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도시은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순자산 500조원을 돌파한 이후 숨고르기에 들어간 가운데, 소형 ETF의 생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신규 상품이 매년 100개 이상 쏟아지면서 전체 상장 종목은 1100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일정 규모를 갖추지 못한 ETF는 운용보수보다 유지비용이 더 들어가는 사실상 '적자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운용사들의 자발적 청산과 법적 상장폐지 절차가 잇따르는 모양새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100억 미만 170개에 자산 0.24%…상위 92개는 68.6%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 순자산총액은 2023년 121조 1000억원에서 2024년 173조 6000억원, 2025년 297조 1000억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올해 6월에는 500조원 고지를 돌파했으나, 이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며 지난 8월 26일 기준 450조1054억원으로 감소한 상태다.
상품 수도 빠르게 늘었다. 국내 ETF 상장 종목 수는 2023년 말 812개에서 2024년 935개, 지난해 1058개로 증가했고, 지난 26일 기준 1163개까지 늘었다. 불과 2년8개월여 만에 350개가 넘는 ETF가 추가된 셈이다.
문제는 상품 수 증가만큼 투자자금이 고르게 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ETF 시장으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돼도 대표지수나 일부 인기 테마 상품으로 자금이 몰리면 후발 상품이나 수요가 적은 ETF는 일정 규모 이상의 순자산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로 전체 1163개 ETF 중 순자산 100억원 미만인 소형 상품은 총 170개로 전체의 14.6%를 차지했다. 세부적으로는 50억원 미만 상품이 43개(3.7%),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상품이 127개(10.9%)로 집계됐다.
반면 순자산 1조원 이상 ETF는 92개로 전체의 7.9%에 그쳤지만, 이들 상품의 순자산총액은 약 308조 6285억원으로 전체의 68.6%를 차지했다. 전체 ETF 가운데 10개 중 1개에도 못 미치는 시장 자금의 3분의 2 이상이 집중된 것이다.
소형 ETF 170개의 순자산 합계가 약 1조 874억원(전체의 약 0.24%)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ETF 시장의 외형적 성장 뒤에 극심한 자금 쏠림과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50억 밑돌면 관리종목…올해 상폐 59%가 규모 미달
규모가 작다고 무조건 상장폐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상장규정상 ETF의 신탁원본액과 순자산총액이 50억원에 미달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다음 반기 말에도 해당 사유가 지속될 경우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이 외에도 상장폐지 사유는 다양하다. ▲ETF 순자산가치 변동률과 기초지수 변동률 간 상관계수가 0.9 미만인 상태가 3개월간 지속되는 경우 ▲유동성 공급계약을 체결한 기관투자자(LP) 부재 또는 모든 LP가 교체기준에 해당하게 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다른 LP와 유동성 공급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도 해당된다.
아울러 투자신탁 해지에 해당하거나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소가 상장 유지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돼도 상장폐지가 가능하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퇴출되는 ETF는 해마다 적지 않은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상장폐지 ETF는 2023년 14개에서 2024년 51개, 지난해 50개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지난 26일까지 상장폐지된 ETF도 22개가 상장폐지됐다.
올해 상장폐지된 22개 가운데 13개(59.1%)가 신탁원본액 또는 순자산총액 50억원 미달을 이유로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어 비교지수와의 상관계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품은 5개(22.7%), 투자신탁 해지에 따른 상장폐지가 3개(13.6%), 기한 만료에 따른 상장폐지가 1개(4.5%)로 순이었다.
규모 미달로 상장폐지된 대표적 상품으로는 한화자산운용의 'PLUS 글로벌AI인프라'와 'PLUS 코스닥150선물인버스', KB자산운용의 'RISE 국채선물5년추종', 키움투자자산운용의 'KIWOOM Fn유전자혁신기술'·'KIWOOM 미국ETF산업STOXX'·'KIWOOM 차이나A50커넥트MSCI'·'KIWOOM 글로벌퓨처모빌리티' 등이 포함됐다.
상장 유지에도 비용…운용사 지속 여부 '저울질'
ETF는 상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지수사용료, LP 관련 비용, 전산 및 공시 비용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운용보수 수익만으로 이 같은 비용을 충당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운용자산(AUM)을 유지해야 하지만, 순자산 규모가 작은 ETF는 걷어드리는 보수에 비해 유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순자산이 상장폐지 기준인 50억원에 접근하기 전부터 상품을 계속 유지할지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ETF 자체에서 직접 발생하는 비용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순자산과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금에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한 종목을 상장해서 유지하는 데 회사가 부담하는 별도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상장폐지 조건인 50억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LP가 ETF를 설정해서 보유하기 때문에 자금의 기회비용(조달금리)이 발생한다"며 "소액이라도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에 청산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회사별로 비용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따지기 어렵지만 회사의 손익분기점은 예상되는 운용보수, 예를들면 평균 순자산 3조 유지, 평균 보수 10bp, 30억 운용보수 예상 같이 대비 회사의 비용을 따지는 방식"이라며 "상품의 수익자 현황과 지속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도시은 기자 eqw58174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