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3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수수료율 0.01%사실상 적자 주관…금융지주사 평균에 10분의 1 수준대규모 발행으로 증권사 실적 갈라…대형사 위주 '참전'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첫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에 나서는 등 공기업 채권 발행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공기업 특성상 신용등급도 AAA로 높지만, 채권 발행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은 딱히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된 수수료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우수한 금융지주의 수수료와 비교해도 10분의 1 수준이다. 한 공기업 산하 리츠(부동산투자신탁)의 경우 수백억원 규모 채권을 발행하면서도 10만원도 안 되는 수수료를 책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액수가 커 주관실적 경쟁이 치열한 대형 증권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라도 맡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낮은 금리에 공기업 공모 회사채 확대 전망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3000억원 규모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공모사채 발행에 나선다. 이번 발행은 2년물 1000억원 규모와 3년물 2000억원 규모로 나눠 모집되며 이날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이 진행됐다.
이번 발행은 HUG의 첫 일반 공모 회사채 발행이다. 지난해 11월 7000억원 규모 만기 50년 영구채 발행을 한 데 이어 산하 리츠 4개에 대해서도 조달했다. HUG는 2024년 초 직접 채권 발행이 가능토록 정관을 바꿨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최근 낮아진 금리로 인해 공기관 회사채 발행이 늘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인프라 개발 공기업 중심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금까지는 발전소 운영자금 조달 목적의 한국전력 계열사 회사채 발행이 주를 이뤘다.
실제 지난 19일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은 2000억원 규모 공모 회사채 발행을 추진해 총 1조30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KIND는 이번 회사채 발행 호조에 힘입어 내년 상반기에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HUG는 이번 조달한 자금을 전액 상품 보증 변제과 미분양 안심 환매사업 매입에 쓸 예정이다. 새 정부 들어 지방 미분양 문제 해결을 위한 유동성 공급 창구로서 기능이 강화된 만큼 HUG의 추가 발행도 예상된다.
짠물 수수료에 증권사 '한숨'…현실화 필요
HUG 회사채 발행은 채권자본시장(DCM) 선두를 다투는 KB증권과
NH투자증권(005940)이 공동 대표 주관한다. 인수액도 양사가 동일하게 2년물 500억원, 3년물 1000억원을 맡는다.
(사진=주택토지보증공사)
문제는 터무니 없이 낮은 수수료다. 이번 발행에서 주관사 인수수수료는 0.01%에 불과하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증액이 결정될 수 있지만, 현재 목표 발행 규모로 봤을 때 주관사가 얻는 수수료 수익은 300만원에 그친다.
현재 HUG의 신용등급은 AAA(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로 좀처럼 보기 드문 초우량 등급이고 발행 규모도 리그테이블 순위를 바꿀 정도로 크다. 적은 수수료에도 주관실적 1,2위 증권사가 굳이 나서는 이유다.
사실 공기업의 낮은 수수료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 지난해 발행된 HUG 산하 리츠 4종의 회사채 발행에서 뉴스테이허브제1호 리츠의 경우 450억원 규모에도 수수료는 정액으로 9만2000원을 책정했다. 불확실성이 높은 부동산 관련 채권을 떠맡는 구조라 주관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손해나 마찬가지다.
공기업 회사채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AAA등급의 초우량채다. 증권사에서는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발행 규모도 평균 1000억원 이상으로 경우에 따라선 한 번의 주관으로 조단위 실적을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위 경쟁이 치열한 대형 증권사 외에는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여기에 쏟는 역량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IB토마토)
업계에서도 공기업 채권의 수수료율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금 지급 능력을 따졌을 때 공기업보다 우위에 있는 금융지주사의 평균 수수료율에 비해서도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지주사의 평균 수수료율은 0.10%~0.15%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공기업 보증 채권이라고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리츠의 채권 발행까지 터무니없이 낮은 수수료율이 책정된 것에 증권사들의 회의감이 커졌다"라며 "수천억원대 채권 발행을 위해 투입되는 인원을 생각하면 사실상 적자 주관인 딜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아무리 국가가 지급을 보증한다지만 실제 기업의 현금 지급 능력이나 시장에서 평가되는 금리를 고려하면 적어도 금융지주사 수준은 돼야 한다"라며 "레고랜드 사태와 같이 국가 보증 채권도 정치권 판단 착오로 신용위기가 찾아올 수 있기에 자사의 신용을 담보로 시장에서 유통하는 증권사들의 역할을 무시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