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문턱 높였더니 바이오·AI만 남았다…하드테크는 '실종'
기술특례 60%…바이오·AI에 신규 상장 집중
하드테크 비중 58.3%→40%…반도체는 단 1곳
중국은 상장 문턱 낮춰 하드테크 성장자금 공급
공개 2026-09-04 06:30:00
이 기사는 2026년 09월 01일 18:41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송혜림 기자] 올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신규 상장이 바이오·인공지능(AI) 등 특정 업종의 기술특례 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규모 연구개발과 설비투자가 필요한 반도체·로봇·우주항공 등 하드테크 제조기업의 상장 비중은 지난해보다 크게 줄었다. 투자자 보호를 앞세운 국내 상장 심사 강화가 시장 신뢰는 높이고 있지만, 성장산업으로 흘러갈 위험자본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기술특례 비중 60%…바이오·AI로 쏠린 신규상장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8월 신규 상장한 기업은 총 25곳으로 집계된다. 지난해 신규 상장사인 48곳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중복상장 규제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상장심사 강화, 공모주 투자심리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IPO 시장 전반이 위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특정 업종에 대한 편중이 심화됐다. 전체 25곳 중 바이오·의료기기·헬스케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10곳이다. 올해 상장기업의 40%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레메디(387690), 인벤테라, 인제니아테라퓨틱스(950260) 등이 있다. 지난해 역시 바이오 기업들이 다수 상장했지만 자동차 소프트웨어, 이차전지, 화장품, 조선 등 상대적으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증시에 입성했다.
 
전체 상장기업 중 기술성장기업 특례를 적용받은 곳은 15곳으로 약 60%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서도 의료기기·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5곳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는 48곳 중 18곳만 기술특례로 상장해 비중이 37.5%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강화되면서 실적과 재무 안정성을 앞세운 일반 제조기업보다 기술력과 성장성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상장 문턱을 넘기 쉬워진 결과로 풀이된다. 
 
상장기업 상당수가 기존 사업에 AI를 결합한 기술과 플랫폼을 앞세운 점도 눈에 띈다. AI·로봇·의료 데이터처럼 정책 지원과 투자자 관심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테마주에 발행사와 주관사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레몬헬스케어(365660)는 의료 AI 학습용 데이터의 유통·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정부의 의료 데이터 산업 활성화 정책에 따른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레메디(387690)도 휴대용 엑스레이(X-ray) 제품의 AI 소프트웨어 기능을 고도화하고 자체 AI 기술을 적용한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헬스케어 외 업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매드업은 AI 기반 디지털 광고 사업을, 니어스랩은 AI를 활용한 자율비행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하드테크 비중 '축소'…IPO 한파에 더 위축
 
특정 성장산업의 비중이 커진 사이 반도체와 로봇, 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을 실제 제품과 생산설비로 구현하는 하드테크 제조기업의 상장 비중은 낮아졌다. 하드테크 기업은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과 대규모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기술 진입장벽을 구축하는 기업을 말한다.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기업과 달리 연구개발부터 제품 양산까지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올해 1~8월 신규 상장기업 가운데 첨단 기술을 하드웨어·장비·부품 형태로 구현하고 생산시설이나 제조공정을 보유한 하드테크 제조기업은 총 10곳이었다. 전체 25곳의 40%다. 대표적으로 액스비스와 져스텍(153890), 코스모로보틱스(439960) 등이 있다.
 
반면 지난해에는 전체 48곳 중 28곳이 하드테크 제조기업으로 58.3%를 차지했다. 전체 신규 상장기업 수가 감소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하드테크 제조기업의 비중이 18.3%포인트 떨어졌다. 여기에 국내 증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업종 관련 기업은 지난해 9곳에 달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단 한 곳에 그쳤다. 전체 신규 상장기업 수가 감소한 가운데 하드테크 기업의 상장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는 의미다.
 
하드테크 제조기업의 상장 감소는 위축된 IPO 시장의 '옥석 가리기' 결과로 비친다. 하드테크 기업은 상장 시 기술력뿐 아니라 고객사, 수주 실적, 대규모 설비투자의 회수 가능성까지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상장 심사가 강화된 데다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지면서 상장을 미루는 기업들이 속속 늘어났다.
 
하드테크 제조기업은 공장 증설과 장비 도입 등에 큰 자금이 필요해 공모가가 낮아지면 자금 조달을 위해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해야 한다.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이 커지는 만큼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당장의 상장보다는 다른 자금 조달 수단을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바이오·AI 기업은 기술특례 제도를 활용한 경험이 오랜시간 축적돼 있다. 임상 단계나 시장 성장률을 중심으로 성장성을 증명하기 용이하다. IPO 시장이 위축될수록 기관투자자는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보다 상장 직후 흥행 가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AI·바이오 종목으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 미수익 하드테크에도 상장 지원
 
해외 자본시장 사례와 비교하면 하드테크 기업이 국내 증시에서 자취를 감춘 현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커촹반(科創板·중국판 나스닥) 상장 기준을 완화하고 AI·반도체·로봇·우주항공 등 하드테크 기업의 IPO를 적극 지원하며 증시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상하이증권거래소가 운영하는 커촹반은 중국이 첨단기술 기업에 대규모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주식시장이다.
 
2019년 7월 22일 커촹반 개국식 (사진=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중국경제망과 신랑차이징 등 여러 중국 주요 경제지 보도를 종합해 보면, 올해 8개월 동안 IPO 기업 수는 전년 대비 52.2% 증가한 102곳에 달한다. 신규 상장 및 상장 추진 기업도 반도체와 AI, 휴머노이드 로봇 등 첨단산업에 집중됐다.
 
예로 중국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지난달 IPO로 최대 666억 1000만위안(약 13조 7000억원)을 조달했다.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이달 61억위안(약 1조 2000억원)을 끌어모았다. 낸드플래시 업체 양쯔메모리(YMTC)도 330억위안(약 6조 8000억원) 규모의 상장을 준비 중이다. 중국 자본시장이 기술기업의 상장 창구를 넘어 대규모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투자를 뒷받침하는 자금 공급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중국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 2024년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하드테크 기업의 커촹반 상장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커촹반 내 '과학기술 성장층'을 신설하고, 미수익 기술기업에 적용하는 제5호 상장 기준을 가동했다. 지원 대상도 인공지능과 상업용 우주항공, 저고도 경제 등 전략산업으로 확대했다. 이는 초기 수익성이 낮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하드테크 기업이 단기 수익성 부족만으로 상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한 제도 개혁이다.
 
단순히 상장 문턱을 낮추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기술적 우위와 시장성, 사업화 가능성 등을 요구하되 초기 수익성이 낮고 대규모 연구개발이 필요한 전략기술 기업에 대해서는 재무요건의 포용성을 높여 자본시장 진입 통로를 넓히는 방식이다.
 
물론 국가 지원이나 공모 규모 등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중 증시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국내 정책의 방향성이 IPO 공급 확대보다 부실기업 퇴출과 공모가 과열 방지, 중복상장 규제 등 투자자 보호로 옮겨가면서 하드테크 기업의 증시 진입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성장 기업에 공급되는 위험자본마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는 <IB토마토>에 "중국은 정책 수혜 업종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몰리거나 기업가치가 실제 사업 성과보다 커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갖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전반적으로 IPO 시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산업에 성장자금이 집중적으로 공급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송혜림 기자 divi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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