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무역이 점차 블록 경제로 재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중심축도 기존의 비용과 효율성에서 지정학적·경제안보적 선택으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이는 곧 기업들이 고비용 구조의 경영 환경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AI)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화, 불량률 감소를 통한 낭비 최소화, 생산성 향상 등으로 지정학적 제약이 초래하는 비용 부담을 완화할 핵심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AI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IB토마토>는 우리 제조업의 AI 도입 현황을 점검하고 주요 산업별 경쟁력 변화와 과제를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HD현대(267250)와
한화(000880)의 조선업 경쟁이 생산성 경쟁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두 그룹의 조선소는 구조적인 인력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 조선소 건설을 진행하고 있고, 스마트 조선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피지컬AI(로봇과 인공지능의 결합체)가 꼽힌다. 조선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로봇 역량 강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현재 피지컬AI 개발은 두 그룹 내 로봇 계열사가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한화오션)
두 그룹 로봇 사업 확대
2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그룹과 한화그룹은 로봇 사업 확대를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진행 중이다. HD현대로보틱스는 지난 10월 1800억원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투자금을 유치했다. 산업은행과 국내 사모펀드 KY PE가 증자에 참여했다. 해당 투자금은 피지컬AI 연구개발 등 운영자금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한화로보틱스 역시 지난 8월 그룹 지주사 한화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부터 각각 300억원씩 유상증자 출자를 받아 연구 자금을 확보했다. 한화로보틱스는 AI 업체 마음 AI와 손잡고 피지컬AI 연구개발을 강화한다. 피지컬AI에 대한 연구개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향후 두 회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연구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피지컬AI가 꼽힌다. HD현대와 한화그룹 모두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산업은 구조적인 인력 문제를 겪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피지컬AI 역량을 확보한다면 조선산업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아울러 국내 조선소간의 경쟁뿐 아니라 추격 중인 중국 조선업을 따돌릴 수 있는 카드로 피지컬AI가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조선소는 점차 로봇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용접 로봇이다. 용접 로봇이 완전히 숙련공을 대체하지 못한다. 현재 용접 로봇은 직선 용접만 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이 기존 방식 대비 생산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HD현대삼호는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협업해 용접 로봇을 도입했다. 이에 HD현대삼호는 산하 자동화혁신센터를 통해 자체 로봇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미숙련 근로자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피지컬AI는 조선산업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HD현대그룹은 지난 20일 AI기술 동맹을 출범시키며 피지컬AI 연구개발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정부 역시 지난 수십년간 축적된 조선산업의 노하우를 피지컬AI에 이식해 전략 자산으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AI 수요 높은 조선소
국내 조선소는 스마트 조선소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인력 문제가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되고 있어서다. 스마트 조선소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인프라 기반 위에 궁극적으로 자율 작업이 가능한 조선소를 의미하며, 생산성을 한단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다. 향후 그룹 내 피지컬AI 역량과 결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4년 20만명 수준에서 2022년 9만명 대로 감소했다. 감소 인원 다수가 숙련 근로자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인력 문제 해소에 기여하고 있지만, 비자 문제 등으로 인해 숙련공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조선소는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고 있다. HD현대는 팔란티어와 손잡고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 중이다. HD현대 산하 조선해양그룹은 올해 3분기까지 1조1606억원을 설비 등에 투자했다. HD현대는 2025년 4분기부터 2027년간 총 9445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오션은 올해 총 1조281억원을 거제 조선소 설비 개선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현재 3088억원이 집행됐으며, 남은 4분기 7194억원이 설비 투자에 쓰인다.
이러한 수요를 겨냥한 각 업체의 연구개발도 활성화되고 있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조선용 피지컬AI 플랫폼 개발에 나서는 등 스마트 조선소 수요에 대응할 예정이다. HD현대로보틱스는 조선 용접용 휴머노이드 개발에 착수한다. 휴머노이드 개발에는
HD한국조선해양(009540)도 함께 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조직 산하에 로보틱AI실을 설치하는 등 조선산업에 특화된 로봇 등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김문기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제조업 등 노동집약 산업은 스마트팩토리, 자동화 물류창고 등 피지컬AI 도입으로 생산성 향상과 자본집약적 구조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전망”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