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9000포인트를 넘어섰지만 석유화학업계는 좀처럼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관심 밖에 밀려난 것보다 더 뼈아픈 것은 업황이 여전히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석유화학업계는 지난해 8월부터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 감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체질 개선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전경.(사진=뉴시스)
정부와 업계가 추진하는 체질 개선의 방향은 명확하다. 업계가 자율적인 구조조정 안을 만들면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구조다. 그러나 체질 개선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 안부터 여전히 해결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율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어느 누가 먼저 양보하지 않으면 절대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의미의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구조조정 대상인 석유화학 4개 산업단지(대산, 여수 1·2호, 울산) 중 구조조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곳은 대산뿐이다. 롯데케미칼이 대산에 있는 자산을 분리해 ‘롯데대산석화’라는 신설 법인을 만들었고, 이 법인이 HD현대케미칼과 오는 9월까지 통합하면 구조조정 절차는 마무리된다. 그나마 여기까지가 지난 1년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대산 산업단지를 제외하고 3곳은 여전히 담보 상태다. 여수 1호는 자산 이관과 지분율 조정 단계에서 멈춰 있고, 채권금융기관의 실사도 연기된 상태다. 여수 2호는 GS칼텍스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셰브론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 논의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어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울산이다. 울산은 에쓰오일이 9조원 이상을 투자한 초대형 사업인 ‘샤힌 프로젝트’를 구조조정에 포함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에쓰오일이 이제 막 상업 가동을 앞두고 있는 시설을 구조조정에 포함시킬 리가 없고, 다른 업체들은 샤힌 프로젝트가 구조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양보하기 쉽지 않다. 에쓰오일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최대주주(63.41%)다.
국내 업체들이 감축 부담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동안 중국과 중동 경쟁사들은 설비를 늘리고 있다. 이들은 자국 수급 차질을 막기 위해 한때 수출을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설비 증설을 오히려 가속화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완전히 끝난 이후 이들 물량이 한국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이 언제까지 범용 제품으로 그들과 계속 싸울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석유화학업계가 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전통적 범용 제품에서 벗어나, 비교적 안정적이고 기술·특허로 차별화가 가능한 ‘스페셜티’와 소재 중심의 고부가 제품으로 생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지금 4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이유다.
석유화학산업은 우리 삶과 밀접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간산업이고,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다. 이 때문에 석유화학산업 쇠퇴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제조업 전반에 걸쳐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지금 석유화학업계에 필요한 것은 문제를 새롭게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이다. 각 업체가 자기 사업만 지키겠다며 버티면 모두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더는 외교적 부담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교력을 동원해서라도 외국 주주와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구조조정의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외국 주주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라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생존을 선택해야 할 때다.
최용민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