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투자 자금이 신산업으로 빠르게 쏠리고 있다. 2025년 전체 벤처투자액 중 76.4%가 인공지능(AI)·바이오·방산 등 12대 신산업에 집중됐다. 500억원 이상 대형 투자도 모두 신산업에서 나왔다. 그러나 투자 확대가 곧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신산업 투자액 중 후속투자 비중은 90%에 달한 반면 신규 투자는 12% 수준에 그쳤고, 업력 3년 이내 기업 비중도 10곳 중 1곳이 채 되지 않았다. <IB토마토>는 신산업 투자와 후속투자 흐름, 정책자금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한계를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윤상록 기자] 지난해 국내 신산업 벤처투자 가운데 79.1%가 수도권 기업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12대 신산업 자금 5조2014억원 가운데 4조1000억원이 서울·경기·인천에 집중된 셈이다. 비수도권에서는 대전과 경남 등 일부 거점을 제외하면 자금 유입이 제한적이었다. 신산업 투자가 확대되고 있지만, 자금의 흐름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 창업·투자 인프라에 묶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한국벤처캐피탈협회)
신산업 투자 4.1조, 수도권에 몰렸다
14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따르면 2025년 12대 신산업 분야 벤처투자 가운데 79.1%가 수도권에 집행됐다. 신산업 자금 5조2014억원 가운데 4조1000억원이 ▲서울(2조6041억원) ▲경기(1조3939억원) ▲인천(1122억원)으로 몰렸다. 비수도권 신산업 자금 비중은 20.9%로 1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비수도권 신산업 투자액은 1조1000억원으로 전체의 20.9%에 그쳤다. 신산업 자금 10원 중 8원가량이 수도권으로 향한 셈이다. 인공지능·콘텐츠·반도체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분야일수록 연구개발 인력, 대기업 협력망, 투자자 접근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수도권 안에서도 투자 분야 집중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서울의 최대 투자 분야는 콘텐츠다. 경기 지역은 반도체 분야 투자 유치가 두드러졌다. 인천은 인공지능 분야 투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산업 가운데 자금 규모가 가장 큰 인공지능(1조3400억원)과 콘텐츠(1조1900억원) 분야 자금이 수도권 3개 지자체로 집중된 양상이다.
VC 본사와 운용 인력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점도 투자 편중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주요 투자사의 네트워크가 서울 강남권과 판교 일대에 집중된 상황에서는 지역 기업이 투자자와 접점을 만들기 쉽지 않다. 투자 검토와 실사, 후속 관리 과정에서 지리적 접근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신산업 인프라 자체가 수도권에 밀집한 점도 자금 집중을 가속화한다. AI 연구개발 인력이 서울·판교 일대에 모여 있고 콘텐츠 산업도 서울 중심으로 형성됐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경기 화성·평택을 축으로 확장된 점도 경기 지역의 자금 흡수력을 키운 요인이다.
중소형 VC들이 지역 벤처기업 투자를 원활히 하기 위해선 민간 자금을 매칭해야 하는 점도 벤처투자 수도권 기업 집중 현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은 업력이 길고 트랙레코드가 풍부한 대형 VC들에 비해 펀드레이징(자금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현재 모태펀드가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VC들에 통상적으로 출자하는 비율은 많아야 60~70% 수준인데, 이는 민간 자금 매칭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VC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측 주장이다.
한 VC 대표는 <IB토마토>에 "현재 시스템에선 중소형 VC들이 지역 소재 벤처기업을 발굴하는 게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라며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VC 대상 모태펀드 출자 비율을 9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전·경남 선전했지만 비수도권 격차 '뚜렷'
비수도권에서는 대전이 3913억원으로 가장 많은 신산업 자금을 유치했다. 신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 수준이다. 경남이 1071억원(2.1%)으로 뒤를 이었다. 대전과 경남을 제외하면 비수도권 지역 대부분의 신산업 투자 비중은 제한적인 수준이다.
대전은 생명신약 분야 투자 유치가 두드러졌다. 차세대 항체·약물 접합체 플랫폼 기업 트리오어 등 바이오 기업이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연구개발 인력과 자본이 함께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축적된 연구 인프라가 신산업 투자 유치 기반으로 작용한 셈이다.
경남은 방산·우주항공·해양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선박용 기자재 제조사 엠엔에스아이 등이 투자를 유치하면서 지역 제조 기반과 신산업 자금이 연결된 사례로 꼽혔다. 방산·우주항공·해양 분야는 다른 신산업과 달리 비수도권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분야다. 기존 제조업 기반과 항공·조선 클러스터가 있는 지역에서 투자 유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신산업 가운데 방산·우주항공·해양 분야 투자의 70%는 비수도권에서 유치되기도 했다.
지역 스타트업 투자 경험이 있는 한 중소형 VC 대표는 <IB토마토>에 "VC의 수도권 기업 투자 집중현상은 우리나라가 지식기반산업 중심이라는 점에 기인한다"라며 "적지 않은 지방 소재 IT·바이오 기업들이 투자 유치 목적으로 지방에 일시적으로 본점을 이전한다고 해도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꽤 많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VC 대표는 <IB토마토>에 "최근 VC 본사도 서울 강남권으로 집중되고 있다"라며 "젊은 인력들이 대체적으로 수도권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윤상록 기자 ys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