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세계 주요 자금이 추종하는 대표 국채지수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채권시장의 위상은 달라졌다. 수급 기반이 넓어졌고, 한국 채권시장과 정책 운용에 대한 신뢰도 역시 일정 부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지난 4월 편입 개시 전후 외국인 국고채 매수는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는 체결 기준 14조원을 넘어섰다. 장기 투자 성격이 강한 자금이 유입된다는 점에서 국채시장과 외환시장 안정에 보탬이 된다는 점도 일리가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를 정책 성과로 내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사진=연합)
하지만 WGBI 편입은 한국 국채의 수요 기반을 넓히는 일이지, 금리와 환율, 물가 위험을 해소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다. 4월 채권시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월초 국고채 금리는 미국과 이란 간 휴전 논의,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수, WGBI 편입 기대가 맞물리며 강세로 출발했다.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가 내려갔고, 통화스왑(CRS) 금리도 빠르게 하락했다. 지수 편입 효과가 시장 가격에 먼저 반영된 셈이다.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순 이후 중동 긴장이 다시 커지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길어지자 국제유가가 다시 뛰었다. 물가는 들썩이고 국고채 금리는 월초 강세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결국 4월 말 국고채 3년물은 한달 전보다 4.3bp 오른 3.595%, 10년물은 4.4bp 상승한 3.923%로 마감했다. WGBI라는 구조적 호재가 있었지만,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압력 앞에서는 금리안정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외국인 수급도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4월 외국인은 채권을 7조3000억원 순매수했다. 전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채는 8조4000억원 순매수했지만 통안증권과 기타채권은 팔았다. 보유 잔고는 341조3000억원으로 전월보다 9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순매수 규모만 보면 자금이 크게 들어온 듯하지만 만기상환과 포트폴리오 조정을 감안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결국 외국인 자금은 한국 채권시장 전체로 넓게 들어왔다기보다 WGBI 편입 대상인 국채 중심으로 선별 유입됐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기대감에 차 있던 회사채 시장도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다. 전체 채권 발행은 특수채와 금융채 증가로 소폭 늘었지만 높은 금리로 회사채 발행은 전월보다 3조1000억원 줄었다. 수요예측 금액도 1년 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요예측 참여율이 20% 넘게 높아졌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발행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계산된 참여율은 되레 시장 체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다. A등급과 BBB등급 이하 참여율이 1년 새 6배 가까이 벌어진 것은 기업 신용위험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국고채 수급 여건이 좋아졌다고 기업 돈줄까지 풀리지는 않는다. WGBI 자금은 유동성이 풍부한 국고채로 먼저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면 회사채 시장은 신용등급과 업종, 만기, 차환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 국고채 금리가 안정돼도 크레딧 스프레드가 벌어지면 기업의 실제 조달비용은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국채시장 선진화와 기업금융 안정은 같은 말이 아니다.
WGBI 편입은 한국 채권시장의 체급을 높인 사건이다. 동시에 글로벌 투자자의 상시 평가대에 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축'보다 '관리'가 필요한 때다. 예측 가능한 국채 발행과 일관된 재정 운용, 외국인 투자자의 결제·세제 불편 해소, 회사채 차환 리스크 점검이 동반돼야 한다. 지수 편입 효과가 국채시장에만 머물고 크레딧 시장과 실물경제로 이어지지 못하면 성과는 반쪽에 그친다.
외국인 자금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지만 채권시장은 여전히 유가와 물가, 환율과 신용위험 같은 변수에 더 크게 흔들린다. WGBI 편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국 채권시장이 새로 얻은 지위에 걸맞은 정책 운용과 시장 관리 능력을 보여줄 차례다.
유창선 금융투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