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투자 자금이 신산업으로 빠르게 쏠리고 있다. 2025년 전체 벤처투자액 중 76.4%가 인공지능(AI)·바이오·방산 등 12대 신산업에 집중됐다. 500억원 이상 대형 투자도 모두 신산업에서 나왔다. 그러나 투자 확대가 곧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신산업 투자액 중 후속투자 비중은 90%에 달한 반면 신규 투자는 12% 수준에 그쳤고, 업력 3년 이내 기업 비중도 10곳 중 1곳이 채 되지 않았다. <IB토마토>는 신산업 투자와 후속투자 흐름, 정책자금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한계를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윤상록 기자] 신산업 분야 신규 벤처투자액이 5년 만에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2021년 1조1202억원이던 신규투자는 지난해 639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모태펀드와 지역성장펀드, 차세대유니콘육성프로젝트 등 정책자금이 가동되고 있지만 초기 기업 발굴 자금은 오히려 위축된 셈이다. 수도권 기업이 투자 유치를 위해 지방으로 본점을 이전하는 사례까지 거론되면서 마중물 역할을 해왔던 정책자금이 중후기 기업의 빈익빈 가속 장치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유망 벤처기업 발굴을 위한 벤처캐피탈(VC)과 출자자(LP)의 균형 잡힌 역할 재정립이 과제로 떠올랐다.
(사진=한국벤처캐피탈협회)
신규투자 5년간 43% 감소···정책자금 마중물 효과 '제한적'
15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따르면 신산업 분야 벤처투자에서 신규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17.7%에서 지난해 12.3%로 5.4%포인트(P) 하락했다. 신규투자액은 1조1202억원에서 6390억원으로 줄어 5년 새 43% 감소했다. 후속투자 비중은 같은 기간 82.3%에서 87.7%로 높아졌다. 신산업이라는 성장 테마 안에서도 신규 발굴 기능은 약해진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회수시장 둔화와 출자자(LP)의 위험회피 성향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공개(IPO)가 지연되고 회수 기간이 길어지면 운용사는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의 기업가치 방어와 운영자금 보강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LP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이 큰 초기기업보다 트랙레코드가 있는 펀드와 검증된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정부는 ▲모태펀드 ▲지역성장펀드 ▲차세대유니콘육성프로젝트 등으로 신산업과 비수도권 기업에 모험자본이 투입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자금이 다각도로 가동됐음에도 초기 스타트업과 비수도권 기업으로 흐르는 자금은 줄거나 정체된 모습이다. 지난해 업력 3년 이내 초기 기업 비중은 6.9%로 10곳 중 1곳이 채 되지 않았고 수도권 기업 투자금 집중도는 79.1%를 기록했다.
지역 투자 의무 강화에도 우회 논란
모태펀드는 자펀드 운용사가 일정 비율의 지방투자 확약을 한 경우 출자사업 선정 어드밴티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당근책을 제시해왔다. 통상적으로 자펀드 약정 총액의 30% 이상을 지방 기업에 투자하는 운용사에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다만 이 같은 제도가 수도권 기업이 투자 유치를 위해 지방으로 본점 이전하는 사례가 거론되면서 정책 설계 보완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책자금이 가동되는 구조 안에서 수도권 기업이 지방 이전을 통해 어드밴티지를 흡수하는 흐름이 형성되면 정책 본래 목적과 자금 흐름이 어긋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비수도권 신산업 기업으로 흘러야 할 모험자본이 본점 주소를 지방으로 옮긴 수도권 출신 기업으로 상당 부분 향할 수 있어서다. 정책자금 집행 점검과 지방 투자 기준 정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간 VC와 정책 LP의 역할 분담도 과제로 남는다. 후속투자와 수도권, 검증된 기업 중심의 쏠림 구조가 굳어진 상황에서 정책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회복하려면 자금 규모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초기기업 발굴, 지역기업의 실증 지원, 후속 라운드 연결, 회수시장 보완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한 VC 대표는 <IB토마토>에 "모태펀드의 경우 펀드 약정총액의 30%를 지방 투자에 약속하는 운용사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게 일반적"이라며 "다만 수도권에 있는 좋은 기업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낸 후 투자하는 사례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 기업이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지자체 저리 융자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땅값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며 "이 같은 혜택을 위해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기부 측은 "올해 모태펀드가 출자하는 자펀드에 지역투자 20% 의무를 부여하고 비수도권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운용사를 우대 선정한다"라며 "그 결과 정시 출자사업에서 선정된 펀드 중 80% 이상이 비수도권 추가 투자의무를 적용받게 됐으며 지방소재 운용사 비중이 전년 대비 증가하는 등 향후 지역 벤처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윤상록 기자 ys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