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의 민낯…판교 제일풍경채, 금융장사 논란
공공택지라도 민간임대 전환 뒤 분양가는 '규제 밖'
주거비가 아니라 투자수익이 분양가격 좌우한 구조
"분상제 수준 기대"vs"계약대로 시세 분양" 입장 충돌
공개 2025-12-11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2월 09일 14:3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판교밸리 제일풍경채(성남 고등지구 S-1블록)'와 관련해 민간임대 후 분양 전환가를 놓고 시행사와 임차인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 단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매각한 공공택지에서 출발한 곳으로 당초 일반 분양으로 진행되면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 받아 낮은 분양 가격이 예상됐다. 그러나 중간에 사업이 민간 임대로 전환됐고, 임대 기간 중 시행사가 보유한 PFV(프로젝트 금융투자회사)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했고, 이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어지면서 분양가가 당초 예상가보다 높아졌다. 
 
판교밸리 제일풍경채 투시도(사진=제일건설)
 
공공택지에서 '투자자산'으로…지분 매각이 바꾼 구조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판교밸리 제일풍경채(543가구, 2020년 입주) 임차인들은 분양전환 가격이 8억원대에서 최고 12억6000만원 수준으로 상승한 배경에 대해 "사모 부동산투자신탁(메테우스자산운용)과 수탁사인 NH투자증권의 구조적 이익 설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지는 2015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매각한 공공택지에서 출발했으며, 당초 '분양가상한제 일반분양'으로 안내됐으나 2017년 불과 3주 전 모집공고를 앞두고 '4년 단기 민간임대 후 우선분양'으로 변경됐다. 임차인들은 이를 단순한 분양시점 연기 정도로 이해했으나, 향후 분양전환가 규제 회피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초기 시행사는 부동산 디벨로퍼 HMG다. HMG는 PFV(성남고등 S-1 PFV) 지분 95%를 보유하고 2020년 입주와 함께 임대운영에 들어갔으며, 입주 시 전세보증금 성격의 임대보증금 약 2981억원을 확보해 사업비를 상당 부분 회수했다. 분양 여부와 시점은 임대의무기간 종료 후 결정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2021년 HMG가 PFV 지분 95%를 약 2000억원에 메테우스자산운용에 매각하면서 사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단지 소유권은 '성남고등제일풍경채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제1호'라는 투자신탁 자산으로 편입됐고, 신탁업무는 NH투자증권이 맡았다. 즉 이 때부터 단지가 주택이 아닌 펀드 자산이 된 셈이다.
 
지분 인수 뒤에는 조기분양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고, 임대운영과 펀드 자산관리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게 임차인들의 설명이다. 이후 신탁사인 NH투자증권은 펀드 운용사(메테우스자산운용)의 결정에 따라 2023년 10월 전용 84㎡ 분양전환가를 약 11억2000만원으로 제시했고, 일부 세대는 분쟁조정까지 갔으나 조정은 성립되지 않았다. 2024년 임대의무 종료 이후 미계약 물량은 일반분양으로 전환됐고, 최고 12억6000만원대에 공급됐으며 일부 청약은 두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결국 이 논란은 사업 주체가 디벨로퍼에서 사모펀드로 바뀌면서, 초기 7억~8억원 수준으로 거론되던 조기 분양전환 협의가 사라지고, 펀드 수익 극대화를 위한 가격 책정으로 이동했다는 지적이 핵심이다. 시공사 제일건설은 공사만 수행했을 뿐, 분양·임대·지분 매각 등 사업 의사결정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며, NH투자증권 역시 수탁사일 뿐 분양가 결정 관여 권한은 없다고 해명에 나선 상황이다.
 
판교밸리 제일풍경채 입주민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애당초 이 부지는 LH가 공급한 공공택지라 분상제를 전제로 일반분양이 이뤄질 것이라고 이해하고 들어왔다"며 "중간에 성남시 승인으로 민간임대로 전환되고, 다시 사모펀드에 지분이 넘어가면서 분양가 제한은 사라졌는데 정작 책임을 지는 공공 주체는 어디에도 없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분양가는 금융수익 규제는 임대까지만…공공택지 제도 공백
 
판교밸리 제일풍경채가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이 단지가 더 이상 단순한 주거공급이 아니라 '금융 상품화된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현재 단지 지분은 메테우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부동산투자신탁에 편입돼 있으며, 이 펀드 수익증권을 기초로 SPC(에스코퍼제일차)가 ABCP 등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행사가 PFV 지분을 통해 단지를 직접 보유했다면, 지금은 투자자가 펀드 지분을 나눠 보유하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자금 조달 방식 또한 주택이 아닌 금융자산의 방식을 따른다. 단지 지분을 담보로 SPC가 단기 ABCP를 발행해 자금을 끌어오고, 이 유동화증권에는 메리츠증권의 매입확약이 붙어 있다. 덕분에 최근 발행분은 단기등급 'A1(sf)'을 유지했다. 이는 상환 위험이 매우 낮은 등급으로, 주택 자체보다 금융구조를 신뢰해 부여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논란의 핵심은 수익 회수 방식에 있다. 이 구조에서 상환 재원은 임대료가 아니라, 의무임대 종료 후 분양전환 매각 대금이기 때문이다. 즉 분양가는 '주거비'가 아니라 펀드 수익률과 유동화증권 상환 계획을 맞추는 '투자 회수 가격'으로 작동한다. 이 때문에 갈등의 본질도 단순 가격 수준의 논쟁이 아닌 공공택지 주택의 가격이 금융상품화 과정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느냐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공공택지 민간임대주택이 금융구조와 결합하는 것이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리츠나 PFV를 활용해 임대 후 매각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리는 방식은 이미 시장에 널리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판교밸리의 경우 지분이 사모 부동산투자신탁으로 넘어간 뒤, 신탁·유동화 구조와 분양전환 가격이 직결된다는 점이 논란을 키웠다는 평가다. 동일한 설계가 아니더라도, 공공택지 기반 주택의 분양가가 금융상품 구조 안에서 결정된 사례가 공개적으로 부각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이번 논란은 공공택지 임대주택이 금융상품화될 때 규제가 어디까지 유효한가를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행 제도는 공공택지에서 공급됐더라도 '민간임대주택'으로 전환되는 순간 임대료·보증금·의무기간과 같은 운영 단계만 규제하고, 지분 매각·펀드 편입·유동화 구조 설계·분양전환 가격 등 사업자 수익 구조에는 별도 규율이 없다. 결국 공공택지라도 사업 주체가 바뀌면 가격 정책과 수익 배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지난 2018년 개정 이후에도 규제는 임대운영 단계만 촘촘해졌을 뿐, 분양전환가 산정 방식과 금융구조 설계는 사업자 재량으로 남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안의 핵심은 공공택지에서 PF나 자산유동화 구조를 썼느냐가 아니라, 민간임대로 전환된 이후 분양전환가 산정 기준을 어디까지 공공 규제로 묶을 것인지에 관한 문제"라며 "다만, 현행 제도상 사업자가 허용된 여러 기준 중 수익성이 높은 방식을 선택했다고 해서 이를 위법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중립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한편, 사업 시행을 인수한 메테우스자산운용은 모든 절차가 법령과 계약에 근거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메테우스운용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당시 법에 따라 4년 단기 민간임대가 가능했고, 분양전환가 역시 계약상 매도자가 시세에 맞춰 결정하도록 돼 있다"라며 "다수 임차인은 이미 시세에 맞춰 전환 분양을 받았고, 특정 세대만 추가 할인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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