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슈퍼사이클)③효성중공업, 북미 초고압 변압기 병목 '선점'
영업이익률 15.5% 안착…부채비율도 적정기준 '부합'
2028년까지 미국 멤피스 공장 1.57억달러 추가 투자
공개 2025-12-12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0일 16:31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확산은 이제 단순한 IT 산업 성장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전력 인프라 수요 구조까지 뒤흔들고 있다. 초대형 연산을 기반으로 하는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산업시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전력 공급을 요구하며, 송배전망과 변압기 등 중전기 설비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력 투자 사이클을 일시적 호황이 아닌 10년 이상 이어질 구조적 슈퍼사이클로 전망한다. 이에 <IB토마토>는 AI가 촉발한 전력 수요 급증이 중전기 산업의 수주 구조와 생산 전략, 재무 체질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보고, 전력 3사가 선점한 성장 기회를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효성중공업(298040)의 실적 개선세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송전망 교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북미 전력 시장에서, 회사는 가장 공급이 막히는 초고압 변압기 구간을 먼저 파고들었다. 납기와 생산능력(CAPA)이 곧 경쟁력이 되는 구조 속에서 효성중공업은 향후 생산 물량을 미리 확보할 수 있는 역량과 미국 현지에서 검증된 납품 실적을 선점하며 핵심 전력 공급사로 올라섰다. 최근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은 효성중공업의 이 같은 공급 병목 장악 전략이 본격적으로 성과로 이어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진=효성중공업)
 
분기 기준 최대 실적 달성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은 올 3분기 매출 1조6241억원, 영업이익 2198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누적 기준으로는 매출 4조2256억원, 영업이익은 486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이미 지난해 말 누적 영업익(3624억원)을 1000억원 이상 넘어선 상태다.
 
영업이익률도 15.5%로 상승해 지난해까지 한 자릿수에 머물던 수익성이 10%대 중반으로 안착했다. 본업 경쟁력 강화와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평가다. 재무구조도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효성중공업의 부채비율은 2021년 287.9%에서 올 3분기 말 198.6%로 낮아졌다.
 
이 같은 실적 개선세 배경으로 해외 수주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시장에서 성장세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효성중공업이 북미 시장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미국 전력 인프라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미국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 재생에너지 연계 송전선 확충, 노후 송전망 교체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구간에 진입했다.
 
문제는 공급이다. 초고압 변압기와 송전 설비는 대표적인 병목 장비로, 설계와 테스트, 제작까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4년 이상이 소요된다. 특히 765kV급 초고압 변압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소수 업체만 생산할 수 있어 공급 제약이 더욱 심하다. 이 때문에 미국 유틸리티와 대형 발주처는 납기 확약이 가능한 기업과 장기 파트너십을 맺는 방향으로 발주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효성중공업의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공장은 회사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765kV급 초고압 변압기를 설계·제조할 수 있는 생산기지로, 효성중공업은 이미 미국 765kV 변압기 설치 실적 가운데 약 절반을 공급한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는 여기에 약 1억57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오는 2028년까지 CAPA를 5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회사가 2020년 멤피스 공장을 인수한 이후 누적 투자액은 3억달러를 웃돈다. 이 같은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질 경우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 최대 수준의 초고압 변압기 CAPA를 확보하게 된다.
 
 
CAPA 선점, 장기 수주 ‘잠금 효과’로 이어질까
 
CAPA 선점은 곧 장기 수주 잠금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압 변압기는 프로젝트별 맞춤 설계와 장기간 시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대체 공급 자산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초기 단계에서 공급사를 선정하면 장기간 동일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효성중공업은 멤피스 공장의 생산 슬롯을 선점해 대형 프로젝트 프레임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통해 향후 수년간의 일감을 미리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회사의 수주 잔고는 지난해 말 10.6조원에서 올 3분기 13.9조원대까지 확대됐고, 이 가운데 북미 비중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효성중공업의 이 같은 전략이 북미 전력 시장 후발 주자에게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765kV급 초고압 변압기 생산기지를 새로 구축하려면 부지 확보와 대규모 투자, 인허가, 시험·인증까지 수년이 걸린다. 여기에 미국은 송전 인프라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며, 동맹국 기반의 현지 생산설비를 선호하는 정책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비현지 생산이나 레퍼런스가 부족한 기업은 초기 경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시장에서도 효성중공업은 비슷한 전략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영국과 독일 등에서 초고압 변압기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레퍼런스를 확대하고, 네덜란드에 R&D 센터를 개소해 품질과 기술 신뢰도를 강화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을 양 축으로 한 CAPA 확장 전략은 글로벌 전력 인프라 슈퍼사이클 국면에서 회사의 입지를 한층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효성중공업의 선제적인 생산능력 확보 전략이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맞물린 초고압 전력기기 수요는 당분간 글로벌 공급 여력을 웃돌 가능성이 높고, 기존 유럽 업체들 역시 쌓여 있는 주문을 소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이미 상당 물량의 수주를 확보한 효성중공업은 생산 슬롯을 바탕으로 장기 공급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전력업계 한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초고압 변압기 시장은 기술력뿐 아니라 누가 먼저 납기를 확약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효성중공업은 이미 북미 현지에서 대형 프로젝트 레퍼런스를 확보한 만큼, 후발 주자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적 우위를 갖췄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특히 미국은 송전 인프라를 국가 안보자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현지 생산설비를 갖춘 기업 위주로 발주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며 “효성중공업의 멤피스 공장은 단순한 생산거점이 아니라 북미 전력망 재편 흐름 속에서 장기 파트너십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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