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한미 통상협상은 더 이상 관세율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와 공급망, 수출통제, 안보정책이 결합된 패키지 협상으로 봐야 한다"
정인교 전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은 23일 <IB토마토>가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경제안보 시대, 기업 경영전략을 다시 짜다'라는 주제로 개최한 <2026년 경영전략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23일 여의도 콘래도호텔에서 IB토마토가 개최한 2026 경영전략 컨퍼런스에서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IB토마토)
정 교수는 현재 통상환경을 '복합 위기의 도래'로 규정했다. 미중 전략경쟁 장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중동 지역 군사 리스크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동시에 누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일방주의와 적극적 산업정책, 중국의 전략광물 통제와 쌍순환 전략,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기업의 통상 리스크가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봤다.
특히 정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단순한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 제조업 회복과 안보 논리가 결합된 구조적 정책으로 해석했다.
그는 "관세 만능주의, 무역적자 축소, 산업보조금, 중국의 과잉생산 대응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라며 "경제안보 개념이 무한히 확장되면서 통상정책 전반이 안보화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한미 관세협상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졌지만, 철강·알루미늄 고관세와 비관세장벽, 농업 개방 압박 등 잔존 리스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협력을 약속한 만큼, 향후 협상에서는 단순한 관세 인하보다 투자 효과와 국익 극대화 방안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중 관세휴전의 지속 가능성도 제한적으로 봤다. 미국 내 초당적 중국 견제 기조와 트럼프 2기 내 강경파 영향력, 중국의 철강·태양광·전기차·배터리 과잉생산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는 미국의 대중국 인식이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코로나19와 인권 문제, 기술패권 경쟁, 대만 이슈가 누적되며 미국 내 대중 강경론은 공화·민주 양당을 가리지 않는 정책 컨센서스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관세협상은 단순한 시장 개방 협상이 아니라 미국식 경제안보 규범을 동맹국에 이식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정 교수는 "트럼프 라운드의 핵심 메커니즘은 고율 관세 압박을 통해 양자협상을 강요하고, 투자와 구매 약속을 받아낸 뒤 경제안보 공조와 대중국 포위망 강화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협상 의제도 상대국 관세 철폐나 비관세장벽 제거에 그치지 않고 대중국 견제 공조, 수출통제, 공급망 협력, 우회수출 차단, 원산지 검증 강화, 강제노동 및 노동·환경 기준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라운드 이후 글로벌 통상질서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 질서가 약화되고 관세가 상시적 정책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경제안보가 새로운 통상규범으로 정착하면서 수출통제, 기술안보, 투자심사, 핵심광물 동맹, 인공지능(AI) 통상, 디지털 규범 등이 향후 협상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대응 방향으로는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통합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을 분리하지 말고 경제안보형 통상전략으로 상시 통합해야 한다"며 "공급망, 수출통제, 탄소규범, 보조금 규제 등을 하나의 전략 체계 안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한국이 극단적으로 높은 대외의존도와 공급망 취약성을 안고 있는 만큼, 경제안보 역량을 제도와 조직에 내재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반도체, 배터리, 조선, 인공지능 등 첨단 전략산업에서 한국의 대체 불가능성을 협상력의 기반으로 삼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통상 확대를 통해 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대중국 전략 공조 압박이 강해질수록 한국은 산업·통상·기술안보를 통합한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AI 통상과 디지털 규범, 공급망 재편은 새로운 협상 영토가 되는 만큼 선제적인 룰메이킹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