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500조)①기금형 연금, 몇 조 굴려야 남나
고정비 30억·보수율 0.05% 가정…6조원에 손익분기
기업은 운영비·가입자는 운용비…보수 따져야 전환 실익
공개 2026-11-09 07:00:00
이 기사는 2026년 11월 04일 20:07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정부가 지난 10월29일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등을 담은 개편안을 발표했다. 금융회사의 직접 수탁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DC·IRP 투자대상에 IMA·발행어음을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증권사에는 연금 고객 확보와 자금조달 확대의 길이, 자산운용사에는 장기자금 운용시장을 넓힐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증권사와 운용사의 사업 준비 현황과 상품 전략을 점검하고, 연금시장 확대의 과실이 가입자의 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도시은 기자] 정부가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수탁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연금 자금에서 벌어들이는 수수료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금융회사는 단독 또는 컨소시엄으로 수탁법인을 세워 적립금 운용을 맡을 수 있다. 다만 자산보관과 기준가격 산출 등은 외부 기관에 위탁해야 한다. 수탁법인의 사업성은 얼마나 많은 자금을 유치하는지, 외부에 보수를 지급하고 나면 법인에 얼마가 남는지에 달려 있다.
 
가령 외부 위탁보수 등 적립금에 비례해 드는 비용을 제외한 뒤 수탁법인에 남는 수수료가 연 0.05%라면, 연평균 적립금 1조원에서 인건비와 전산비에 쓸 수 있는 돈은 5억원이다. 연간 고정비를 30억원으로 가정하면 6조원을 맡아야 운영비를 충당한다. 기존 연금 고객이 많은 금융회사도 기금형으로 옮겨올 자금이 얼마나 될지, 현재 인력과 시스템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에 따라 출자의 실익이 달라진다.
 
 
 
최소자본금 120억원…법인 몫 수수료 절반이면 필요 수탁고 '두 배'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은 금융기관 개방형 수탁법인의 최소자본금으로 120억원을 제시했다. 수탁자 책임과 내부통제를 담당할 인력 7명도 직접 갖춰야 한다. 출자사는 설립 단계에서 자본금을 마련하고, 법인은 영업을 시작한 뒤부터 전담인력 급여와 시스템 유지비를 부담하는 구조다.
 
연간 고정비를 30억원으로 놓고 보면 외부 위탁비 등을 뺀 법인 몫의 수수료율이 연 0.1%일 때 손익분기점은 연평균 적립금 3조원이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거나 외부 운용사에 지급하는 보수가 늘어 법인 몫이 0.05%로 떨어지면 6조원, 0.03%까지 낮아지면 10조원이 필요하다.
 
수탁고가 커지면 운영위험준비금도 늘어난다. 정부안이 제시한 적립금의 0.25%를 적용하면 1조원을 맡을 때 준비금은 25억원, 6조원을 맡으면 150억원이다. 매년 지급하는 인건비·전산비와 달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등에 대비해 쌓아두는 자금이다.
 
은행은 기존 DC 수수료 변수…기금형으로 옮길 자금 규모도 관건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비교공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미래에셋증권(037620)의 확정기여형(DC)·개인형퇴직연금(IRP) 적립금은 44조 7194억원, KB국민은행은 39조 7250억원이다. 앞선 가정에서 산출한 6조원은 미래에셋증권 적립금의 13.4%, 국민은행의 15.1%에 해당한다. 정부안은 한 사업장에서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거래 기업이 기금형을 도입하더라도 어느 수탁법인에 얼마를 맡길지는 따로 판단한다.
 
은행은 기존 계약에서 줄어들 수 있는 수수료 수입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해 대면 DC의 운용관리·자산관리 수수료 비용부담률 합계는 국민은행 0.485%, 우리은행 0.465%, 하나은행 0.456%, 신한은행 0.433%였다. 국민은행의 경우 운용관리 0.261%와 자산관리 0.224%로 나뉜다. 두 업무를 맡던 은행이 기업의 기금형 전환 이후 자산보관만 담당한다면, 은행이 받을 수수료는 새 보관계약에서 정한 금액으로 바뀐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수탁법인 출자 여부는 중장기 수익성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따져 결정할 사안"이라며 "안정적인 기금 운용 규모 확보 가능성과 수익구조, 초기 투자비용 및 운영비용 등을 주요 판단 요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는 어느 계좌에서 자금이 이동하느냐에 따라 셈법이 달라진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의 대면 DC 운용관리·자산관리 수수료 비용부담률 합계는 0.358%였지만 비대면 개인형 IRP는 0.008%였다. 삼성증권(016360)은 각각 0.250%, 0.020%였고,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005940)의 비대면 개인형 IRP는 공시상 0%였다. 펀드 비용을 제외한 관리 수수료 기준이다. 증권사가 자사 고객의 적립금 1조원을 기금형으로 유치해도 대면 DC에서 옮겨온 경우와 관리 수수료가 0%인 비대면 IRP에서 옮겨온 경우는 기존 사업에서 줄어드는 수입부터 다르다.
 
운용사는 기존 OCIO 조직 활용 여지…개인 가입자 대응엔 추가 비용
 
자산운용사에는 수탁법인에 출자하는 방법 외에 외부 운용사로 선정돼 기금 일부를 맡는 길도 있다. 외부 운용을 수임하면 법인 설립에 드는 출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신 보수 수입은 배정받은 금액에 따라 정해진다. 수탁법인이 6조원을 유치하더라도 운용사가 맡은 자금이 1조원이고 약정 보수율이 연 0.03%라면 연간 보수 수입은 3억원이다.
 
이때 운용사 손익을 가르는 항목이 전담인력 비용이다. 기존 조직으로 업무를 소화할 수 있는 운용사와 전담조직을 새로 꾸려야 하는 운용사 사이에 수임 여력 차이가 생기는 대목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기존 기관자금 중 OCIO 자금 운용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다”며 "기존 조직과 시스템을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DC·IRP는 개인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제도로, 제도 운영과 자산운용에 별도 규정이 적용된다고 짚었다. 다수 가입자의 수요를 반영할 투자정책을 세우고,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과 인력도 추가로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회사가 받는 보수를 누가 내는지도 기업과 가입자에게는 중요한 차이다. 정부안은 제도 운영 비용은 사용자 기업이, 적립금 운용 비용은 가입자가 부담하도록 했다. 기업이 내는 운영 수수료를 낮추더라도 가입자에게 적용하는 운용보수율이 0.05%포인트 높아지면 연평균 적립금 1억원인 근로자의 비용은 연간 5만원 늘어난다. 가입자에게 기금형 전환의 실익이 생기려면 운용 성과가 추가로 부담한 비용을 웃돌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금융회사들이 단순한 수탁고 확대 경쟁을 넘어 기업과 가입자에게 제시할 실질적인 수익률 제고 방안을 마련해야 기금형 전환 유인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기금형으로 지배구조 하나를 바꿨다고 해서 수익률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성과 개선 가능성은 적지 않다"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 운용 성과에도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자산 배분 차이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기금형 체제하에서 수탁법인과 운용위원회가 정당한 책임과 면책 규칙 아래 위험을 적절히 분산하면서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시은 기자 eqw58174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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