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지분 매각 4.5조 확보…ESS 투자 본격화ESS 수주 확대에 LFP 배터리 생산능력 확보 사활전기차 수요 둔화 속 중국 차세대 배터리 추격도 '부담'
[IB토마토 장민지 기자]
삼성SDI(006400)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으로 4조 45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동안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됐다가 중단됐던 미국 시너지셀즈 생산법인에 대한 투자도 2년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둔화가 여전한 가운데 중국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양산 속도까지 빨라지고 있어, 장기적인 실적 개선을 이루려면 차세대 배터리 개발 속도를 끌어 올려 시장 점유율을 선점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삼성SDI)
ESS 수주 확대에 생산라인 전환 가속…투자 자금도 '확보'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SDI가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지난 8월21일 이사회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의 약 33%를 4조 4500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자금을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관계를 종료하고, 삼성SDI의 단독 공장으로 전환된 미국 시너지셀즈(Synergy Cells)에 투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너지셀즈는 2024년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법인으로 설립됐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해당 법인에 대한 투자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해당 생산거점을 ESS용 배터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할 목적으로 시너지셀즈에 대한 투자가 2년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대규모로 확대되면서 전력저장 수요가 함께 커진 영향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ESS용 배터리 출하량은 461GWh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270GWh보다 71% 증가한 수준이다. 더불어 내년에는 ESS용 배터리 출하량이 처음으로 1000G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ESS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삼성SDI의 미국향 ESS용 배터리 수주도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는 올해 상반기 실적발표회에서 현재까지 확보된 수주만으로도 2029년까지의 생산능력을 대부분 채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글로벌 고객사와의 수주 계약을 연이어 확보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테슬라와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계약의 공급 규모는 10GWh 수준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에도 미국 에너지 기업과 약 1조 5000억원 규모의 ESS용 배터리 공급계약을 따내는 등 대형 수주를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수주가 밀려들자 삼성SDI는 생산능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미국 인디애나 스타플러스에너지(SPE) 1공장 일부 라인을 ESS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해 올해 4분기 가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해당 증설만으로는 현재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LFP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면서,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법인으로 설립됐던 시너지셀즈 공장의 생산라인도 ESS용 배터리로 전환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시너지셀즈는 ESS배터리 라인부터 순차 투자를 계획중이며 수주 프로젝트와 생산제품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공정, 설비, 생산성 향상 등 혁신을 통해 설립 당시 계획인 36GWh 이상의 규모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 개선 기대감 확대…차세대 배터리는 '과제'
국내 LFP 배터리는 그동안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뚜렷한 열세에 놓여 있었다. 삼성SDI를 비롯한 국내 배터리업계는 LFP보다 원가는 높지만 에너지 밀도가 앞선 삼원계 배터리를 주력으로 내세워왔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LFP의 약점인 낮은 에너지 밀도를 팩 설계로 보완해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삼원계 배터리는 결국 시장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ESS용 배터리 역시 화재 위험이 낮고 수명이 길다는 안전성과 비용 측면에서 LFP가 우세하다는 점은 마찬가지지만 여기에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삼성SDI가 미국 ESS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특히 LFP 배터리 수요가 늘면서 ESS 중심으로 생산라인 전환과 가동률 상승이 본격화되면 매출 성장과 고정비 부담 완화 효과로 실적 개선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그동안 실적 악화를 이어왔다. 전기차 캐즘이 본격화된 여파로 2023년 21조 4368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3조 2667억원까지 38.1% 급감했고, 영업이익도 지난해 -1조 722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ESS용 배터리 공급이 점차 늘면서 올해 상반기 매출은 7조 34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482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증권가에서는 향후 ESS용 배터리 수주가 매출로 연결되면 2028년부터 수익성 개선폭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부진한 전기차향 배터리 수요는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유럽이 전기차 보조금을 늘리고 환경규제를 강화하면서 시장이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의 재고 조정 여파로 삼성SDI의 유럽향 배터리 출하량 감소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발 빠른 차세대 배터리 양산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은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올해부터 전기차에 순차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원재료인 나트륨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아 원가 경쟁력이 높다. 이에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가격과 성능 모두에서 LFP를 웃도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SDI도 차세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양산 일정과 상용화 시점은 내놓지 못한 상태다. CATL을 필두로 중국의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경우, 과거 LFP 시장에서 점유율을 내줬던 전철을 차세대 배터리에서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에서 나트륨이온 배터리 양산이 본격화되면 LFP보다 경쟁력이 뛰어나 전기차는 물론 ESS용 배터리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업계에서는 지배적이다. 이에 삼성SDI가 ESS와 전기차 시장에서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양산에 속도를 내 글로벌 점유율을 선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언급한 것처럼 ESS용 배터리는 2029년까지 물량을 상당 부분 확보했으며, 향후 미국 시장의 전력용 및 무정전전원장치(UPS) 성장을 감안하면 매출 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삼성SDI는 각형 폼팩터 기반으로 하이니켈, LFP, 미드니켈까지 추가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고 헝가리에도 생산거점을 보유해 현재 다수의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 신규 프로젝트를 협의중이다. 향후 고객 수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신규 수주 기회를 적극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민지 기자 wkdalswl0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