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만 큰 설계사)③파트너라더니 하청 신세…턴키·PF의 그늘
외형 성장했지만 현금 정체…설계사 재무부담 확대
설계 변경·사업 지연 시 추가 부담…현금흐름 압박
국토부도 문제 인식…'설계 주도형 턴키' 실험 나서
공개 2026-06-19 07:00:00
이 기사는 2026년 06월 17일 17:2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압구정·목동·여의도 등 대형 정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설계사와 건설사업관리(CM)·프로젝트관리(PM) 업체들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수주 확대가 곧바로 재무안정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계·프로젝트관리 업종은 인건비 비중이 높고 용역대금 회수 기간도 길어 외형 성장과 별개로 현금흐름 부담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비사업 중심 포트폴리오와 반도체·데이터센터·해외 인프라 등 하이테크 사업 중심 포트폴리오는 발주처의 신용도와 사업별 수익성, 대금 회수 구조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에 <IB토마토>는 정비사업 수혜로 주목받는 희림을 비롯해 한미글로벌, 포스코A&C 등 주요 설계·CM·PM 업체의 매출채권 회수기간(DSO)과 영업현금흐름, 발주처 신용도, 사업별 수익성을 비교해 수주 확대가 실제 수익과 현금 창출로 이어지고 있는지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설계사들이 턴키와 대형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에서 파트너가 아닌 대형 건설사의 하청업체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주 단계에서는 낙찰 경쟁을 위해 설계비를 낮추고,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설계 변경 반복, 추가 업무를 떠안기 때문이다. PF 부실이나 사업 지연이 발생해 용역비 지급마저 늦어질 경우 현금흐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설계·CM(건설사업관리)·PM(프로젝트관리) 업계에서 핵심 역할 수행에도 불구하고 비용만 떠안는 구조가 고착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저탄소 전원개발 및 설비개선 기술지원 용역 설계. (사진=도화엔지니어링)
 
매출채권·미청구공사 증가…드러난 턴키의 재무 부담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공공 SOC 턴키(도로·철도·교량·터널·항만 등)를 많이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주요 건축설계사 중 하나인 희림(037440) 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희림)의 경우 2025년 매출액은 2319억원으로 전년(2410억원) 대비 3.77%(91억원) 줄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40% 가량 급감했다. 지난해 희림의 영업이익은 91억원으로 전년(153억원)보다 40.17%(61억원), 당기순익은 전년(134억원) 대비 41.80%(56억원) 감소한 78억원이다. 
 
도화엔지니어링(002150)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도화엔지니어링 매출은 6985억원으로 전년 5828억원보다 19.85%(1157억원) 늘어났다. 영업손익도 134억원 적자에서 301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마찬가지로 턴킨 공사 수주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건화의 지난해 매출액은 2024년(2603억원) 대비 8.64%(225억원) 증가한 2827억원, 영업이익은 110억원으로 2024년 적자(-22억원)에서 흑자 전환했다. 
 
설계사들은 실적 행보와 달리 대형 턴키 사업은 현금 유입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사업 기간이 길고 정산 구조가 복잡해 수주 확대가 곧바로 현금 유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매출·영업이익이 증가했음에도 매출채권과 미청구공사 규모가 함께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외형 성장 이면의 재무 부담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작년 실적 개선을 보였던 도화엔지니어링이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의 지난해 매출채권 및 기타채권 총장부금액은 885억원으로 전년(494억원) 대비 79.11%(391억원) 급증했다. 단기미청구공사 역시 1189억원에서 16.07%(191억원) 늘어난 1381억원이다.
 
손상차손누계액의 경우 약 10배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채권 및 기타채권의 손상차손누계액은 345억원으로 2024년(36억원)의 9.57배 늘어났다. 실적 호조와 함께 수행한 용역과 설계 업무에 대한 채권 규모가 크게 증가해  채권 관리 부담이 커진 것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도 감소세다. 도화엔지니어링 연결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23년 291억원에서 2024년 214억원, 2025년에는 129억원으로 줄었다. 
 
건화와 희림 역시 매출채권 등 누적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건화의 경우 매출·미청구공사채권이 늘어났다. 지난해 회사의 매출채권은 222억원으로 전년(162억원) 대비 36.54%(60억원), 미청구공사채권는 전년(830억원)보다 1.76%(14억원) 증가한 845억원이다. 미청구공사채권에 설정된 대손충당금도 135억원에서 170억원으로 확대됐다. 
 
희림 또한 대형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회사의 매출채권 및 기타채권 총장부금액은 1484억원으로 전년(1483억원) 대비 7.32%(101억원), 손상차손누계액은 6.39%(22억원) 늘어난 369억원이다.
 
업계에서는 턴키와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설계 변경과 정산 지연, 발주처 협의 과정에서 미청구공사와 매출채권이 누적되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한다. PF 사업장이나 공사비 분쟁이 발생한 현장에서는 설계·CM·PM사가 사업 핵심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대금 지급 순위에서는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계사들의 재무 건전성을 계약자산과 매출채권의 현금화 능력이 좌우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입찰 땐 저가 경쟁, 위기 땐 대금 후순위…설계사의 이중고
 
업계에서는 이 같은 배경을 턴키와 대형 PF 사업 특유의 구조적 문제라고 꼽는다. 명목상으로는 건설사와 설계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파트너 관계지만, 실제 사업 운영 과정에서는 시공사가 가격과 계약 조건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계사와 CM·PM사는 입찰 단계부터 낮은 단가를 수용하고,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설계 변경과 추가 업무를 떠안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입찰 단계에서는 낙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용역비를 정부 기준요율보다 낮게 제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추가 수주 기회를 고려해 낮은 단가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주에 실패하면 입찰용 설계와 제안서 작성에 투입한 비용을 대부분 회수하지 못한다. 이 같은 구조가 설계사의 수익성을 입찰 단계부터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사업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부담은 이어진다. 인허가 과정이나 발주처 요구, 민원 등에 따라 설계 변경이 반복되지만 추가 용역비가 즉시 반영되지 않거나 계약 변경이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계사들은 추가 인력 투입과 재작업 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하게 되고, 투입 인력과 업무량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제자리인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업이익률은 낮아지고 미청구공사와 매출채권이 누적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해당 구조에 따른 문제점은 PF 자금 경색이나 공사비 분쟁 등 위기 국면에서 두드러진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정산이 지연될 경우 설계·CM·PM사의 기성금 지급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이미 수행한 용역비를 장기간 회수하지 못하는 사례 또한 발생한다. 
 
한 설계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설계사는 사업 초기부터 핵심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격 결정권이나 리스크 통제권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며 "결국 사업이 어려워질수록 부담은 설계사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라고 답변했다.
 
정부 역시 설계사의 역할과 보상 체계가 불균형하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국토교통부가 ‘설계 주도형 기술형입찰 시범사업’을 추진한 배경도 기존 턴키 구조에서 설계사가 사실상 시공사의 하청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토부는 설계사에게 사업 주도권과 의사결정권을 부여하고, 시공사는 설계사와 계약을 맺어 공사를 수행하도록 하는 구조를 가이드라인으로 마련해 소규모 공사부터 시범 적용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설계사에게 집중돼 온 가격·리스크 부담을 일부 완화하고, 대형 건설공사 생태계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설계사에 대한 일방적인 리스크 전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 또한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턴키 사업은 설계사뿐 아니라 시공사도 수주 단계에서부터 상당한 비용을 선투입한다"며 "설계 변경이나 사업 지연에 따른 부담 역시 특정 주체가 아닌 사업 참여자 전체가 나눠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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