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도시은 기자] 녹색채권이 기업의 조달비용을 낮춰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절감 효과는 발행 규모와 정부 지원 여부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일반채권보다 금리를 낮춰도 외부검토와 사후관리 비용을 더하면 실익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정부가 지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추가 비용을 줄이는 데 더해 투자 수요를 확보해 발행금리를 낮추는 주관사의 역량도 중요해지고 있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이달 7일 발표한 K-GX 전략에는 내년 녹색채권 일반 지원을 기업당 최대 6억원, 지원금리 0.4%포인트로 조정하는 안이 담겼다. 대규모 감축 프로젝트 등을 위한 집중 지원도 신설해 3개사에 최대 50억원, 1%포인트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올해 한국형 녹색채권 이차보전 사업은 선정된 참여기업에 발행일로부터 1년간 이자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지원금리는 대기업·공공기관 0.2%포인트, 중소·중견기업 1.0%포인트이며 기업당 지원 한도는 최대 3억원이다. 다만 지원 대상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부합하는 한국형 녹색채권으로, 일반 녹색채권과 구분된다.
8000억원 발행에 평가비 1500만원…소액 회차는 비용 비중 높아
녹색채권 발행에는 녹색사업 적합성에 대한 외부검토와 자금 사용내역·환경성과 보고 등이 수반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발행 규모에 비례해 줄어들지 않으면 소액 발행일수록 상대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올해 3월 2년물 2950억원, 3년물 4300억원, 5년물 450억원, 10년물 300억원 등 총 8000억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발행조건 확정 공시에 기재된 네 회차의 ESG 평가수수료는 합계 1500만원이다. 발행액 대비 평가비 비중은 0.0019%다.
8000억원의 채권을 일반채권보다 1bp(0.01%포인트) 낮은 금리로 발행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이자 절감액은 8000만원이다. 공시된 평가수수료의 약 5.3배에 해당한다. 반면 300억원을 발행할 때 같은 폭의 금리 혜택을 받으면 연간 절감액은 300만원에 그친다. 발행 규모가 작을수록 평가비를 충당할 수 있는 이자 절감액도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사례에서도 발행 규모에 따른 비용 비중의 차이가 나타났다.
지역난방공사(071320)는 지난해 11월 발행한 900억원 규모의 70-1회 녹색채권과 300억원 규모의 70-2회 녹색채권에 ESG 평가수수료를 각각 750만원씩 계상했다. 발행액 대비 평가비 비중은 각각 약 0.0083%와 0.025%로, 300억원짜리 채권이 세 배 높았다. 만기와 적용 기준이 다른 두 채권에 같은 평가비가 계상되면서 소액 회차의 비용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반복 발행 여부와 평가계약도 비용을 좌우한다. 지역난방공사는 해당 공시에 2025년 10월부터 2026년 9월까지 ESG 평가수수료를 1차 1000만원, 2차 500만원으로 적용하고, 2차를 초과하면 면제하는 조건을 기재했다. 같은 계약기간에 발행을 이어가면 추가 평가비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다.
발행 이후에는 조달자금의 사용내역과 환경성과를 정리하는 업무에도 내부 인력이 투입된다. 기업이 체감하는 비용에는 공시된 평가수수료뿐 아니라 이러한 사후관리 부담도 포함된다.
최대 3억원 지원에 평가비 4800만원…지원한도에 따라 실익 달라져
정부 지원은 녹색채권 발행에 따른 추가 비용을 보전하는 수단이다.
포스코퓨처엠(003670)은 2024년 7월 총 6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가운데 4800억원 규모의 22-1회차가 한국형 녹색채권이며, 나머지 1200억원은 일반 회사채다. 공시된 녹색채권의 ESG 평가수수료는 4800만원이다.
포스코퓨처엠은 당시 발행과 관련해 최대 3억원의 이자비용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지원 한도 전액을 적용하면 평가수수료의 6.25배에 해당한다. 평가수수료만 단순 차감한 금액은 2억 5200만원으로, 지원금이 공시된 평가비를 웃돈다.
이러한 정부 지원과 시장에서 형성되는 금리 우대는 구분된다. 이차보전은 기업이 부담하는 이자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그리니엄은 투자자가 녹색채권을 선호하면서 일반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 효과다.
실제 발행기관들이 체감하는 금리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올해 7월 발표한 '국내 녹색채권 발행여건 점검 및 정책적 시사점’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발행기관 45곳 가운데 86.7%가 일반채권과 조달금리가 비슷하다고 답했다. 조달금리가 다소 낮다는 응답은 13.3%였다.
정부 지원과 외부검토·사후보고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한 총 발행비용은 일반채권보다 다소 낮다는 응답이 37.8%, 비슷하다는 응답이 42.2%였다. 나머지 20%는 오히려 다소 높다고 평가했다. 전체의 62.2%는 지원과 추가 비용을 반영해도 일반채권과 비용이 비슷하거나 더 든다고 본 것이다.
결국 녹색채권 발행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판단하려면 시장에서 확보한 금리 우대와 정부 지원금, 외부검토·사후관리 비용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발행 규모뿐 아니라 지원 대상 여부와 기업별 지원한도, 평가계약 조건에 따라서도 경제성이 달라질 수 있다.
주관사 투자 수요 확보가 관건…발행금리 낮춰야 실익 확대
발행기업의 부담을 줄이려면 준비·관리 업무를 효율화할 필요도 있다. 주관사가 기존 발행 과정에서 마련한 자료와 관리체계를 활용하도록 돕고 평가·보고 업무의 중복을 줄일 수 있다면, 기업이 투입하는 시간과 인력 부담을 낮출 여지가 있다.
금리 측면에서는 투자 수요 확보가 중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8000억원 발행은 1bp의 금리 차이로 연간 8000만원의 이자가 달라지는 규모다. 수요예측에서 추가 주문을 확보해 발행금리를 낮출 수 있다면 평가수수료 절감에 더해 기업의 전체 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부 지원이 평가·인증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을 덜어준다면, 주관사가 확보한 투자 수요는 발행금리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녹색채권의 금리 우대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실제 투자에 참여할 수요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주관사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IB토마토>에 "증권사가 녹색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수요처를 미리 충분히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요예측에서 자금이 많이 들어오면 발행금리를 낮출 여지가 생기는 만큼, 투자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주관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시은 기자 eqw58174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