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의 베팅)②총수 지분투자 논란…핵심은 '회사가 가진 기회였나'
최태원 실트론 지분 인수…공정위·대법원 판단 엇갈려
회사 보유 사업기회 범위가 사익편취 판단 기준
대림 GLAD는 사익편취 인정…투자 의사·절차 중요
공개 2026-08-31 07:10:00
이 기사는 2026년 08월 27일 17:31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대기업 총수들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개인 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회사와 총수가 함께 자금을 대 신사업의 위험을 나눈다는 점에서는 책임경영으로 볼 수 있지만 기업이 누릴 수 있었던 사업 기회의 일부를 지배주주가 가져가 향후 가치 상승의 과실을 개인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해상충 논란이 불가피하다. <IB토마토>는 총수의 사재 투자가 책임경영과 사익편취의 경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해상충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와 이사회의 역할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총수가 개인 자금으로 계열사의 신사업에 투자하는 행위가 곧바로 사익편취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공정거래법과 상법은 회사가 보유한 사업기회를 총수나 이사가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 법 위반 여부는 회사가 해당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는지와 이를 개인에게 넘기는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취득을 놓고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총수의 개인투자와 사업기회 제공을 구분하는 기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SK실트론)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두고 엇갈린 판단…공정위 제재 뒤집은 대법원
 
27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현행 공정거래법 제47조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특수관계인(총수일가)에게 이른바 사익편취라고 불리는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도 규제 대상이다.
 
상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 상법 제397조의2는 이사가 직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됐거나 회사가 수행 중이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를 이사회의 승인 없이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사업기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사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해당 이사와 이를 승인한 이사가 연대해 배상할 책임도 있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문제는 어떤 투자 기회까지 회사가 보유한 사업기회로 볼 것인지다. 최근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 반도체 등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반면, 단기간 내 수익을 내기 어려운 미래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회사와 총수 개인 간 투자 기회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투자 초기에는 사업성이 불확실하지만 향후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총수의 개인투자를 사업기회 제공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태원 SK(003600)그룹 회장의 SK실트론 투자다. 해당 사건은 지배주주의 사업기회 이용에 공정위가 제재를 가한 첫 사례이자 대법원이 사업기회 제공 행위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례다.
 
SK는 2017년 LG(003550)가 보유했던 당시 LG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한 뒤 추가로 19.6%를 확보해 총 70.6%의 지분을 보유했다. 나머지 지분 29.4%는 공개경쟁입찰에 부쳐졌고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이를 취득했다. 이에 따라 계열사와 총수가 같은 회사의 지분을 나눠 보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SK가 잔여 지분을 취득할 기회를 합리적인 검토 없이 포기하고 이를 최 회장에게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최 회장이 SK 내부 회의에서 개인의 입찰 참여와 관련한 검토를 지시했고, SK 임직원들이 거래 과정에 관여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대법원은 지난해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공정위의 제재를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회사가 해당 지분을 취득할 사업기회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었는지와 그 기회를 총수에게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사업기회 제공이 성립하려면 회사가 해당 사업기회를 규범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회사가 이를 보유했는지는 사업기회의 내용과 회사의 사업범위,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권리와 이익, 기대 및 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해당 계열회사가 소수지분 취득 기회를 규범적으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 기회의 포기가 적극적·직접적 제공과 동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심사해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사업기회 제공 여부를 관련 법령과 지침을 토대로 개별적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IB토마토>에 "사업기회 제공과 관련해서는 판단 기준을 담은 내부 지침이 마련돼 있다"라며 "사익편취 관련 법령과 해당 지침과 함께 대법원 판례 등 다양한 사안을 판단하고, 이를 기초해 향후 참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업기회 제공 여부가 관건
 
반면 총수 일가에 대한 사업기회 제공이 실제 사익편취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이해욱 DL(000210)그룹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했던 APD에 대림산업의 호텔 브랜드 GLAD 사업기회를 제공한 사건이 꼽힌다.
 
당시 대림산업은 2013년 자체적으로 호텔사업 진출을 추진하면서 GLAD 브랜드를 개발했다. 그러나 상표권은 대림산업이 아닌 이 회장과 장남 이동훈씨가 각각 55%, 45%를 보유했던 APD 명의로 출원됐다. 이후 그룹 호텔을 운영하던 오라관광이 APD와 브랜드 사용계약을 맺으면서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APD는 브랜드 사용권과 브랜드스탠더드, 마케팅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았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보유 상표권의 자산가치도 함께 상승했다.
 
공정위는 이를 대림산업이 총수 일가 개인회사에 유망한 사업기회를 직접 제공한 사례로 판단했다. 대림산업이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개발한 호텔 브랜드 사업을 총수 일가 회사에 넘긴 데다 이후 계열사가 해당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수익까지 지급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림산업과 오라관광, APD에는 총 13억 5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이해욱 회장과 대림산업, 오라관광은 검찰에 고발됐다.
 
결국 향후 총수와 계열사가 함께 신사업에 투자하는 사례에서도 회사의 투자 검토 여부와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 총수 개인의 투자 참여 방식 등이 사업기회 제공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요소로 다뤄질 전망이다. 특히 AI와 로봇, 바이오 등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에 그룹 차원의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총수 개인이 공동투자자로 참여하는 과정과 관련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상법 전문 한 변호사는 <IB토마토>에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계열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이 소수지분을 취득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사업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며 "회사가 해당 지분을 취득할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는지 등은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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