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자본 의무화)①의무는 무거운데…제도는 가벼운 현실
금융당국 초대형IB의 모험자금 공급 의무화 추진
제도 허점 파고들어 증권사 모험자본 투자 외면
"수익성·안정성 보장할 제도 보완 함께 이뤄져야"
공개 2025-08-25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8월 21일 16:33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으며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이하 종투사)의 발행어음 자금을 국내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은행 중심의 금융구조를 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번 조치로 자본시장의 중추인 종투사의 역할은 확대되지만, 동시에 리스크 관리와 자본 확충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IB토마토>는 이번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증권업계와 자본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금융당국이 증권업계 모험자본 의무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발행어음 인가 '초대형IB'가 모험자본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해야 하는 증권업계 입장에선 모험자본 투자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투자 금융사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일정 부문 보장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시화되는 모험자본 공급 의무화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서재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주재로 발행어음 인가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037620), NH투자증권(005940), KB증권 최고재무책임자 간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금융감독원)
 
간담회에서 금융감독원은 올 하반기 신규 종투사, 발행어음 지정·인가 심사 시 체적인 공급 계획에 대해 심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발표된 발행어음 조달자금의 25%를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하기로 한데 이은 추가 조치다.
 
서 부원장은 "초대형 IB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간 종투사의 모험자본 공급 실적이 미흡했다"라며 "금융감독원도 종투사를 비롯한 금융투자업권 전반의 모험자본 공급 역량 강화를 위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는 국내 증권사의 투자은행 역량 강화, 기업 창업과 성장을 목표로 지난 2013년 도입됐다. 하지만 종투사 총자산 중 모험자본 비중은 지난해 9월 기준 2.23%로 12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을 추진해 종투사 이상 증권의 발행어음 조달 투자 자금 중 모험자본 비율을 내년 10%를 시작으로 2027년 20%, 2028년 25%까지 단계적으로 늘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모험자본으로 분류되는 투자처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공급과 주식투자 △A등급 이하 채무증권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상생결제 및 벤처캐피탈·신기술사업금융사·하이일드펀드 등이다.
 
제도 허점에 모험자금 투자 '외면' 
 
금융당국이 현재 추진하는 발행어음 인가 증권사에 대한 모험자본 투자안은 일정 부분 강제성을 띤다. 이에 시장 일각에선 금융시장 현실을 모른 당국의 탁상공론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당국의 강력한 의지 표명은 사실 제도 허점을 이용해온 증권사 운영 행태에 대한 후폭풍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종투사는 발행어음으로 조달된 자금의 50% 이상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대출채권, 어음, 증권 등)에 써야 한다. 하지만 기업금융 자산 투자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이 없었다. 이에 종투사 제도 당초 목적과 달리 안정성이 보장된 대기업 계열사 중심의 투자가 이뤄졌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발행어음 인가 초대형IB의 발행어음 조달자금은 지난 2분기 기준 38조22억원이다. 이 중 채권의 경우 비우량 신용등급(BBB+, BBB)에 대한 투자는 4건(1094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도 올해 1분기 발행어음인가 초대형IB의 벤처·스타트업에 주식·채권·펀드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소기업 투자는 한국투자증권이 654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미래에셋증권(037620)이 400억원, KB증권이 100억원, NH투자증권(005940)이 300억원 수준의 투자를 진행했다.
 
수익성 보장 위한 제도 마련 필요
 
초대형IB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공급에 소극적인 이유는 투자 기대 수익 보다 높은 리스크 때문이다. 발행어음 상품 판매를 위해선 일정 수준의 수익 보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험자본 투자를 통해 기대되는 수익 대비 증권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보완책이 없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사진=IB토마토)
 
특히 이자 수익과 원금을 보장하는 채권과 달리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를 해야 하는 주식이나 지분 투자의 경우 자칫하면 원금 손실 가능성까지 있어 투자가 망설여진다.
 
이에 전문가들은 모험자본 투자자에 대한 일정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는 식으로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대표적인 제도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이하 BDC)다.
 
BDC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집해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에 집합적으로 투자하고 이익금 대부분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는 특수 목적회사(SPC)나 관련 신탁을 지칭한다. 부동산투자신탁 같이 유상증자나 신주인수권 분배를 통해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집한다.
 
BDC를 통한 모험자본 투자가 진행될 경우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으면서도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투자 비율, 모집 조건, 운용 주체, 세제 지원과 같은 실효성을 담보할 구체적 기준은 아직 논의되고 있지 않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B토마토>에 “금융권 모험자본 투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의 경우 안정성과 수익성 실현이 다른 투자처보다 열위에 있다”라며 ”이에 투자사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와 같은 제도 도입을 위해 국내 금융투자사의 경쟁력 증진과 참여 확대를 이끌어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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