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흰우유 소비는 줄고 있지만 유업체들이 원유 구매량까지 그에 맞춰 줄이기는 어렵다. 판매량 감소에도 원유 매입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힘든 구조 때문이다. 결국 팔리지 못한 원유는 재고로 쌓이고, 그 부담은 유업체 수익성을 갉아먹는다. 해마다 '재고우유' 문제가 커지는 가운데 <IB토마토>는 국내 주요 유업체들이 잉여원유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보현 기자] 같은 잉여 원유 문제라도 유업체들이 받아들이는 청구서 성격은 다르다. 예컨대 서울우유 등 흰우유 중심 기업은 판매 감소와 재고 부담을 떠안는다. 제품 다각화를 추진 중인
매일유업(267980)도 원유 공급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품 경쟁력 제고 노력만으로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수요에 맞춰 원유 매입량 조절이 힘든 구조가 유업체들을 옥죄는 상황이다.
젖소. 해당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서울우유, 안정적 원유 확보의 역설…줄이기 어려운 재고 부담
서울우유협동조합(이하 서울우유)은 업계 1위로 국내 흰우유 시장을 대표한다. 조합원으로부터 원유를 공급받는 구조인 만큼 안정적인 원유 확보가 강점이다.
수요 감소 시 공급량을 탄력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것은 단점이다. 대다수 조합원이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가인 만큼 안정적인 판로 보장이 중요한 '협동조합 구조' 때문이다. 서울우유는 일반 유업체들과 달리 조합원들과 내부 규정에 따라 공급 물량을 조정한다.
9일 유업계에 따르면 과잉 원유 부담은 서울우유 실적에 일부 반영됐다. 서울우유 자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2조 1008억원으로 전년(2조 1247억원)보다 1.13%(240억원) 줄었다. 영업이익은 2024년 574억원에서 지난해 438억원으로 23.62%(135억원)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430억원에서 26억원으로 16.60배 급감했다.
재고 부담 또한 30%가량 커졌다. 재고자산에는 판매되지 못한 원유와 이를 가공한 제품 등이 포함된다. 서울우유 재고자산은 2024년 1308억원에서 지난해 1815억원으로 27.90%(506억원) 증가했다. 재고 가치가 하락한 만큼 회계상 손실로 반영하는 항목인 재고자산평가손실 누계액 역시 같은 기간 30억원에서 88억원으로 2.97배 늘었다.
판매되지 못한 원유가 재고로 남거나 탈지분유 등으로 전환되면 자금 회수까지 시간이 길어진다. 운전자본 부담으로 이어져 영업활동현금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서울우유의 지난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47억원으로 전년 818억원에서 적자전환됐다.
서울우유는 원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제품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백질 음료와 가공유, 발효유는 물론 A2+ 우유 등 차별화 제품 확대를 통해 흰우유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원유 과잉은 업계 전반의 문제"라며 "단백질 음료와 가공유, 발효유 등 제품 다변화를 통해 원유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유업, 사업 다각화에도 남는 원유…가공 확대 한계
사업 포트폴리오가 상대적으로 다양한 매일유업도 잉여 원유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매일유업은 컵커피, 치즈, 조제분유, 단백질 브랜드 '셀렉스'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하며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 왔다.
제품 다변화 전략은 잉여 원유를 직접 해소하는 구조가 아니다. 컵커피는 음용유(잉여 원유)가 아닌 가공유로 제조되고, 치즈 역시 대부분 수입 원료를 사용하고 있어서다. 국산 잉여 음용유를 해당 제품 생산에 활용하기에는 국내 원유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매우 높다.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가 수익성 방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남는 음용유를 흡수하는 해법은 될 수 없는 셈이다.
판매되지 못한 음용유는 탈지분유 등으로 가공돼 재고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국산 원유를 활용한 탈지분유의 원가 경쟁력은 낮다. 국내 원유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장부상 재고 가치와 실제 회수 가능한 가치 차이가 재고자산평가손실로 반영된다.
매일유업의 지난해 재고자산평가손실은 13억원으로 전년(5억원) 대비 2.6배 증가했다. 재고자산 중 잉여원유가 포함되는 '원부재료' 장부금액 역시 △2023년 581억원 △2024년 617억원 △지난해 651억원으로 3년간 12.06%(70억원) 늘었다. 잉여 원유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평가손실 부담과 원재료 재고 규모가 동시에 확대되는 모습이다.
재고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원유 조달 자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유업체가 임의로 원유 매입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구조여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음용유용 원유는 연간 실제 소비량 약 160만톤(t)보다 많은 수준으로 공급되고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유업체가 임의로 원유 매입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구조라, 현재 진행 중인 낙농진흥회에서 진행하는 원유 용도별 물량 조정 협상을 통해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사를 비롯한 유업계는 잉여 물량을 강제로 떠안아야 하는 원가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의무 매입하는 음용유 물량을 시장 수요에 맞춰 현실적으로 감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보현 기자 bob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