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리 상승과 규제 강화로 차입 여건이 악화되면서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기존 바이아웃 중심 전략만으로는 기대 수익률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고 있다. 이에 PEF들은 소수지분 투자와 메자닌 등으로 투자 방식을 넓히며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IB토마토>는 이 같은 변화가 일시적 대응에 그칠지, 아니면 사모펀드 산업의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지 짚어보고, 투자 방식 변화가 수익률과 리스크, 인수·합병(M&A) 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의 투자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경영권을 확보한 뒤 인수금융을 활용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바이아웃이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소수지분 투자와 메자닌, 기업대출 등 크레딧성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바이아웃 투자금 회수 문턱이 높아진 반면, 정기적인 이자수익과 만기 구조를 갖춘 대출형 자산에 대한 기관투자자(LP) 선호가 커지고 있어서다.
국내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는 그동안 PEF 출자를 바이아웃과 그로스 중심으로 운용해왔지만, 최근에는 크레딧 전용 블라인드펀드에 별도 자금을 배정하고 있는 추세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출자사업에서 PEF·밴처캐피탈(VC)과 함께 크레딧 펀드 부문을 마련해 3500억원을 배정했고, 당시 IMM크레딧앤솔루션(ICS), 글랜우드크레딧, 큐리어스파트너스가 위탁운용사(GP)로 선정됐다. 우정사업본부도 지난해 크레딧 전략 위탁운용사 선정에 착수하면서 대출채권,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 크레딧 상품에 펀드 자산의 80% 이상을 투자하도록 조건을 제시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바이아웃 대안 찾는 LP 자금…PEF 크레딧 펀드 '대흥행'
시장에서는 이를 LP 자금의 성격 변화로 보고 있다. 엑시트 지연과 밸류에이션 조정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바이아웃 투자는 회수 시점과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부담 때문이다. 반면 크레딧 투자는 만기와 이자수익이 비교적 명확하고, 구조에 따라 담보·상환권·전환권을 붙일 수 있다. 바이아웃이 기업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라면 크레딧은 기업의 현금흐름과 자본구조에 들어가는 투자로,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에 속한다는 평가다.
실제로 침체된 바이아웃 펀딩 시장과 달리, 국내외 주요 사모 크레딧 펀드에는 수조원의 자금이 몰리며 연일 대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대체투자 시장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ICS는 지난해 1호 플래그십 블라인드 펀드를 당초 목표했던 500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9530억원 규모로 클로징했고, 스틱크레딧은 ‘스틱크레딧 1호’ 블라인드펀드를 약 4300억원 규모로 최종 결성했다. 두 운용사가 결성한 크레딧 펀드에만 1조3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린 셈이다.
펀드 결성 이후 집행 속도도 빨랐다. 스틱크레딧은 펀드가 완전히 결성되기 전인 지난해 상반기 1000억원 넘는 자금을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콘택트렌즈 제조사
인터로조(119610)에는 약 60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고,
코오롱티슈진(950160)이 발행한 CB에도 약 400억원을 배정받으며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같은 변화는 제도 개편 이후 본격화됐다.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이른바 '10% 룰'이 폐지되면서 경영권 인수 없이도 소수지분, 메자닌, 직접대출 등 다양한 운용 전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ICS는 법 개정 직전인 2020년 9월 설립됐고, 글랜우드크레딧은 2021년 8월 문을 열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도 2022년 상반기 크레딧 조직을 출범시키며 메자닌·사모대출·구조화 지분 투자로 영역을 넓혔다. 기존 바이아웃 하우스들이 제도 개편에 맞춰 별도 크레딧 플랫폼을 만들거나 내부 전담 조직을 키우며 투자 전략을 다변화한 셈이다.
소수지분·메자닌 중심 국내형 크레딧…"해외 시장과 달라"
일각에서는 사모펀드의 크레딧 투자의 위험성도 제기된다. 다만 해외 사모대출 시장에서 나타난 유동성 미스매치와 부실 가능성을 국내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상장 기업에 대한 직접대출이 중심인 미국 등과 달리 국내 시장은 소수지분, 메자닌, 선순위 대출 등 구조화 투자 중심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비경영참여형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78개, 약정액 6조원이며, 2024년 투자 방식은 소수지분 41.0%, 메자닌 33.7%, 기업대출 22.6% 순이다. 반면 글로벌 대체투자협회인 AIMA와 산하 사모신용 전문기구 A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전 세계 사모 크레딧 운용자산은 약 3조5000억달러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기업대출이 6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 대형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최근 국내 LP들이 사모대출 등 대체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호도는 높다"며 "논란이 되고 있는 해외시장과 달리 국내에선 전환권과 상환권, 담보, 풋옵션 등을 통해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국내형 크레딧 투자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어 리스크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IB토마토>에 "사모대출 시장은 은행 건전성 규제로 인해 대출 여력이 줄었고, AI 기술로 대표되는 산업 구조상 담보 자체가 무형 자산으로 바뀌면서 증가하는 추세"라며 "투자자들은 그동안 사모대출 시장에서 리스크 대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왔기 때문에 전체적인 국내 사모대출 시장 규모도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