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대수술)②약값 깎이자 R&D부터 축소…제약업계 비상경영 돌입
양도·양수 약가 감액 및 9월 기준시점 확정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유통 마진 갈등 고조
하반기 희망퇴직·사업 통폐합 등 구조조정 예상
공개 2026-08-07 07:40:00
이 기사는 2026년 08월 05일 18:07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일부터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제약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계단식 약가인하 강화와 최고가 요건 미충족 페널티 확대, 다품목 등재관리 신설 등 후발 제네릭의 시장 진입 문턱을 높이는 조치가 한꺼번에 적용됐기 때문이다. 제네릭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진 제약사들은 수익성 악화와 신제품 전략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IB토마토>는 이번 약가개편의 핵심 내용과 제약업계에 미칠 파장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정부가 복제약(제네릭) 약가를 대폭 깎는 고강도 개편을 단행하면서 국내 제약업계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건전화와 신약 개발 선순환을 명분으로 약가제도 개편 고시를 전격 시행하면서 수익성 감소를 예상한 제약사들이 하반기 대대적인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 칼을 빼 들고 있는 것이다. 추가 약가 인하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제약생태계 전체가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발언하는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수익성 악화 예상에 마진율 확보 '총력'

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약가 개편 제도 적용 순서가 부적절하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약가 우대 혜택을 부여하는 '혁신형 제약기업' 재지정 및 평가 절차가 오는 12월 완료될 예정임에도, 정부가 개정안 시행을 12월까지 유예해달라는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기등재약 약가 인하 시 49%, 준혁신형은 47%의 특례 산정률을 일정 기간 보장받는데, 우대 대상 기업이 확정되기도 전에 약가 인하를 먼저 강행하는 것은 행정적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거세다.
 
약가 인하 정책의 파급 효과는 제약사를 넘어 의약품 유통 채널과 의료현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선 신약 R&D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제네릭 매출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연구개발비를 우선적으로 축소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당장 수익성이 대폭 감소하는 상황에서 고위험·고비용 구조인 신약 개발 연구나 설비 투자(CAPEX)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IB토마토>에 "이번 약가 개편으로 매출과 영업이익률 악화가 현실화되면 당초 추진하려 했던 R&D 투자나 설비 투자, 인력 채용 등 각종 사업 계획이 축소되거나 변경될 수밖에 없다"라며 "지속적인 매출 유지를 위해 타사 의약품을 대신 판매하는 코프로모션이나 화장품 등 타 분야로 눈을 돌릴 경우, 제약기업 본연의 역할인 R&D와 생산이 오히려 소홀해지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채산성이 떨어진 기초 주사제나 필수의약품의 생산 중단 우려 또한 나온다. 정부가 '수급안정 선도기업' 지정 등 일부 정책적 보완책을 마련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생산비 부담 등 현장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IB토마토>에 "수익성을 보존하려는 기업 생리상 채산성이 낮고 마진이 부족한 필수의약품 생산을 지속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결국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이 한층 심화될 개연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의약품 유통업계와의 마찰 역시 현실화됐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국내 제약업계에 약가 인하에 따른 유통 마진 축소나 차액 정산 부담을 유통업체에 전가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약국과 병·의원의 재고 조사, 반품, 차액 정산에 들어가는 물류 및 행정 비용이 커짐에 따라 유통 현장의 차질도 예상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IB토마토>에 "이익률 감소에 직면한 제약기업들이 유통 마진을 포함한 각종 비용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영 환경 불확실성과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하반기 국내 제약업계 전반으로 인력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 기조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며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를 통폐합하거나 대대적인 경비 절감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사업재편 및 인력 감축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양도·양수 시 추가 인하 적용에 업계 '진땀'
 
제약업계가 이번 정부의 제네릭 약가 개편안에서 가장 크게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은 △'품목 양도·양수' 시 적용되는 약가 산정 기준과 △기등재 의약품의 '약가 인하 기준 시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품목을 양도·양수할 때 기존 승계 약가와 개정 기준에 따라 재산정한 약가 가운데 더 낮은 금액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경영 효율화나 비수익 사업부 정리를 목적으로 특정 의약품의 품목 허가권을 타사에 매각하거나 인수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해왔다. 기존에는 양수 기업이 양도 기업의 기존 약가를 그대로 승계해 유지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개정안에 따라 품목 이전이 발생할 경우 개정된 기본 산정률(45%)과 강화된 기준 요건(자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실시,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등)을 바탕으로 약가가 재산정된다.
 
개편안 적용으로 과거 높은 산정률을 적용받던 품목이라도 양도·양수 절차를 거칠 경우 약가 인하 조치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나 품목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개선 활동이 오히려 추가적인 약가 감소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등재 의약품의 약가 인하 기준 시점을 둘러싼 의견 차이 또한 팽팽하다. 제약업계는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조치가 최종 반영된 2014년의 약가를 기준 시점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미 수차례 조정을 거쳐 하향 조정된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률 45%를 재적용할 경우, 실질적인 약가 인하폭이 과도하게 커져 제약사의 손실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제약업계의 시행 유예 및 기준 변경 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오는 9월 시행 시점의 약가를 기준 시점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업계가 체감하는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폭은 당초 예상치를 상회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약가 인하 조치를 통해 연간 약 1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이를 고가 혁신 신약과 희귀질환 치료제, 필수의약품 지원에 재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복제약 중심의 난립 구조와 영업력 의존 관행을 개선하고 신약 개발 중심의 산업 체질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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