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국회에 사모펀드를 겨냥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차입 한도, 배당 정책, 의결권 행사까지 전방위 규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그간 친목 단체에 머물렀던 PEF협의회는 협회로 성격을 격상시키자는 분위기지만, 규제 대응 방식의 콘트롤타워가 힘을 받을 수 있을진 미지수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취임사 발표하는 박병건 제9대 PEF운용사협의회장(사진=PEF협의회)
17일 법제처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사모펀드의 운용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법안들이 다수 계류돼 있다. 쟁점은 크게 차입(레버리지) 규제, 대규모 배당 제한, 의결권·보유기간 제한 등이다.
‘LBO 200%’ 제한, 자회사 차입까지 합산해도 상징적 규제에 가까워
차입 한도 규제의 경우 사모펀드의 레버리지(LBO) 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0%에서 200%로 절반 축소하는 내용이 법안의 핵심이다. 나아가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의 법안엔 피투자회사 차입까지 합산해 레버리지를 산정하는 ‘룩스루(look-through)’ 방식도 포함됐다.
일각에선 해당 규제가 도입된다면 중견·대기업 M&A에서 인수금융 활용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피인수회사의 기존 차입금 규모에 따라 PEF가 자기자본 투입 규모를 늘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입한도 200%는 사모펀드가 특정 기업을 인수할 때 투입한 자기자본의 두 배를 초과해 빚을 낼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정이다. 단순하게 총 인수금액이 1조5000억원일 경우, 자기자본 5000억원에 인수금융을 1조원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피인수회사가 이미 5000억원의 차입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인수금융을 포함한 총 차입 규모가 1조5000억원으로 늘어나 사모펀드가 투입해야 할 자기자본 규모는 최소 7500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국내 중·대형 바이아웃은 통상 인수대금의 50~60%를 인수금융으로 조달하고 있어 인수금융 활용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2015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도 인수금융 비중만 놓고 보면 200% 규제에 걸리지 않는다. 자기자본 3조2000억원에 인수금융 2조7000억원을 조달한 구조는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두 배에 한참 못 미친다. 당시 홈플러스의 차입금 규모가 약 1조60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LBO 200%’ 규제는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LBO 200’% 규제가 상징적 규제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실제 금융권에서도 인수금융 규모를 통상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4~6배 이상을 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하고 있어 LBO 400% 한도를 채우는 경우도 사실상 없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국내 바이아웃 거래는 인수금융 비중 자체가 과도하게 높은 구조가 아니어서 차입한도 200% 규제가 도입되더라도 정상적인 거래를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극단적인 고레버리지 거래를 정교하게 걸러내기보다는 규제의 상징성에 무게가 실린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배당 금지, 자본유출 제한’ 타격 더 커…자율규제 나선 PEF협의회
실제 업계에서 타격이 큰 법안 내용은 대규모 배당과 자본유출 제한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개정안 중 일부는 사모펀드가 인수 이후 자산 매각이나 과잉 배당을 추진할 경우, 출자자(LP)에 상세 설명하고 금융당국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중단 명령이나 시정 조치를 내릴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펀드 해산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의결권 제한과 의무 보유기간 규제도 논의 중이다. 바이아웃 이후 일정 기간(2년) 동안 자기주식 취득, 배당, 자본감소(감자) 등 ‘자본유출성 결의’에 대해 사모펀드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다. 경영권 투자 지분을 최소 5년 이상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일부 법안에 포함돼 있다.
이는 사모펀드의 투자·회수 전략을 제약할 수 있어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뒤따른다. 실제로 MBK파트너스 등 국내 굵직한 사모펀드들은 바이아웃 이후 대규모 배당이나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회수 전략을 짜왔다. 홈플러스의 경우, 부동산 매각을 통한 현금 회수를 주요 전략으로 구상했고, 오스템임플란트와 메디트 등은 MBK파트너스의 인수 이후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고배당을 강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LBO 200%’ 규제 법안이 상징적으로 나온 뒤 동시다발적으로 국회서 실질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되자, 업계 안팎에선 PEF협의회의 역할과 위상 강화 필요성도 빠르게 논의되는 분위기다. PEF협의회는 2005년 출범 이후 사실상 친목 성격의 단체로 운영되어 왔고, 법적 협회 지위나 상설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협회 전환이 이뤄질 경우 ▲입법 대응 ▲정책 건의 ▲자율규제 수립 ▲대외 소통 등에서 실질적인 역할 수행이 가능해진다.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당국과의 협의 창구를 단일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기대 요인으로 꼽힌다.
PEF협의회 내부에서도 대응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협의회는 별도 위원회(소위원회 포함) 설치를 통해 자율규제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시장소통위원회는 국회와 금융당국을 상대로 한 공식 소통 창구 역할을 맡는 방안이 거론된다. 규제 취지에 대한 업계 입장을 전달하고, 과도한 규제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기능이다. 협의회발전위원회는 조직 개편과 협회 전환 로드맵을 검토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적책임투자(ESG)위원회를 통해 사모펀드에 대한 ‘먹튀·과잉배당’ 이미지를 완화한다는 구상이다.
또 다른 사모펀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지금 논의되는 법안 상당수는 사모펀드의 순기능과 시장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협회 체제를 통해 자율규제와 제도 개선을 병행하지 않으면 국내 PEF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최소한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