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을 레미콘)④중기 보호가 '성장 족쇄'로…레미콘 재편 막혔다
관수시장 조합 중심 고착…2023년 국감서도 도마
조달제도 손질에도 중기 보호 유지…산업 재편 제자리
지역업체 보호 넘어 경쟁·효율로…M&A·운송체계 정비 과제
공개 2026-09-02 07:40:00
이 기사는 2026년 08월 31일 17:12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업계의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업황 부진은 단순히 건설 수요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레미콘 산업은 지역 공급 중심의 시장 구조와 중소업체 보호 정책, 제한적인 인수합병(M&A), 운송 의존도가 맞물리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전국에 1000개가 넘는 공장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산업 재편은 지연되고, 제조사는 생산과 품질을 책임지면서도 운송 단계에서는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슈퍼을'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레미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시장·정책·운송·재무 측면에서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위한 해법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레미콘 산업을 둘러싼 중소기업(이하 중기) 보호정책이 시장의 성장·재편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중소업체 판로를 보호하는 동안 관수 시장은 조합 중심으로 굳어졌고, 기업의 대형화와 인수·합병(M&A)을 통한 생산 효율화도 쉽지 않은 환경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개별 업체 보호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동양 레미콘 사업장 (사진=동양)
 
중기 보호가 만든 관수 시장, 2023년 국감서 수면 위로
 
31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레미콘은 오랜 기간 중기 경쟁 제품으로 지정돼 공공조달 시장에서 중기 중심의 공급 체계가 유지됐다. 경쟁 제품은 3년 단위로 지정한다. 레미콘도 오는 2027년까지 경쟁제품이다. 중기간 경쟁제도는 공공기관이 지정 제품을 구매할 경우 직접 생산하는 중기로부터 구매하도록 한 제도다.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가 주목적이다.
 
레미콘 업계는 현재 제도의 전신인 단체 수의계약 등 과거 중기 공공 구매 제도까지 포함하면 보호정책이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장기간 보호 체계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관수 시장이 중소업체와 지역 조합 중심으로 굳어졌고, 기업의 대형화와 시장 재편을 제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관수 시장은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등 공공사업에 필요한 레미콘 등 제품을 조달·구매하는 시장이다.
 
해당 문제는 지난 2023년 국정감사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관급 레미콘·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시장에서 지역 조합 중심의 수주 구조가 과도하다는 지적과 중견·대기업의 참여가 제한되면서 경쟁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조달청에 따르면 당시 연간 약 4조원 규모의 관급 레미콘·아스콘 시장에서 조합 수주 비중은 약 95%였다.
 
권역별 조합 점유율 상한이 존재했지만, 복수 조합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물량이 조합에 집중되는 문제 또한 지적됐다. 대형 납품 건에서 가격과 품질 등을 비교해 공급업체를 정하는 '2단계 경쟁' 역시 기준 금액이 10억원 이상으로 높고 다수 업체 참여가 필요해 실제 경쟁이 제한되는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중기 판로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조합 중심의 관수시장 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등장했다.
 
조달청은 같은 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복수 조합을 합산한 수주실적을 90% 이내 제한하고 개별 중기 계약자의 물량을 최소 10% 보장하는 한편, 2단계 경쟁 기준금액을 10억원에서 5억원으로 낮추고 참여 요건도 완화했다. 조합에 집중됐던 관급 물량을 분산하고 개별 중기의 참여 기회를 확대한 조치다.
 
한라엔컴 레미콘 사업장 (사진=한라엔컴)
 
조달제도 손봤지만…대형화·M&A 재편은 여전히 제자리
 
조달제도 개선과 별개로 중기 보호를 중심으로 한 공공 조달의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다. 레미콘은 현재도 2025~2027년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공공조달 시장은 중기 중심으로 운영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제도적 환경이 지역 단위로 분절된 레미콘 시장의 재편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본다.
 
실제 한국레미콘공업협회가 집계한 '전국 레미콘 업체 공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레미콘 업체는 958개, 공장은 1075개에 달하지만 업체당 보유 공장은 평균 1.12개에 그친다. 상위 업체의 생산 거점도 전체 시장과 비교하면 제한적이다. 유진기업은 계열사 동양을 포함해 40개, 삼표산업은 12개, 한일시멘트와 한일산업은 그룹 기준 17개의 레미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3개 그룹이 보유한 공장은 총 69개로 전국의 6.4% 수준이다.
 
문제는 수요 감소에 비해 생산 시설 재편 속도가 더디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 레미콘 출하량은 9765만 8201㎥로 전년보다 14.7% 감소했고, 2021년과 비교하면 약 33% 줄었다. 전국 공장 수가 2024년 1088개에서 지난해 1075개로 13개 감소한 것과 차이가 있다.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는 가운데 지역별로 분산된 생산능력은 상대적으로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레미콘은 생산 후 통상 90분 이내 현장에 공급해야 해 지역별 생산 거점이 필요한 산업이다. 중기 지위가 공공 조달 참여와 맞물려 있어 기업 규모가 커질 관급시장 참여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기업 간 통합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공장 통폐합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한 생산·물류 효율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지역 공급 특성과 중소기업 보호 제도가 맞물리면서 대형화와 산업 재편의 유인이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
 
 
업체 보호에서 산업 경쟁력으로…재편 기준 다시 짜야
 
업계에서는 중소 레미콘 업체를 보호하는 정책의 취지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 업체의 공공 판로가 한꺼번에 사라질 경우 일부 대형사로 물량이 쏠리거나 지역 공급망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업체 수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지역별 수요와 생산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보호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공장 재편과 인수·합병을 바라보는 기준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수요가 줄어 가동률이 떨어진 지역에서는 공장을 통폐합하거나 기업 간 인수를 통해 생산 시설을 효율화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어서다. 기업 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공 조달 참여 여건이 크게 달라지면 자발적인 시장 재편이 어려워질 수 있다. 지역 내 경쟁을 유지하면서도 공급 효율을 높이는 M&A와 공장 재편에는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운송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레미콘은 공장에서 생산하더라도 믹서트럭이 제때 움직이지 않으면 현장에 공급할 수 없다. 올해 수도권 운송 중단에서 나타났듯 운송 차질은 레미콘 공장뿐 아니라 건설 현장 공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제도의 취지는 필요하지만 관수시장이 오랫동안 중소업체와 조합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다권역 업체의 참여에는 여러 제약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2023년 국정감사 이후 조달 제도가 일부 개선됐지만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된 기본 틀이 유지되는 만큼 현장에서 체감하는 제약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기존 업체를 보호하는 것만으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중소기업의 판로를 보호하면서도 다권역 업체의 참여나 기업 간 인수·재편을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도록 시장 상황에 맞춰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레미콘 운송단가와 같은 사안은 기본적으로 노사가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정부가 직접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운송 중단이 건설 현장의 공정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레미콘 수급 상황을 살피고 필요한 공급 안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은 중기부가 임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중앙회의 추천을 받아 전문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며 "이 과정에서 관계부처와 중견기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함께 검토해 최종 지정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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