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피플
패스파인더H 김지훈 상무
독일 보쉬사서 자동차 엔진 엔지니어-포스코 원료실 투자 담당 '독특한 커리어'
저전력 NPU 칩 제조사에 투자…창업주와 소통으로 투자 '확신'
영국 딥테크 기업 국내 상장 추진…한-유럽 투자 가교 역할 희망
공개 2024-04-01 06:00:00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7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회사들은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이러한 스타트업 등 창업 회사들에 있어 창업투자사(창투사)들은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매년 전국에서 124만개의 창업 회사들이 등장한다. 수많은 창업회사 중 유망한 성장 비전이나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를 선별해 투자하는 것이 창투사의 역할이다.
 
패스파인더H는 이러한 역할을 잘 실천하고 있는 창투사다. 패스파인더H는 창업주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창업회사의 성장 아이템을 발굴해 성과를 거둬왔다. 지난 2016년 설립된 패스파인더H는 설립 8년 차를 맞이한 지금 AUM(자산운용규모) 1800억원을 보유한 중견 창투사로 성장했다. 패스파인더H 김지훈 상무를 만나 창업투자사의 전략과 시장 전망 등을 들어봤다.
 
김지훈 패스파인더H 상무
 
다음은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이다.
 
-자기소개 및 역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독일 등 유럽에서 10년 정도 공부하고 독일 보쉬사에서 자동차 엔진 개발 엔지니어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워런 버핏과 그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짐 로저스 등 유명 투자자들의 저서를 읽고 벤처투자 업계에 몸담기로 결심, 2011년 프랑스 파리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시작했다. 
이후 포스코홀딩스(당시 포스코) 원료실 투자그룹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업무는 포스코가 안정적으로 철광석 등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광산에 투자하는 일이었다. 4년간 포스코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하다 2016년부터 패스파인더H에 합류했다. 2009년 VC(벤처투자) 업계에 몸담겠다 결심한 이후 7년 만에 VC 업계에 입성했다. 
패스파인더H의 이름은 창업기업가들과 함께 희망(Hope)을 개척한다는 의미로 지난 2016년 인은식 대표와 본인을 포함한 4명으로 시작해 현재 심사역 8명인 창업투자사로 성장했다. 패스파인더H는 현재 1800억원의 AUM(자산운용규모)을 보유하고 있고, 10개의 블라인드 펀드를 결성해 운용하는 등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VC로 성장했다.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창업자와 투자자의 진솔한 소통이 중요하다. 자신의 회사 사업 비전에 대해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창업자는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스타트업은 상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가 별로 없다. 투자자는 창업자와 소통하며 투자할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야 하는데 창업자가 투자자에게 뭔가를 숨기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를 결정하기 힘들다. 
아울러 디테일한 면도 필요하다. 사업 비전에 관해 설명할 때 통계로 이야기한다던가, 투자 검토를 요청할 때 제공하는 자료를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리해서 제공할 수 있는 등 디테일한 면이 있어야 한다. 그 외에 창업자의 꿈이 커야 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피드백을 수용하되 결정을 스스로 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포스코에서 전략투자를 담당했던 것으로 안다. 기업 전략 투자와 창업 투자에 모두 몸담은 입장에서 둘 간의 차이가 있다면?
△대기업의 투자나 CVC는 모두 모회사의 전략적 니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투자의 모든 것은 회사의 전략에 따른 것이다. 반면 창투사는 독립적인 개인투자자와 유사하다. 대기업이나 CVC는 모회사에서 자금을 마련해 주지만, 창투사는 직접 펀드를 조성하거나 펀드에 출자한 LP의 니즈에 맞춰 투자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CVC와 달리 창투사들은 포트폴리오를 짜서 한국모태펀드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일부 조달하는데, 모태펀드의 투자 목적에 따라 투자해서 수익을 내야 한다. 한국모태펀드 외에도 은행 혹은 금융회사들로부터 투자금을 조달받기도 한다. 패스파인더H는 3차례의 창업초기펀드를 결성한 적이 있다. 투자금의 60%가량은 한국모태펀드에서 조달받고 10%는 우리가, 나머지는 금융권 등에서 민간 매칭 방식을 통해 펀드 자금을 끌어온다. 투자 기간이 끝나면 투자금을 회수해 투자자들과 분배한다.
 
-그동안 주도한 투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를 꼽자면?
△기술력에 기반한 제조업에 투자한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그중 딥엑스라는 인공지능 칩 설계 펩리스 스타트업이 있다. 딥엑스는 가전제품, 감시카메라, 자율주행차, 로봇 등에 사용되는 저전력용 인공지능(AI)칩을 제조하는 회사다. 
엔비디아(NVIDIA)가 주도하는 반도체 칩 시장은 현재 GPU(그래픽카드) 칩에 기반한 것이다. 그래픽카드 칩으로 모든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NPU 칩(AI 칩) 시장은 없다. 그래픽카드 칩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가동 과정에서 전력 소모가 많아 배터리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자율주행차, 감시카메라 등 낮은 전력 소모가 필요한 엣지 디바이스(Edge Device)의 니즈와 동떨어져 있다. 전자제품이나 자율주행차 등에는 전력 소모가 낮은 칩이 필요한데 딥엑스는 이러한 저전력 칩을 생산한다. 제조회사인 데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영역에 속해있어 투자 조건에 딱 맞는 회사였다. 딥엑스 등 AI 칩을 개발하는 회사가 여럿있지만 딥엑스가 양산 단계에 가장 가깝다. 딥엑스는 현재 고객사들과 POC(신기술 도입 전 검증 단계)를 진행하고 있고 현재 양산 직전 단계까지 온 상태다.
또 딥엑스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무도 회사를 알아보지 않을 때 초기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2019년 시리즈A 투자 후 2021년 30억원 후속 투자를 단행했고, 이후 금융권 투자를 유치해 111억원의 투자를 리딩한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총 211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성공시켰다. 다음 단계인 시리즈C 라운드에서 펀드 시장이 경색됐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레이크스PE와 VC들을 연결해 펀딩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주로 시리즈A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높은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우선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가령 3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면 보통 15개 회사에 분산해 투자한다. 그러면 한 회사당 평균 투자 금액은 15억~20억원가량 된다. 몇 개의 투자건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다른 투자건으로 이를 만회하는 등 투자 위험을 상쇄할 수 있다. 여러 회사에 투자금을 나눠 투자함으로써 펀드 자체가 헤지(Hedge, 위험 요소 제거) 수단이 된다. 
또 다른 리스크 감소 수단으로는 마일스톤 투자가 있다. 마일스톤 투자는 단계적으로 투자 금액을 확대하는 투자방식이다. 예를 들어 20억원을 투자할 경우 한 번에 20억원을 투자하지 않고 우선 5억가량 투자한 후 창업자와 충분한 소통을 통해 투자를 해도 괜찮은 회사인지 확신을 얻고 나머지 금액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혹은 다음 단계 투자에서 투자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투자를 늘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밸류업(가치 상승) 활동이 있다. 투자자가 기업 밸류업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스타트업 등 창업 회사들이 투자금을 실질적인 사업 확장에 쓰지 않고 좋은 사무실로 옮긴다거나 임직원 복지만 늘리는 등 사업과 무관한 부분에 낭비하는 것을 막는다. 투자금이 실질적인 사업활동에 투입될 수 있도록 감시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는 회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경우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아 자본 시장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들은 향후 기업을 상장까지 이끌고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을 만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자본 시장을 너무 모를 경우 이러한 역할을 잘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로서 적극적인 기업 밸류업 활동을 통해 창업가들에게 자본 시장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창업 투자 시장을 되돌아본다면?
△빈익빈 부익부 시장이었던 것 같다. 지난해 창업 투자 시장의 특징은 실질적인 매출이 발생하고 구체적인 성장이 가능한 매출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시장이었다. 
AI 칩 투자 시장은 좋았던 반면 플랫폼 시장은 안 좋았다. 플랫폼 사업은 손실을 보더라도 자본으로 밀어주면서 사업을 성장시킨 후 독보적으로 성장하면 그때부터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쿠팡이 대표적인 예다. 플랫폼 같은 사업 아이템들은 대규모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고금리 영향을 받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자들이 은행 금리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하지 리스크 높은 투자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금리가 낮아져야 은행 이자 수익성이 낮아져서 투자가 활성화된다. 이러한 상황에 플랫폼 투자 시장이 좋지 않았다. 
올해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언제 내릴지 누구도 모르고, 금리가 내린다 해도 단번에 대폭 인하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인하돼도 차츰 인하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VC 투자 여건이 좋아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와 올해 현시점까지 VC 투자가 어려운 시기인 건 사실이다. 시기가 어려운 만큼 실체가 있는 회사가 아닌 이상 투자 받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기조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명확하고 눈에 보이는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고, 그 아이템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회사들이 주로 투자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시장이 어려운데 투자금 모집에 애로사항은 없었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미리 펀드 조성을 해 놓은 상태라 지난해 투자에 문제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 투자 시장이 어려웠음에도 오히려 투자를 더 많이 했다. 올해도 펀드 자금을 조성하려고 노력하지만 일반 매칭 등 투자금 조달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게 금리가 낮아지기 전까지는 이러한 상황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국내뿐 아니라 유럽에서 기술형 벤처 투자를 진행해 보고 싶다. 유럽 현지에서 착한 가격의 기술형 벤처기업을 발굴해 우리나라에 상장시키는 등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우리나라 VC들이 해외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다음에 좀 더 성장해서 유럽에 작은 펀드를 하나 조성해 우리나라와 유럽 시장에 동시에 투자할 수 있는 글로벌한 VC로 거듭나고 싶은 게 목표다. 
현재 테라뷰라는 영국 딥테크 기업(기술제조기업)의 국내 상장을 준비 중이다. 영국은 우리의 코스닥 같은 자금 조달 시장이 없어 딥테크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다. 아울러 투자 등 유동성도 없어 기업 가치도 작다. 유럽의 반도체 시장이 크지 않은 까닭에 테라뷰는 미국 다음으로 반도체 산업이 큰 우리나라에서 상장을 준비 중인 것이다. 테라뷰가 국내에 상장할 경우 큰 가치를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패스파인더H, 삼성벤처투자, 원익투자파스너스 등 총 3팀이 테라뷰의 초기 투자를 진행했었고, 패스파인더H는 현재 후속 투자까지 20억원을 투자했다. 테라뷰는 테라헤르츠라는 기술을 가지고 반도체 검사장비·비접촉식 자동차 도장 두께 측정·이차전지 배터리 음극재 코팅 측정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전 세계 테라헤르츠 기술 관련 특허의 50% 이상을 테라뷰가 보유하고 있다. 고객사도 애플·삼성·테슬라·마이크론·인텔 등 유명 기업들이다. 
또 다른 목표는 엔지니어로 출발한 커리어를 활용해 다른 VC들이 못 하는 새로운 투자 영역을 개발하는 것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VC들이 시장에 존재한다면 다양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곳에 투자하는 VC들이 시장에 공존해야 사회 곳곳에 균형 있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입장에서 다른 사람이 찾지 않는 다양한 투자의 길을 찾아보고 싶은 게 목표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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