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코 PF 펀드 3년간 8000억대 투입했지만 준공은 '0곳'수익성 우선에 하이엔드 소외…용도 전환도 '첩첩산중'전문가들 "2차 펀드 문턱 낮추고 경·공매 현실화해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하이엔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장이 공매를 제외하고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부실 사업장을 살리겠다며 만든 정상화 펀드도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해당 펀드가 수도권 주거 사업장 위주로 집행되면서 고급 오피스텔·타운하우스는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 용도를 바꿔 살리는 길 역시 주차장 기준과 기부채납 부담에 막혀 있다.
3년간 투입했지만…주거사업장 7곳 중 6곳 '첫 삽'도 못 떠
29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에 따르면 2023년 9월 출범한 캠코 PF 정상화 지원펀드(1조 953억원 규모)는 출범 3년이 지나도록 준공한 사업장을 한 곳도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범 당시는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땅만 사놓고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늘던 때였다. 이런 사업장들은 공사비 대출(본PF)을 받지 못한 채 땅값을 치르려고 빌린 단기 대출(브릿지론)의 이자만 쌓여가는 상황이었다.
출범 3년여가 흐른 현재 해당 펀드는 16개 사업장에 8193억원을 투입했다. 조성한 돈의 상당 부분을 이미 쓴 셈이다. 아파트 등 주거사업장 7곳에 3730억원이 투입됐으며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 3881호의 주택이 공급된다.
문제는 투자 사업장 중 착공한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주거사업장 7곳 중 6곳은 아직 착공도 하지 못했다. 돈을 넣어 사업장을 사들였지만 가격 협상과 인허가 변경, 시공사 선정 등에 발이 묶인 것이다. 1호 투자처인 서울 중구 남창동 사업장은 준공 예정 시점이 2029년 8월에서 2031년 1월로 1년 넘게 밀렸다.
정부는 펀드 실적 부진에도 내년 상반기 3조원 규모의 2차 펀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재정과 민간이 1조 5000억원씩 내고, 60%를 주거사업장에 투입해 약 1만 8000호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추가 펀드를 조성한다고 해도 하이엔드 사업장까지 숨통이 트이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2차 펀드는 정부 돈만으로 굴러가지 않는 데다, 자금의 절반가량을 운용하는 민간 운용사가 투자금 회수가 확실한 사업장만 원하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하이엔드 사업장은 분양가가 높아 살 사람 자체가 적고, 공매에 나와도 여러 차례 유찰되기 일쑤"라며 "펀드 입장에서는 돈을 넣어도 회수를 장담할 수 없으니 손이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실 사업장을 살리겠다고 만든 펀드인데, 정작 가장 안 팔리는 하이엔드는 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용도 바꿔 살리려 해도…주차장·기부채납에 발목
팔리지 않는 사업장을 살리는 또 다른 방법은 용도를 바꾸는 것이다. 숙박시설이나 비주거 시설로 지은 건물을 오피스텔이나 임대주택으로 바꿔 수요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용도 전환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돼 온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이 대표적인데,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생숙 18만 5000실 가운데 오피스텔로 전환을 마친 곳은 약 1만 8000실로, 10%에도 못 미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주차장이다. 생숙은 시설면적 200㎡당 1대의 주차장을 갖추면 되지만, 오피스텔은 가구당 1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용도를 바꾸려면 이미 다 지은 건물에 주차장을 더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행정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인 점 또한 변수다. 정부가 2024년 10월 인근 300m 이내 외부 주차장을 확보하거나 비용을 내는 방식도 허용했지만, 최종 판단은 지자체가 한다. 지자체마다 조례 개정 여부가 엇갈리면서 지역에 따라 전환 가능성이 달라진다.
막상 전환이 이뤄졌다 해도 대가가 컸다. 경남 창원의 '힐스테이트 창원 센트럴'은 시행사가 110억원 규모의 주차장 건물을 기부채납하기로 약속한 뒤에야 지난해 말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꿨다. 인천 송도의 '힐스테이트 송도 스테이에디션'도 시행사가 공공기여금 43억원을 전액 부담하고 이달에 전환했다. 자금난에 빠진 시행사 사업장의 경우 최소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 비용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제도 정비에 나섰지만 갈 길은 멀다. 지난 8월 발표한 '8·13 부동산 대책'에서 비주거 건물의 주택 전환을 돕는 특별법 제정으로 건축·주차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특별법은 제정 전이다. 주차장 추가 설치를 면제해 주는 혜택 또한 전용면적 30㎡ 미만 소형 주택에 한정돼 있다. 대형 평형 위주인 하이엔드 사업장이 이 혜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차 펀드 문턱 낮추고, 경·공매 가격 현실화해야
전문가들은 2차 펀드가 1차의 한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투자 문턱부터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익이 확실한 사업장만 고르면 정리가 시급한 사업장 투자할 곳은 펀드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용사들 역시 개선을 요구한다. 지난 9월 금융위원회 간담회에서 일부 운용사들은 신규 펀드에 지분투자와 대출 등 다양한 집행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HUG)·LH 등도 공공기관과 손잡고 자금 투입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왔다. 사업장 유형에 따라 투자 방식을 달리하고, 공공이 위험을 일부 나눠 지면 하이엔드처럼 회수가 불확실한 사업장 역시 펀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가격 현실화가 과제로 꼽힌다. 금융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까지 금융권이 정리하거나 재구조화한 부실 PF는 19조 7000억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경·공매와 상각 등으로 정리된 규모가 14조 4000억원으로 70%를 넘는다. 적지 않은 사업장이 정리됐지만, 부실우려(D등급) 여신은 12조원으로 거의 줄지 않았다. 정리 속도도 둔화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대주단이 손실을 줄이려고 만기 연장으로 버티는 사이 사업장 가치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강남 한복판의 PF 부지조차 최저가를 400억원 넘게 낮췄지만 유찰된 사례가 나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하이엔드 사업장은 호황기 기대 가격에 묶여 있는 한 누구도 사지 않는다"며 "펀드는 문턱을 낮춰 정리 대상을 넓히고, 시장은 손실을 인정하고 가격을 현실화해야 멈춘 사업장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