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이 또 한 번 개편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은 올해 안에 ‘5세대 실손보험’ 상품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실손보험은 비급여 진료를 중심으로 일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지속되면서 매년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이번 개편이 치솟은 손해율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IB토마토>는 현행 실손보험의 구조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새로 추진되는 5세대 상품의 설계 방향과 해결해야 할 과제, 나아가 보험사 재무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새로운 5세대 실손의료보험은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 체계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반면 비중증 비급여 상품은 구조가 대폭 개편된다. 보장한도를 낮추고 자기부담률을 늘리는 방향이다. 보험사 재무적으로는 실손보험금을 줄이는 것이 관건인데, 5세대 역시 이전 세대와 같이 손해율 관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증’ 중심으로 전환…비중증·비급여 대폭 조정
5세대 신규 상품의 핵심은 중증 질환 중심으로 비급여 보장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중증은 암·뇌혈관·심장 관련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등을 말한다. 과잉 의료서비스가 발생하고 있는 분야가 비급여 중에서도 경증에 가까운 ‘비중증’ 질환이라는 판단에서다. ‘의료쇼핑’ 대상인 도수치료나 각종 주사제 처방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증 중심은 보험 본연의 목적이나 사회보장 가치 측면에서도 맞닿아 있는 방향이다. 소수 가입자의 비중증 의료행위 남발에 대해 보장이 과도하게 이뤄지면 보험 효과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보험료 할증으로 전체 가입자가 피해를 받게 된다. 이 역시 가계 부담을 늘리는 요인이다.
금융당국 계획안에 의하면 5세대 상품은 ‘급여’ 부문에선 현행 4세대와 대부분 유사하다. 의료행위를 입원과 외래(통원)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하되, 입원 시 실손보험 자기부담률을 20%로 똑같이 일괄 적용한다. 급여 입원은 중증 질환이 많고 의료서비스 남용 우려가 크지 않아 그대로 둔 것이다.
반면 외래는 기존 규정인 △20% △정액 1만원(병·의원과 약국 이용) △정액 2만원(상급·종합병원과 약국 이용)에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추가로 연동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온 금액을 자기부담으로 내는 것이다.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이 추가되면 자기부담률은 20%보다 훨씬 크게 나올 수도 있다.
‘비급여’ 부문은 아예 중증(특약1)과 비중증(특약2)으로 구분하고 보상한도나 자기부담 등을 차등화한다. 중증의 경우 현행 4세대 형태를 그대로 가져가는 가운데, 상급·종합병원 입원에 대한 자기부담 ‘한도’ 500만원을 신설하면서 보장을 강화했다.
가장 큰 문제인 비중증 비급여는 전반적으로 조정된다. 연간 보상한도가 1000만원으로 대폭 줄어들고, 병·의원 입원 한도가 300만으로 새로 생긴다. 자기부담률은 50%로 상향된다. 미등재된 신의료기술이나 일부 비급여(도수·체외·증식 등 근골격계 치료나 주사제 등)는 보험금 미지급 대상으로 빠진다. 또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이 100만원 이상인 가입자는 보험료가 크게 할증된다.
(사진=연합뉴스)
불어나는 보험금 관리 관건…“5세대도 손해율 관리 어려울 것”
5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가 현행 4세대보다 30%~50% 정도 저렴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일부 보험사의 사전 시뮬레이션 결과 특약1 가입 시 50%, 특약1과 특약2 모두 가입 시 30% 인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본 보험료가 낮게 형성되는 만큼 향후 실손보험 수입보험료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송형은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실손보험 제도 개편 시 젊은 연령층 유입, 기존 상품의 세대 전환 등으로 신규 가입자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면서도 “계약당 보험료는 인하되면서 전체 수입보험료는 다소 감소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실손보험 보험료 수익은 지난해 기준 16조3364억원이다. 앞선 2022년 13조1885억원, 2023년 14조4429억원 등으로 현재는 매년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다만 높은 손해율로 보험금을 과도하게 지급, 보험손익(보험료수익-발생손해액-실제사업비)이 적자를 내고 있다. 보험료 수익의 성장이 크게 의미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실손보험 보험금은 지난해 15조2234억원, 2023년 14조813억원, 2022년 12조8868억원 등으로 확인된다. 보험료 수익 증감보다는 보험금과 여기서 파생하는 발생손해액을 줄이는 것이 수지타산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결국 손해율 문제인데, 5세대 상품이 나와도 관리는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1세대~2세대 상품은 ‘번들형’으로 구성하면서 마진이 높은 다른 담보와 함께 묶어서 판매한 바 있다. 위험을 분산하면서 방어한 셈이다. 반면 3세대 이후는 실손보험 ‘단독형’ 구성이라 출시 초기부터 손해율이 높게 잡혔다.
손해보험사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3세대와 4세대 상품의 손해율이 높았던 것은 단독형으로 판매했던 영향이 크다”라면서 “5세대 상품이 새롭게 나오더라도 손해율이 낮지는 않을 것인데, 이전 세대처럼 높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인 보험은 가입 초기에 사고가 나지 않지만 실손보험은 그럴 개연성이 훨씬 높다”라면서 “5세대 실손보험이 비중증 비급여 개편 방향으로 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를 손해율 개선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