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지각변동)②브랜드보다 가격표…제약사 '진열 경쟁' 불붙었다
제약사 저가 라인 확대…약국 업계 긴장 고조
방한 외국인 871만명…창고형 약국 'K뷰티 성지' 부상
공개 2026-09-04 07:00:00
이 기사는 2026년 09월 02일 15:4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대량구매와 저가를 앞세운 창고형 약국이 최근 1~2년 새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기존 소규모 약국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국회는 지난 8월 약국 상호에 '창고'·'마트' 등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명칭 규제만으로 창고형 약국이 촉발한 대량구매와 가격경쟁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장은 약사업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량구매를 기반으로 한 유통 방식이 확산되면서 제약사-도매상-약국으로 이어지는 기존 의약품 유통질서는 물론 제약·바이오사의 영업·마케팅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IB토마토>는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의약품 유통시장과 제약·바이오업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그 파장을 다각도로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창고형 약국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며 제약사들의 일반의약품(OTC)·건강기능식품 마케팅 전략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대신 일반의약품(OTC)과 건강기능식품을 매대에 대량으로 쌓아두고, 소비자가 쇼핑카트를 끌며 직접 비교해 담는 방식이 확산하면서다. 처방 조제 대신 매대 위 진열 경쟁이 매출을 좌우하자, 제약사들은 할인 구조 손질부터 소포장·저가 라인 확대, 외국인 관광객 대상 마케팅까지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할인 구조 손질 나선 제약사
 
2일 업계에 따르면 녹십자(006280)의 종합비타민 '비맥스'와 해열진통제 '탁센' 등은 창고형 약국의 대표 저가 판매 품목 중 하나다. 약국 업계에서는 "제품보다 가격이 먼저 인식되는 상황이 됐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녹십자 측은 일반의약품 수량할인 정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있으며 창고형 약국과 일반 약국 모두 동일한 조건에서 거래해 특정 약국에만 더 낮은 가격을 적용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견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창고형 약국에서 일부 연고류나 인공눈물처럼 동네 약국 대비 절반 가까이 저렴한 품목도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약사서는 특정 품목이 '초저가 미끼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을 막고, 대량 매입처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약사가 아니라 매대 표시 가격이 구매를 결정짓는 구조에서는 오랜 시간 쌓아온 브랜드 신뢰도보다 눈에 보이는 가격표가 소비자 선택을 좌우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브랜드력보다 가격 비교가 우선되는 진열 방식이 제약사들의 저가·소포장 라인 확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상림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IB토마토>에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추세 속에서 의약품이나 건기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상태로 기존의 약국을 통해 유통되던 시기에는 정보를 약사 등 전문가 쥐고 있었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 등 SNS나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흐름 속에서는 제약사들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맞춤형 제품과 마케팅을 하는 경향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약사 또한 유사한 행보를 걷는다. 종근당(185750)은 다이소 전용 브랜드 '데일리와이즈'로 건강기능식품 6종을 내놨다. 동아제약은 배달의민족 B마트에 건기식 브랜드 '셀파렉스' 4종 1개월분을 5000원 균일가로 입점했다. 종근당건강도 B마트에서 비타민·유산균을 판매 중이다. 다이소 입점 업체는 지난해 2월 말 3곳·30여종에서 올 4월 말 22곳·160여종으로 늘었다. 창고형 약국 역시 이 같은 소포장·저가 전략이 향하는 또 하나의 채널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사진=연합뉴스)
 
외국인 '약국 투어'…K뷰티 연계 마케팅도
 
외국인 관광객의 '약국 쇼핑'은 창고형 약국 확산 동력의 하나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외국인의 의료 관광 지출액은 2020년 562억원에서 지난해 5618억원으로 5년 새 10배가량 커졌다. 지난 1~5월 누적 방한 외국인은 871만 7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1분기 외국인의 약국 소비는 전년 대비 196.8% 급증했다.
 
외인들의 약국 소비는 여드름 치료제와 흉터 연고, 기능성 화장품 등이 방한 필수 구매 품목으로 입소문을 타고 늘어났다. 명동·홍대 등 관광 상권에서는 '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를 뜻하던 '올다무' 대신 약국을 더한 '올다약'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런 흐름을 화장품 업종 성장 동력으로 본 증권가는 한국콜마(161890), 코스맥스(192820), 에이피알(278470), 파마리서치(214450) 등의 목표주가를 잇달아 상향했다. 일부 약국은 입구에 외국인 인기 상품 코너를 마련하고 영어·중국어·일본어 안내판과 외국인 전용 계산대까지 운영하며 인바운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제약사들의 비약국 유통 확대는 약사 단체와의 마찰로 이어져 왔다. 일양약품(007570)은 지난해 2월 다이소에서 건기식 9종 판매를 시작했다가 약사 단체 반발에 닷새 만에 철수했고,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약사회가 제약사의 다이소 진출을 조직적으로 막았다는 의혹에 대해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다.
 
CU는 올해 건기식 특화 점포를 4000개 이상 추가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GS25도 전국 5000여개 매장에서 건기식을 팔며 제약사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창고형 약국은 어디까지나 '약국'이라는 점에서 다이소·편의점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대량 벌크 공급계약을 통한 저가 판매라는 점에서는 기존 동네 약국·중소 유통업체와 비슷한 갈등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건기식이 약국에서만 사는 제품이라는 인식은 많이 바뀐 것 같다“며 ”편의점이나 다이소, 배달앱 등에서 필요할 때 사는 일상 소비재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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