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롯데그룹에 대한 금융업계 신뢰 하락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진행된 롯데건설 회사채 발행에서 전액 미매각이 발생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롯데그룹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해도 주관했지만 최근 계속되는 미매각으로 증권사들의 참여가 꺼려지는 분위기다.
"우려가 현실로"…롯데건설 회사채 미매각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공모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발행 예정 물량 전액이 미매각됐다. 이번 발행에서 롯데건설은 1년물 650억원, 1.5년물 450억원으로 트랜치를 구성했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1500억원까지 증액도 고려됐으나 전액 미매각됨에 따라 발행규모는 1100억원으로 정해졌다.
롯데건설은 1년물에선 5.4~5.7%, 1.5년물은 5.6~5.9%로 희망 금리 밴드를 제시했다. 최근 A0 등급 1년물 발행금리가 3% 중반 선에서 결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2%p 가량 더 높은 수준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를 비롯한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가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시장에선 미매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신평사들은 현재 3조6000억원 수준인 롯데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우발채무가 추가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과 지방 분양 사업장의 회복이 더딘 점을 등급조정 이유로 밝혔다.
앞서 롯데건설은 지난해 세 차례 공모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2024년 2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선
롯데케미칼(011170)의 지급 보증을 무기로 완판에 성공했다. 하지만 뒤를 이어 7월과 10월 진행된 회사채 발행 모두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
미매각 물량은 결국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이 인수해야 하기에 리테일 판매로 미매각 물량을 소화했다.
미매각 우려에도 주요 증권사 참여
롯데건설 회사채 발행엔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요 증권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사진=롯데지주)
사실 채권 발행 시장에서 롯데그룹 계열사는 저가 수수료로 악명이 높다. 지난 1월 진행된
롯데웰푸드(280360) 회사채 발행에선 1000억원 규모 인수에 수수료는 정가 5250만원에 불과했다. 비율로 따지면 0.005% 수준이다. 뒤를 이어 2월 호텔롯데 회사채 발행에서도 380억원 인수에 수수료는 5000만원이 전부였다.
통상적으로 인수수수료는 등급과 발행 난이도에 따라 따르지만 적어도 0.1%에서 많게는 0.4%까지 책정된다. 하지만 롯데그룹 계열사의 경우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수수료를 제시한다. 염가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참여하는 이유는 롯데그룹이 채권 시장에서 빅이슈어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치열해지는 채권 주관시장에서 당장 수수료 수익에선 성과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실적을 쌓으려는 중소형 증권사, 리그테이블 순위 경쟁을 하는 대형 증권사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잇단 미매각으로 롯데건설을 포함한 롯데그룹 계열사 채권 발행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롯데그룹 채권 발행은 사실상 서류값 정도 버는 사업”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미매각까지 발생하니 리테일로 채권을 소화할 수 있는 증권사들 아니면 주관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자금조달 난항에 공모채 시장 찾아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증권업계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롯데그룹도 공모채 시장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당초 롯데그룹이 계획한 자금 조달 방안이 최근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글로벌로지스 보통주 604만4952주를 기초자산으로 주가수익스왑(PRS) 계약를 체결했다. PRS란 주식 가격 변동에 따른 이익 또는 손실을 교환하는 파생상품 계약이다.
앞서 롯데지주는 산하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지만, 기관투자자들의 주문이 저조해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이에 재무적투자자(FI)의 주식매도청구권(풋옵션) 행사가 이뤄지면서 총 1200억원 규모 지분에 대해 PRS 계약을 맺어야 했다. PRS 이자율은 연 5%대 중반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주 1주당 단가는 2만838원으로, PRS 계약 규모는 약 1260억원이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은 IPO를 통한 자금 조달은커녕 PRS 계약에 따라 이자로 연간 70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롯데건설 본사 (사진=연합뉴스)
롯데그룹이 약속한 부동산 자산 매각도 지지부진이다. 알짜로 평가되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롯데건설 사옥 매각도 처리 방안을 두고 5개월째 갈피를 못잡고 있다. 롯데그룹은 매각이나 리츠 전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처분은 한동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민호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롯데그룹의 주요 사업부문인 화학 부문 유통 등이 현재 전망이 어두운 점을 고려하면 향후에도 그룹 전반의 실적이 뚜렷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이런 와중에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와 투자지출 대비 부진한 투자성과로 인해 그룹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