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의 조건)③43조 쌓아두고도 못 산다…토종 PEF '실탄의 착시'
미집행 약정액 43.2조…실제 가용 실탄은 별개
2조 딜에 에쿼티 1조…블라인드 단독투입 부담
코인베스트로 실탄 보완…레버리지 규제도 변수
공개 2026-09-02 07:20:00
이 기사는 2026년 08월 31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사모펀드(PEF)의 미집행 약정액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투입할 실탄도 어느 때보다 두둑해졌다. 하지만 조 단위 대형 거래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잇따라 좌초하고 있다.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격 눈높이부터 인수금융, 규제, 세부 계약조건까지 거래를 최종 종결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이 한층 높아진 탓이다. <IB토마토>는 최근 무산된 대형 거래를 통해 올해 하반기 주요 매물의 성사 가능성과 사상 최대 규모로 쌓인 드라이파우더가 실제 M&A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의 미집행 약정액이 43조원을 넘어섰지만, 해외 PEF들이 국내 조 단위 딜들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 국내 운용사들이 쌓아둔 드라이파우더는 역대 최대 수준이지만 실제 대형 인수·합병(M&A)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은 이보다 훨씬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PEF 레버리지 규제 강화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명목상 드라이파우더와 실제 가용 실탄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서 진행된 조 단위 M&A에서는 글로벌 PEF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PEF들이 43조원에 달하는 미집행 약정액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최근 성사된 대형 거래에서는 TPG와 KKR, 칼라일, EQT 등 해외 운용사들이 잇따라 인수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진=AI제작·IB토마토)
 
2조 딜 하나에 에쿼티 1조…대형 매물 소화할 곳 많지 않아
 
지난해 말 국내 기관전용 PEF의 미집행 약정액은 43조 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9.7% 증가했지만, 정작 올해 국내 조 단위 M&A에서는 국내 PEF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운용사들이 역대 최대 수준의 드라이파우더를 확보하고도 대형 거래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배경에는 개별 딜에 필요한 에쿼티 규모와 인수금융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일반적으로 조 단위 거래는 블라인드펀드에 남아 있는 자금만으로 소화하기 어렵다. 인수금융이 전체 거래대금의 절반 안팎을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2조원 규모의 거래에는 약 1조원, 3조원 규모라면 1조5000억원가량의 에쿼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PEF들은 대형 거래에 블라인드펀드 자금만 투입하기보다 별도 코인베스트먼트펀드나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해 부족한 에쿼티를 채우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3월 SK스페셜티 인수를 마친 한앤컴퍼니의 경우, 한앤컴퍼니는 SK(003600)로부터 SK스페셜티 지분 85%를 2조 7008억원에 인수하면서 약 1조 3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조달했다. 선순위와 중순위를 합친 담보인정비율(LTV)은 약 50% 수준이었다. 인수대금 가운데 절반가량을 펀드 등 에쿼티로 직접 채워야 했던 셈이다.
 
결국 43조원이 넘는 드라이파우더가 시장 전체에 존재하더라도 조 단위 거래 하나에 수천억원에서 1조원이 넘는 에쿼티를 동원할 수 있는 운용사는 별개 문제다. 개별 펀드의 잔여 투자여력뿐 아니라 다른 포트폴리오에 투입할 자금과 후속 투자 재원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2조 블라인드도 한 곳에 못 쏟는다…코인베스트 병행
 
이 정도 규모는 국내 최상위 PEF의 블라인드펀드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근에는 토종 PEF들의 약진으로 펀드 조성 규모가 커졌지만, 아직도 조 단위급 바이아웃을 위해 2조원 이상의 블라인드펀드를 독립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IMM PE의 로즈골드5호는 2024년 10월 2조원 규모로 결성됐지만, 사실상 조 단위급의 바이아웃 딜은 에코비트 한 건이다.
 
글랜우드PE가 지난해 결성을 마친 3호 블라인드펀드 역시 1조 6000억원 규모에 달했지만, 조 단위 딜을 소화하기 위해선 3호 펀드만으로는 부족했다. 실제 1조 4000억원 규모의 LG화학(051910)의 수처리 사업부(나노H2O) 인수 과정에서 2호와 3호 블라인드펀드를 함께 활용했고, 무바달라와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4000억원 규모의 공동투자 자금까지 유치했다. 국내에서 손 꼽히는 대형 운용사도 대형 거래에서는 블라인드펀드의 단일 자산 집중도를 낮추기 위해 코인베스트먼트를 병행하는 셈이다.
 
관련 업계에선 전체 드라이파우더 규모보다 조 단위 거래에 필요한 수천억원의 에쿼티를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개별 펀드가 얼마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평가다. 블라인드펀드 규모가 크더라도 단일 자산에 자금을 집중하기 어렵고, 기존 포트폴리오 후속 투자와 추가 투자 여력까지 고려해야 하는 만큼 대형 딜일수록 코인베스트먼트나 프로젝트펀드가 사실상 필수로 따라붙기 때문이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일반적으로 블라인드펀드는 포트폴리오 분산을 위해 정관이나 LP와의 약정에서 단일 투자 한도를 펀드 약정액의 20~25% 안팎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시장 전체로 보면 드라이파우더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 조 단위 딜에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펀드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레버리지 규제까지…토종 PEF 원매자 풀 좁아지나
 
최근 PEF 규제 강화 움직임은 이 같은 '가용 실탄'을 더욱 제약할 수 있는 변수다. 현재 기관전용 PEF의 펀드 차입한도는 순자산의 400%다. 금융위원회는 현행 400% 한도를 유지하는 대신 차입비율이 200%를 넘을 경우 차입 사유와 펀드 운용에 미치는 영향, 향후 관리방안을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규제 수위를 한층 높인 자본시장법 개정안들도 계류 중이다. 최근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 가운데는 PEF의 차입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0%에서 200%로 낮추거나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차입인수(LBO)를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레버리지 활용도가 낮아지는 만큼 같은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GP와 LP가 부담해야 할 에쿼티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특히 대형 GP는 블라인드펀드 외에 해외 LP나 공동투자를 통해 부족한 에쿼티를 보완할 수 있지만 중소·중견 운용사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현재도 조 단위 거래를 단독으로 소화할 수 있는 하우스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레버리지 활용 범위까지 줄어들면 대형 M&A 시장의 원매자 풀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수십조원의 드라이파우더가 있다고 해도 최근 LP들이 거액의 공동투자 출자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어 대형 딜이 쉽지 않다"며 "게다가 대형 하우스는 코인베스트나 해외 LP를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형 운용사는 자금조달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조 단위 딜에 참여할 수 있는 국내 PEF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고, 대형 딜은 해외 원매자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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