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송혜림 기자] 합병 상장을 기피하는 시장 분위기에 하나증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하나증권이 상장시킨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SPAC)들이 잇따라 상장폐지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하나29~31호스팩이 상장폐지된 데 이어 32·33호스팩도 합병 예비심사를 청구하지 못했다.
(사진=하나증권 홈페이지)
합병 불발, 올 들어서만 5번째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하나증권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킨 스팩들이 합병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하고 최근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스팩은 실질적인 영업 활동 없이 유망한 비상장 기업과 합병하기 위해 상장하는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다. 상장 후 보통 3년 이내에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상장폐지된다. 이 경우 투자자는 원금과 함께 3년간 예치한 돈을 이자와 함께 돌려받을 수 있다.
먼저 하나29호스팩과 하나30호스팩, 하나31호스팩은 지난 2월부터 10월 사이 상장예비심사신청서 미제출로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하나32호스팩도 동일한 이유로 지난 9월 관리종목에 지정된 후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으며, 하나33호스팩 역시 기업인수목적회사 존립기한 관련 요건에 따라 관리종목에 지정되었다. 만일 33호스팩도 상장폐지가 되면 5회 연속 합병 실패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나증권은 지난 2024년까진 스팩 상장에 있어선 강점을 보여왔다. 당시 한 해에만 3건(하나21호·하나22호·하나24호)의 스팩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탄탄한 트랙 레코드를 쌓았다. 대부분 증권사들이 껍데기 스팩 상장 수와 합병 상장 건수의 격차가 커서 비판을 받던 중에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선 하나28호스팩이
삼익제약(014950)과 합병한 건을 제외하면 25호스팩부터 27호스팩까지 잇따라 상장폐지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반 IPO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며 부진을 겪었다.
하나증권은 최근 들어 스팩 합병 환경이 업계 전반적으로 위축됐다는 입장이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합병 상장기업들의 상장 후 주가흐름이 대체적으로 좋지 못했고, 시총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요건이 강화되다보니 상대적으로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이 선택하던 스팩합병이 더 어려워졌다"라며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들은 스팩합병보다는 직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청산에도 리스크 적어…대상 발굴·주선실적 확보 부담
보통 스팩이 합병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해 청산되더라도 증권사에 미치는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증권사의 스팩 취득 단가는 일반 투자자의 50%에 불과할뿐더러, 합병에 실패해도 스팩 상장 당시 거둬들이는 인수·자문 수수료가 청산 비용을 상쇄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팩 상장과 합병을 주선하는 증권사의 입장에서는 합병 실패가 반복될수록 신규 합병 대상 발굴과 주선 실적 확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스팩은 하나34호스팩, 하나35호스팩, 하나36호스팩이다. 모두 존속 기한까지는 1~2년 가량 여유가 있다는 게 하나증권 입장이다. 다만 앞선 스팩들의 합병 실패로 대상 발굴과 실제 성사 여부가 중요해졌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합병 후 주가 하락 등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합병 건수를 채우기 위한 무리한 합병은 진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라면서 "최근 생산적금융, 모험자본 공급 측면에서 pre-IPO 투자와 주관을 연계하는 모델, 기술특례상장 대응 역량 강화 등 IPO 본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전략 전환이라기 보다는 시장 변화에 맞춰 체질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또 "스팩합병 자문에 있어 다양한 트랙레코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합한 기업을 계속 물색하고 있다"라며 "IPO 주관 확대를 위해서는 'One IB' 측면에서 그룹연계 투자와 딜 소싱을 강화하고 기술특례상장 기업에 대한 사내 역량을 키워 주관 건수를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하나증권의 ECM 본부는 20여 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ECM1실부터 3실은 모두 IPO 주관과 Pre-IPO 투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수요 줄고 상폐 늘어…스팩 시장 침체일로
스팩 합병 성과에 대한 책임을 개별 증권사에 묻기엔 스팩 시장 자체가 예년보다 크게 위축됐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살펴보면 스팩 IPO 건수는 지난 2022년에 45건 고점을 찍고 2023년 37건에서 지난해 25건까지 줄어들었다.
전체 IPO 시장에서 스팩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3.4%에서 5.7%로 하락했다. 스팩 합병 성공률은 지난해 38.5%로 전년(68%) 대비 29.5%포인트 떨어졌다.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 시장에서 스팩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2~3년간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 20일까지 신규 상장한 스팩 수 역시 12건으로 남은 개월 수를 감안해도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예비심사 미제출에 따라 상장폐지된 스팩은 같은 기간 총 25곳으로 전년 22곳보다 늘었다.
과거 스팩은 코로나19 시기 IPO 시장 호황과 함께 비상장 우량기업의 우회상장 통로로 절차가 복잡했던 직상장 대안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증시 활황으로 IPO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스팩 상장보단 일반 상장 여건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여기에 지난 7월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업들이 스팩 상장을 꺼리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통 스팩 합병을 노리는 비상장 기업들은 시가총액이 작은 편인데, 상폐 기준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상장 자체를 미루거나 일반 기업공개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는 스팩 시장 활성화를 위해 스팩 IPO에서 일반 기관투자가 배정 물량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의무보유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도록 한 기준을 폐지했지만 제도 개선 성과는 미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장 심사 기간은 이미 강화됐고 합병 심사 기간도 일반 코스닥 시장 심사 기간과 비슷해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우량기업은 기본적으로 직상장을 선호하고 규모가 작거나 약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스팩으로 진행하다보니 심사도 어렵고 합병 완료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우량기업은 일반 IPO를 선호하고 투자자의 경우에도 상장 초기 주가상승 모멘텀을 기대할 수 있는 일반 IPO를 선호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 역시 "실무적으로는 스팩 합병에 적합한 우량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면서 "최근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기업가치와 자금조달 규모, 상장 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일반 IPO와 스팩 합병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실제 합병으로 이어지기까지 신중한 검토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나날이 위축되는 스팩 제도 활성화를 위해 올 초 장·단기별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스팩 상장 첫날에 발생하는 급격한 주가 변동을 방지하기 위해 스팩 투자 시 투자자가 유의해야 할 안내를 강화하고, 스팩 공시서류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단 설명이다.
송혜림 기자 divi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