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해외수주 진단)①중동 줄이고 유럽·북미로…수주 지도 바뀐다
해외수주 11년 만에 최대…유럽 중심 수주 변화
과거 중동서 미수금 충격…수주보다 회수가 중요
선진시장이라도 리스크는 존재 평가도
공개 2026-01-13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01월 08일 17:5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미분양 장기화와 주택 경기 둔화로 국내 사업 여건이 악화되자 주요 건설사들은 해외 프로젝트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해외수주 실적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다만 과거 중동 중심 해외사업에서 대금 정산 지연과 장기 미수금 누적으로 재무 부담을 겪었던 만큼, 최근에는 외형 확대보다 회수 가능성과 현금창출력을 우선하는 '선별 수주'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해외수주 회복 국면에서 과거의 리스크 경험이 건설사들의 수주 전략과 계약 구조, 재무 판단 기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기조가 지속 가능한지 진단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과거 중동 중심 해외사업에서 대금 정산 지연과 미수금 누적을 겪었던 국내 건설사들이 최근 들어 수주 전략 방향을 바꾸고 있다. 해외 미수금이 재무 부담으로 현실화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유럽·북미 등 고신용 시장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즉 해외수주 규모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건설사들이 단순한 외형 확대보다 회수 가능성과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질적 전환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유럽 비중 44%로 급증…중동은 2위 유지하며 숨 고르기
 
8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누적 해외수주액은 446억1000만달러(64조 5952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최근 5년 평균(277억7000만달러, 40조 2109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326억9000만달러, 47조 3351억원) 대비 36% 증가한 수치다. 11월 누적 기준으로는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실적이다.
 
무엇보다 지역별 수주 구성에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올해 1~11월 기준 유럽 수주액은 198억달러(28조 6684억원)로 전체의 44.4%를 차지했다. 전년 같은 기간(50억달러, 15.4%) 대비 약 4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반면 중동 수주는 117억달러(16조 9404억원)로 비중은 26.3%에 그쳤다. 절대 금액 기준으로는 여전히 두 번째로 큰 시장이지만, 전년 같은 기간(167억달러, 51.0%)와 비교하면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북미·태평양 지역 수주는 56억6000만달러(8조 1956억원)로 12.7%를 차지하며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고, 아시아 수주는 54억8000만달러(7조 9350억원)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각각 12억6000만달러, 6억6000만달러(1조 8239억원, 9554억원)로 비중은 크지 않지만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올해 유럽 수주 비중이 크게 확대된 배경에는 '체코 원전 수주'라는 단일 초대형 프로젝트의 영향이 컸다. 체코 원전 수주는 체코 정부가 추진 중인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지난해 들어 약 187억2000만달러(27조 972억원)가 반영되며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 실적을 끌어올린 핵심 프로젝트다. 단일 국가·단일 사업 기준으로 전체 해외수주의 42%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고, 체코 정부와 국영 전력회사가 발주한 공공 인프라 사업이라는 점에서 계약 안정성과 발주처 신용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해외수주의 지역 구성이 과거 중동 중심에서 다층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매출은 중동 플랜트와 에너지 인프라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최근에는 유럽·북미를 축으로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한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원전·에너지·친환경 인프라 등 고부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선진국 시장 공략이 이어지고 있고, 북미에서는 LNG 플랜트와 에너지 인프라, 현지 생산기지 건설을 통한 안정적 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아시아는 기존 인프라·산업설비 중심의 수주 흐름을 유지하는 한편,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비중은 작지만 성장률이 높은 시장으로 관리형 접근이 병행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잠재 수요가 큰 대신 정치·재정 리스크가 상존하는 지역인 만큼, 장기 경험을 가진 일부 건설사를 중심으로 제한적·선별적 진출이 이뤄지고 있다.
 
 
중동 의존 축소 배경…누적된 미수금이 만든 '학습 효과' 
 
중동 비중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흐름의 배경에는 재무 리스크에 대한 학습 효과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과거 중동 중심 해외사업에서 대금 정산 지연과 장기 미수금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특정 지역 의존에 대한 경계심이 업계 전반에 확산됐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해외 건설공사를 수행하고도 1년 이상 회수하지 못한 장기 미수금은 약 1조 2600억원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중동 지역에서만 1조원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최근 3년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미수금 총액은 50조원 안팎에 이르며, 이 같은 자산의 질 저하는 신용도와 조달 여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지역에서 진행 중인 신도시 및 대형 플랜트·SOC(사회기반시설) 사업 특성상 준공 이후 일괄 정산 구조가 많고, 발주처 재정 사정이나 분쟁이 겹치면 회수가 수년간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건설사들은 의존도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부는 발주처와 시공사 간 의견 차이로 분쟁이 발생하거나 발주처의 재원이 부족해지는 등의 사유 때문에 미수금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외 건설 프로젝트의 기본 흐름은 수주→착공(발주처 착공지시(NTP) 후 선수금 수령)→공정 진행→준공(검사·인도)→대금 회수로 정리된다. 국내 공사도 공정에 따라 기성금을 받지만, 해외 건설 프로젝트는 공사비 지급 구조 자체가 상대적으로 더 후행적이다. 국내 공사는 발주처가 비교적 명확하고 기성 검측·지급 주기가 짧아, 공정과 현금 유입 간 시차가 제한적인 반면, 해외 EPC(설계·조달·시공 일괄 방식)설계·플랜트 공사는 계약 구조상 특정 마일스톤(대금 청구가 가능한 공정 기준)에 도달한 이후에야 대금을 청구·지급받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구조적 리스크는 건설사들의 재무 부담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해외 장기 프로젝트 비중이 높은 건설사일수록 공정은 진행되지만 청구 시점이 도래하지 않아 매출채권이 급증하고, 영업현금흐름이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발주처 재정 악화나 지정학적 변수로 공사가 중단될 경우, 투입 원가는 누적되지만 매출 인식과 대금 회수는 불확실해지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현대건설(000720)의 경우 마일스톤 지급 조건이 적용된 해외 플랜트 공사에서 공정은 진행됐지만 청구 시점이 도래하지 않으면서 매출채권이 급증한 바 있다. 또 삼성물산(000830)도 UAE 원전 사업과 카타르 LNG 터미널 등에서 수천억원대의 미청구공사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여타 건설사들도 중동 원전·LNG 프로젝트에서 미청구공사비 등 재무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체코 원전 수주 역시 '안전한 수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두코바니 원전은 설계부터 준공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초장기 프로젝트로, 계약 안정성과 발주처 신용도가 높더라도 공정 진행과 대금 회수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원전 특성상 인허가·설계 변경 변수도 상존하는 만큼, 유럽 수주라 하더라도 장기 현금 회수에 대한 관리 부담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해외 공사는 공정 기준으로 매출과 이익을 인식하지만, 실제 현금은 마일스톤 도달 이후에 들어오는 구조라 이익과 현금흐름 사이의 괴리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이 과정에서 계약자산, 과거로 치면 미청구공사가 빠르게 늘어나고, 영업이익이 나더라도 유동성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공사를 지속해야 하면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부채비율 상승과 이자비용 증가로 연결된다"며 "해외 장기 프로젝트가 많은 건설사일수록 이 문제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건설사들이 중동 대신 유럽과 같은 고신용 시장 비중을 늘리는 흐름에 대해서도 "중동은 발주 물량은 크지만 정산 지연과 장기 미수금 경험이 누적된 지역"이라며 "유럽은 계약 구조가 명확하고 발주처 신용도가 높아 현금 회수 예측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주 전략이 아니라 재무 안정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제보하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