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업계의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업황 부진은 단순히 건설 수요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레미콘 산업은 지역 공급 중심의 시장 구조와 중소업체 보호 정책, 제한적인 인수합병(M&A), 운송 의존도가 맞물리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전국에 1000개가 넘는 공장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산업 재편은 지연되고, 제조사는 생산과 품질을 책임지면서도 운송 단계에서는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슈퍼을'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레미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시장·정책·운송·재무 측면에서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위한 해법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레미콘 제조사들은 생산과 품질관리, 납기까지 책임지지만, 최종 출하 단계의 운송망 통제력이 제한적이다. 운송이 개별 믹서트럭 차주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집단 운송 중단이 발생하면 생산 능력과 별개로 현장에 제품을 공급하기 어렵다. 생산·납품 책임과 분리된 공급망 구조가 레미콘 업계의 만성 부담으로 꼽히는 이유다.
레미콘 공장 현장 (사진=한일산업)
생산해도 출하 못 하면 '0'…레미콘사의 운송 리스크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제조사는 원재료 조달부터 배합·품질관리, 생산설비 운영, 건설 현장 납기까지 공급 전반을 책임진다. 최종 운송 단계는 믹서트럭 차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제조사가 공장 가동과 생산량은 조절할 수 있어도 개별 믹서트럭의 운행까지 직접 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 이후 장시간 보관하거나 다른 운송수단으로 대체하기 어려워 믹서트럭 운행이 중단되면 생산·출하도 사실상 멈춘다.
해당 구조는 제조사·운송 차주 사이 협상력 또한 영향받는다. 제조사는 건설사와 납품 계약을 맺고 공급 일정과 품질을 관리하는 당사자인 만큼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매출 감소, 납기 지연, 거래처 클레임까지 부담할 수 있다. 수도권 단위로 조직화한 믹서트럭 차주들이 운행을 집단 중단할 경우 제조사는 골머리를 앓는다.
지난 6월 수도권에서 발생한 레미콘 운송 중단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 소속 조합원 약 8000명이 휴업하면서 믹서트럭 약 1만 1000대의 운행이 중단됐다. 수도권 등록 믹서트럭 약 1만 1700대 가운데 8300여대가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운송망이 멈추면 사실상 제품 출하는 불가능한 구조다.
아주산업 사업소 전경 (사진=아주산업)
운송 멈추면 매출 감소, 타결하면 원가 상승
운송 중단이 레미콘 제조사 공장 가동과 실적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2022년 7월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 파업 당시 수도권 레미콘 공장의 약 95%가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진기업 17개, 삼표산업 15개, 아주산업 7개 공장 등 주요 업체의 생산 시설 역시 가동을 멈췄다. 당시 업계가 추산한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의 매출 피해는 하루 약 300억원이다. 운송망이 멈추면 생산 지속이 어려운 산업 특성이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2024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출하가 사실상 멈춘 상황에서 설비 유지와 인건비 등 고정비는 계속 발생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공장을 가동하지 않더라도 공장 한 곳당 하루 약 1800만~2000만원의 경상비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운송 중단은 출하량과 매출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생산 시설을 유지하는 고정비 부담까지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지난 6월 또한 운송 중단이 발생했다. 수도권에서 믹서트럭 약 1만 1000대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대형 건설사 25곳, 117개 현장에서 약 16만㎥ 규모의 콘크리트 타설이 지연됐다. 콘크리트 타설은 골조 공사 주요 공정인 만큼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면 양생과 후속 골조·설비·마감 공정까지 영향받을 수 있다. 공기를 만회하기 위해 인력과 장비를 재배치하거나 추가 작업에 나설 경우 사업비 부담까지 이어진다.
운송 정상화 이후에는 비용 문제가 남았다. 수도권 운송단가는 회당 7만 5800원에서 8만원으로 5.5%(4200원) 인상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갈등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출하 감소와 공장 가동률 하락, 타결 이후에는 높아진 운송비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건설경기 침체로 수요가 준 상황에서 납품 가격에 운송비 상승분이 반영되지 못할 경우 수익성 하락 폭은 더 커질 수 있는 구조다.
운송 차주 지위 등이 핵심 쟁점
레미콘 제조사와 운송 차주 갈등 반복은 레미콘 운송 차주의 지위와 교섭 방식을 둘러싼 입장 차가 배경이다. 제조사는 운송 차주를 개별 운송 사업자로 보고, 운송 업계는 제조사의 배차와 운송 조건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 만큼 실질적인 노무 제공 관계에 가깝다는 뜻이다.
교섭 방식 시각차도 크다. 운송업계는 공장이나 업체별 개별 협상으로는 차주의 협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며 수도권 단위의 통합 교섭 필요성을 주장한다. 제조사는 공장마다 물동량과 운행 거리, 배차 여건 등이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운송 조건을 일괄 적용하는 데 부담이 크다고 맞선다. 단순히 운송단가 인상을 넘어 누가 교섭 당사자가 되고 어떤 단위에서 운송조건을 결정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레미콘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운송 차주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차량을 보유하고 운송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인데, 수도권 전체를 하나의 교섭 단위로 묶어 동일한 운송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제조사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라며 "공장마다 물동량과 운행 거리, 수익성이 다른 상황에서 운송비가 일괄적으로 오르면 제조사가 이를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고,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납품가격에 전가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레미콘노조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조사가 정한 배차와 운송조건에 따라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개별 차주가 회사와 대등하게 운송료를 협상하기는 어렵다"라며 "유류비와 보험료, 차량 정비비 등은 계속 오르는데 업체별 개별협상만으로는 이를 운송료에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을 갖춘 집단교섭이 필요하다"며 반박했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