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을 레미콘)②덩치 클수록 불리?…공공조달이 만든 M&A 역설
구용회 대표 중심 다수 법인·지역 거점 분산 운영
중기 지위 따라 공공조달 접근성·M&A 가치 갈려
쌍용레미콘 4400억원 빅딜로 전국망 확보…정책의 역설
공개 2026-08-20 06:30:00
이 기사는 2026년 08월 18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건설경기 침체로 레미콘 업계의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업황 부진은 단순히 건설 수요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레미콘 산업은 지역 공급 중심의 시장 구조와 중소업체 보호 정책, 제한적인 인수합병(M&A), 운송 의존도가 맞물리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전국에 1000개가 넘는 공장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산업 재편은 지연되고, 제조사는 생산과 품질을 책임지면서도 운송 단계에서는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슈퍼을'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레미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시장·정책·운송·재무 측면에서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위한 해법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정선골재그룹(이하 정선)이 지역별로 분산된 사업 기반을 토대로 레미콘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법인이 각각 지역 생산거점을 운영해 온 정선은 2023년 계열사 장원레미콘을 통해 쌍용레미콘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전국 사업망까지 확보했는데, 주목할 점은 성장 과정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설계된 레미콘 공공조달 시장과 맞닿은 것이다. 중기 지위를 유지할 경우 공공조달 시장 접근성을 이어갈 수 있지만 기업 규모가 커지면 제약을 받을 수 있어서다. 정선의 사례는 기업의 대형화가 반드시 유리하지 않은 레미콘 M&A 시장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분산된 법인·지역 거점…정선그룹이 몸집 키운 방식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선은 구용회 대표와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다수 법인이 연결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구 대표는 정선산업과 정선, 정선레미콘, 정선기업 지분을 각각 90%, 삼기레미콘과 만아 지분은 각각 100% 보유하고 있다. 가족과 임원 등 특수관계인도 일부 법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법인은 다시 다른 레미콘·골재 업체와 연결된다. 정선산업은 장원산업 지분 53%를, 정선은 장원산업과 장원레미콘 지분을 각각 47%, 58% 보유하고 있다. 장원 지분 61.2% 역시 그룹 측이 보유하고 있으며, 특수관계인 측은 제이에스와 청현기업 지분을 각각 60% 갖고 있다. 제이에스는 다시 가락산업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평화산업과 석천레미콘도 각각 철원과 양주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현재 지분율은 확인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계열사가 여러 개라는 사실보다 이들 법인이 각각 다른 지역에서 생산거점을 운영해 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정선산업은 광주, 정선은 의정부, 정선레미콘은 안양, 삼기레미콘은 인천, 정선기업은 김포, 만아는 포천에 각각 공장을 두고 있다. 장원산업·장원레미콘·장원·제이에스·청현기업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수도권과 강원권 곳곳으로 생산거점이 이어진다.
 
이는 운송거리 제약으로 지역별 시장이 분절된 레미콘 산업에서 의미가 크다. 하나의 대형 공장이 생산량을 늘려 전국에 제품을 공급하는 대신, 수요처와 가까운 지역마다 생산거점을 확보해야 영업권역을 넓힐 수 있어서다. 정선은 여러 법인을 통해 지역별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왔고, 이후 쌍용레미콘 인수를 통해 기존 지역 중심 사업망을 전국 단위로 확장했다. 즉 분산된 지배구조 자체가 M&A의 문제라기보다, 이 같은 사업 확장이 중소기업 보호 중심의 레미콘 시장에서 어떤 경쟁조건을 형성했는지가 핵심이다.
 
쌍용레미콘 사업장 전경 (사진=쌍용레미콘)
 
중소기업이면 열리는 공공시장…M&A 가치도 달라져
 
레미콘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이자 공사용자재 직접구매 대상 품목이다. 공공기관의 레미콘 구매는 일정 요건을 갖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쟁이 이뤄지며,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공사에서는 발주기관이 레미콘을 관급자재로 직접 구매한다. 민간 건설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관급 물량이 지역 레미콘업체의 판로와 공장 가동률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레미콘 시장에서는 기업의 대형화가 반드시 사업상 이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업 규모가 커지거나 소유구조가 바뀌어 중소기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중소기업 중심의 공공조달 시장에서 누리던 접근성이 약화될 수 있어서다. 특히 지역별 공장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레미콘업체에는 해당 생산거점이 축적한 관급 납품 실적과 조달시장 접근성 역시 사업가치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M&A에서도 인수 주체에 따라 같은 공장의 가치가 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기업이나 대형 계열사가 중소 레미콘업체를 인수할 경우 피인수기업의 소유·경영 독립성 등에 따라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반면 인수 이후에도 중소기업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자는 기존 공장의 조달시장 접근성을 이어갈 여지가 있다.
 
결국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M&A 시장에서는 대형사의 확장 유인을 낮추는 반면,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인수 여건을 제공할 수 있는 셈이다. 정선 사례에서 따져봐야 할 지점 역시 법인을 여러 개 보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각 계열사가 어떤 기준으로 중소기업 지위를 인정받아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했는지와 그룹의 외형 확대 이후 관계기업 기준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다.
 
 
4400억원에 쌍용레미콘 품었다…단숨에 전국 사업자로
 
정선은 지역별 사업 기반을 토대로 재무 여력도 축적해 왔다. 쌍용레미콘 인수가 추진되던 2023년 당시 주요 계열사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합산 11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고, 평균 부채비율도 약 50%로 비교적 낮았다. 지역별 사업을 통해 수익 기반을 구축하면서 그룹 차원에서는 대형 M&A에 나설 수 있는 재무 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체급을 단숨에 바꾼 것은 쌍용레미콘 인수였다. 정선 계열사인 장원레미콘은 2023년 쌍용C&E가 보유한 쌍용레미콘 지분 79%와 관련 부동산을 인수하기로 했다. 나머지 지분에 대한 풋옵션까지 포함하면 쌍용C&E가 확보하는 매각대금은 약 4400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당시 쌍용레미콘은 전국 19개 레미콘 공장과 연간 1500만㎥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인수 효과는 단순한 매출 확대보다 영업권역 확장에 있었다. 기존 정선의 사업 기반은 수도권과 강원권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었지만 쌍용레미콘은 수도권뿐 아니라 강원·부산·경남·울산·광주 등에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장거리 운송이 어려운 레미콘 산업에서는 지역 공장을 확보하는 것이 곧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 지역별 생산거점을 하나씩 확보하며 성장했던 정선이 쌍용레미콘 인수 한 번으로 전국 단위 사업자로 체급을 바꾼 셈이다.
 
인수 이후 정선 계열사와 쌍용레미콘 간 사업 연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쌍용레미콘은 2025년 정선산업으로부터 74억 5522만원어치를 매입했고 청현기업과도 약 1억원의 매입 거래를 했다. 지난해 말 정선산업에 대한 매입채무는 29억 7698만원으로 집계됐다.
 
특수관계자 거래 구조도 달라졌다. 2024년에는 쌍용C&E로부터 324억원을 매입하는 등 기존 쌍용C&E 계열과 거래했지만, 2025년에는 이들 회사가 특수관계자에서 빠지고 정선산업과 청현기업이 기타특수관계자로 이름을 올렸다. 인수 이후 소유구조 변화가 실제 거래관계 재편으로 이어진 모습이다.
 
보호가 만든 M&A 비대칭…산업 재편의 또 다른 숙제
 
정선의 성장 자체를 현행 제도의 위법이나 편법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중소기업 보호를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가 레미콘 M&A 시장에서는 기업 규모와 인수 주체에 따라 서로 다른 경쟁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형사는 인수를 통해 규모를 키울수록 중소기업 중심 공공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는 반면, 중소기업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자는 생산거점을 늘리면서 기존 조달시장 접근성을 이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 재편 측면에서도 역설을 만든다. 정부가 지역 중소 레미콘업체의 판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한편으로는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한 통합과 M&A의 경제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반대로 여러 생산거점을 확보하며 실질적인 사업 규모를 키운 사업자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의 중소기업 여부뿐 아니라 관계기업 기준과 실질적인 지배관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결국 정선의 쌍용레미콘 인수가 보여준 'M&A의 민낯'은 특정 기업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중소기업 보호와 산업 재편이라는 두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레미콘 시장의 구조적 모순에 가깝다.
 
한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레미콘은 지역 중소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중소기업 중심의 공공조달 정책이 업체들의 판로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라며 "특히 최근처럼 민간 건설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관급 물량이 공장 가동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보호라는 정책 취지는 분명 필요하지만 M&A 측면에서는 인수 주체에 따라 기존 공장의 조달시장 가치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라며 "대형사는 인수 이후 중소기업 지위가 사라질 수 있는 반면 중소기업 요건을 유지할 수 있는 사업자는 기존 조달시장 접근성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 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개별 법인의 형식적인 규모뿐 아니라 관계기업과 실질적인 지배구조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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