봇 기술을 적용해 온 만큼, 모듈러 역시 건설업이 아닌 제조업의 관점에서 생산체계를 구축하려는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다만 자동화 기술이 적용됐음에도 공공 실증사업 중심의 시장 구조와 부족한 발주 물량으로 생산라인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 기대했던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효과는 제한적이다는 평가 또한 나온다.
반복 발주 없는 제조업 한계 드러나
GS건설(006360) 역시 목조 모듈러 주택 전문 자회사 자이가이스트(XiGEIST)를 통해 공장 기반 주택 생산체계 구축에 나섰다. 충남 당진에 연간 300채 규모의 목조 모듈러 생산공장을 구축하고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B2C 시장에 진출했다. 공장에서 구조체를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팹(Prefab) 공법을 도입했다. 자이가이스트 건축사사무소를 통해 50여 개의 표준 모듈을 개발하고, 건축주가 온라인에서 공간 구성을 선택하면 공장에서 제작·조립하는 방식으로 주택의 표준화와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자이가이스트는 이후 춘천 리조트 직원 기숙사와 골프텔, 티하우스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며 단독주택을 넘어 B2B와 공공시장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다만 국내 모듈러 시장이 단독주택과 공공시설 중심에 머물면서 생산능력 대비 시장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공장 기반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제조업형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민간 공동주택 등에서 반복적인 발주가 이어져야 투자 효과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동화와 공장 구축만으로는 모듈러 산업이 제조업으로 안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제조업은 반복 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는 구조인 반면, 국내 모듈러 시장은 공공 시범사업과 단발성 프로젝트 중심으로 형성돼 안정적인 생산 물량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장을 세워도 지속적으로 가동할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내 모듈러 건축의 공사비는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보다 20~30% 높은 사례가 적지 않다. 공장 제작과 운송, 인증 비용, 맞춤형 설계 비중이 높은 데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시장 규모는 2003년 이후 연평균 35% 이상 성장하며 외형은 확대됐지만, 공공 시범사업과 특수시설 중심의 발주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선도업체들이 사업 전략을 수정하거나 관련 사업을 정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모듈러는 공장을 지었다고 제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는 물량이 있어야 제조업이 된다"며 "자동화 기술은 상당 수준 확보됐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발주 구조를 만드는 것이 산업 성장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모듈러 건축은 생산성 향상과 품질 균일화 측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생산설비 구축과 운영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지속적인 수요와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 확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