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이성은 기자] 은행권 커버드본드 시장이 말라붙었다. 지난해 하반기 수년 만에 커버드본드 발행 시장이 활성화되는 듯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한 건도 발행되지 않았다. 하반기에도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은행권은 커버드본드 발행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4대 시중은행(사진=각 사)
올 상반기 커버드본드 발행 '전무'
31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커버드본드 발행 건수는 전무하다. 지난해 하반기 커버드본드 발행 러시가 이어진 것과는 상이한 분위기다. 당시 국민은행의 경우 다섯 차례에 걸쳐 1조원 규모의 커버드본드를 찍어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총 5000억원, 하나은행 1800억원 등 대규모로 발행했다.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장려 때문이다.
커버드본드는 은행 등 발행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등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장기채권이다. 2중으로 권리를 보장해 비교적 안전한 채권으로 꼽힌다. 지난해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기반 마련을 위한 커버드본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인센티브도 준비했으나 실적은 미미한 모양새다.
올해 커버드본드를 발행한 금융사도 우리은행뿐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2100억원의 지급보증부 커버드본드를 발행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 지급보증을 활용한 원화 커버드본드다. 이번 채권의 기초자산집합은 주택담보대출채권이다. 지난해 10월31일 HF가 진행한 평가 상 대출채권 건수는 1조2654억원, 대출잔액은 2조6814억원이었다.
지급보증부 커버드본드는 은행이 보유한 우량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에 주택금융공사의 지급보증을 결합한 상품이다. 우리은행이 지급보증부 커버드본드를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행 후 발행기관 상환금이나 기초자산집합에서 발생하는 현금 흐름을 기초로 커버드본드의 원리금을 상환하는 구조다.
이는 지난해 5월 출시된 커버드본드 활성화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주택금융공사에서 지급보증을 넣어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상품이다. 당시 신한은행이 10년 주기형 주택담보대출을 출시한 바 있다.
이번 우리은행의 커버드본드 발행은 지난해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해 4대 은행 중 커버드본드를 발행하지 않은 은행은 우리은행이 유일했다
정부규제로 대출 확대 힘든데 굳이?
은행권이 커버드본드를 발행하지 않는 데는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난해 커버드본드 발행도 기발행 건에 대한 상환 목적과 금융당국의 권장 영향이 컸다. 은행권은 은행채를 통해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장기 채권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 탓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도 주저하게 만든다. 올해 상반기에 한 건도 발행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국민은행의 경우에도 커버드본드 발행 계획을 미뤘다. 국고채 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통상적으로 국고채 5년물 금리에 가산해 커버드본드 금리를 결정한다. 우리은행의 경우에도 국고채 5년물 금리에 0.15%p를 더해 2.76%에 이번 커버드본드를 발행했다. 국고채 5년물 금리가 하락할 경우 더 낮은 금리로 발행할 수 있다.
게다가 신한은행이 내놓은 10년 주기 주택담보대출도 시장반응은 미지근했다. 주로 5년 주기형 주담대가 출시되는데, 이에 비해 비교적 높은 금리를 적용하다 보니 고객 입장에서는 이자비용을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신한은행이 당시 출시한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상품은 5년 주기 연 3.28~5.29%, 10년 주기 3.38~5.39%이었다. 신한은행은 기존 발행 건에 대해 여력이 있다 보니 추가 발행은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상황도 커버드본드 발행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가계부채 고삐를 강력하게 조이면서다. 지난 6월27일 금융위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에 따라 금융권의 가계부채 확대 폭이 절반으로 줄면서다. 자금을 조달해도 쓸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에 은행권은 우리은행의 커버드본드 발행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발행 목적이 대출금 운용과 유가증권 운용인데, 사실상 하반기 여신 확대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사실상 하반기 대출 확대에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자금 조달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라면서 “상황을 지켜보며 필요성에 따라 발행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