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규리 기자]
한화(000880)가 인적분할에 이어 미국 필리조선소 지분구조까지 손보면서 핵심 계열사별 사업 역할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화시스템(272210)은 적자가 이어진 필리조선소를 연결 대상에서 제외하고 우주·인공지능(AI) 사업에 집중하는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미국 방산·조선사업을 전담하는 식이다. 다만, 계열사 역할 재편 과정에서 한화가 자회사 지원에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면서 차입금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핵심 자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필리조선소 인수와 증설을 맡게 된 만큼 계열사들의 현금흐름 관리가 지주사의 큰 숙제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한화)
한화시스템은 우주·AI, 한화에어로는 미 조선…사업 구조 재정리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최근 한화시스템이 보유한 필리조선소 지분 60%를 같은 그룹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배하는 미국 조선법인 한화 디펜스 USA 쉽빌딩(Hanwha Defense USA Shipbuilding)에 매각하기로 했다. 거래금액은 2억 3760만달러(약 3251억원)로 매각 예정일은 다음달 31일이다.
인수법인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자회사인 한화 디펜스 USA(Hanwha Defense USA)와 한화 퓨처프루프(Hanwha Futureproof)가 참여한 한화 USA 쉽빌딩 홀딩스(Hanwha USA Shipbuilding Holdings)의 100% 자회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두 법인을 통해 인수법인 지분 75%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인수를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2400억원의 현금이 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나이스신용평가)
한화시스템도 인수법인 유상증자에 2290만달러를 다시 투입한다. 이를 제외하면 필리조선소 지분 매각에 따른 순유입액은 2938억원이다. 거래가 마무리된 이후 필리조선소의 지분율(간접지분 포함)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45% △
한화오션(042660) 45.6% △한화시스템 5.6% △한화솔루션 3.8%로 재편될 예정이다.
앞서 한화시스템은 2024년 말 한화오션과 함께 총 1억달러를 투입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당시 한화시스템이 지분 60%, 한화오션이 나머지 40%를 나눠 가졌다. 미국 조선시장에서 한화시스템의 전투체계와 통신·센서 기술을 확대할 교두보로 활용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인수 이전 수주한 저수익 선박의 건조가 지연된 데다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나면서 필리조선소의 흑자전환 시점도 예상보다 늦어진 상태다. 실제 필리조선소는 지난해 매출 5655억원, 영업손실 160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필리조선소가 포함된 한화시스템 기타 부문은 지난해 1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691억원의 적자를 냈다. 방산과 ICT 부문의 실적 개선에도 연결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3%에 머물렀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필리조선소의 자산과 부채, 손익은 한화시스템 연결재무제표에서 제외된다. 한화시스템은 조선소 운영 부담을 덜고 방산전자와 우주·AI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지분 매각으로 연결기준 수익성 개선과 중장기 투자 및 재무부담 완화가 예상된다"라면서도 "우주위성과 AI 데이터센터 관련 신규 투자 수요를 고려하면 재무부담 경감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방산과 조선사업을 함께 끌고 가는 역할이 강화된다. 필리조선소의 최대 간접주주로 올라서 현지 방산 수주와 조선소 운영을 한 축에서 추진하고 한화오션은 함정 설계와 건조 기술을 지원하는 구조다. 한화시스템은 레이더와 전투체계 등 방산전자 기술을 공급하는 역할로 남는다.
한화 측은 <IB토마토>에 "신사업 전략 추진을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화, 계열사 지원에 순차입금 5.5조원
계열사별 사업 역할은 선명해졌지만 재편 과정에서 지주사 한화의 재무 부담은 커졌다. 한화는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 한화솔루션 유상증자에도 자금을 투입했다. 지난해 말 별도기준 4조 6827억원이던 순차입금은 반년 새 5조 5000억원으로 늘었다.
필리조선소 거래가 한화의 별도 현금흐름에 직접적인 유출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이에서 이뤄지는 그룹 내부 거래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화 기업가치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9%에 달하는 만큼 핵심 자회사의 투자 부담은 향후 배당을 통해 지주사 현금흐름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지분 인수에 2400억원을 투입한 뒤 필리조선소 생산능력 확대도 주도해야 한다.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투자해 도크 2개와 안벽 3개를 추가하고 연간 건조능력을 2척 미만에서 최대 20척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상선뿐 아니라 미국 함정과 유지·보수·정비 사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올해 상반기 말 총차입금은 15조 9012억원으로 지난해 말(12조 8254억원) 대비 23.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3551억원으로 순유출로 돌아섰고, 잉여현금흐름도 -1조1651억원에 머물렀다. 방산 수출을 기반으로 이익창출력은 확대됐지만 해외 투자와 운전자금 부담이 동시에 늘어난 탓이다.
이승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인적분할과 자회사 유상증자 등 주요 지배구조 변화는 일단락됐다"라며 "현재 차입금 수준은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상황으로 이라크 사업 재개와 현금흐름 확대를 통해 차입금을 축소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