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전국 직영 서비스센터 매각과 부평공장 유휴 부지 정리에 나서면서 단순한 구조조정인지 아니면 국내 사업 철수의 전조인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에 미국 수출 중심 전략 전환, 전기차 전환 지연, 노사 갈등 등 복합적인 변수들도 작용하고 있다.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GM의 전략 변화 배경과 향후 행보를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한국GM이 전국 9개 직영 서비스센터와 부평공장 내 유휴 자산의 매각 절차에 돌입하면서 업계 안팎에서 ‘철수설’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회사는 수익성 제고를 위한 조치일 뿐 철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노조와 업계 사이에서는 최근 일련의 움직임이 미국 GM 본사의 한국 사업 철수 수순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사진=연합뉴스)
한국GM, 사업 축소에도 “절대 철수 아냐”
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최근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환경과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9개 직영 서비스센터 및 부평공장 내 일부 유휴 부지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에 대해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절대 철수는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노조와 업계는 이 같은 자산 매각을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사업 철수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전국 서비스센터 매각 방침은 노조와의 충돌로 이어졌다. 한국GM 노조는 '직영 센터 매각은 7000여명의 조합원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에서도 기본급 인상과 고액의 성과급 및 격려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직영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고용 안정과 미래 계획 수립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방안은 인천 부평공장이나 창원공장으로의 인력 재배치다.
한국GM은 국내 자산 매각에 대해 '경영 효율화와 재무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GM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7년 10%에서 최근 1~2%대로 급감했다. 지난해 내수 판매량은 전년 대비 35.9%나 감소한 2만4824대에 그쳤다. 이 같은 국내 판매량 감소가 서비스 및 판매 네트워크 유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판매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의 수출 실적은 여전히 견조하다. 지난해 한국GM이 생산한 차량 49만9559대 중 83.8%에 달하는 41만8792대가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됐다. 창원과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트레일블레이저, 뷰익 앙코르 GX, 엔비스타 등은 북미 시장에서 여전히 수익성이 높은 전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GM 본사도 당장 한국GM의 생산량을 조정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은 여전히 긍정적인 수익 기여를 하고 있다”며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 협상을 통해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철수" 주장도…노조 불안 '고조'
그러나 서비스센터 매각과 부평공장 유휴 자산 처분, 부지 활용도 재조정이 결국 생산라인의 축소 또는 조직 슬림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부평공장 일부 구역은 현재 물류창고나 연구소, 부품 조립 작업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용률이 낮은 시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회사는 “현재 생산 활동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매각 대상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번 매각 조치가 한국GM의 장기 전략 중 일부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GM 측에 따르면 GM은 캐나다와 멕시코 생산을 줄이면서도 한국 생산량은 오히려 늘리고 있으며 미국 내 신규 시설 투자 대비 비용 효율 측면에서 한국이 더 낫다는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부평공장은 올해 들어 3만1000대 증산을 결정하는 등 수출 중심의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GM이 미국 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GM이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 조치에 타격을 입는다면 본사 차원의 구조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GM에 있어 한국 사업장은 항상 정리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면서 “이렇게까지 자산 매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부평공장 매각 관련 한국GM 측 설명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매각 대상인 부평공장의 일부 공간은 그간 제품 생산을 하고 있던 곳이지만, 노후화로 인해 매각을 통한 경영효율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생산라인 축소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가동 중이던 생산설비를 매각하는 것은 통상 생산능력(CAPA) 축소를 의미하지만, 이는 아니라는 주장이어서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GM의 철수 가능성은 단순히 비용 문제만으로 결정되긴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GM은 2022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2023년엔 약 1조350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GM 전체 사업장 중에서도 우수한 실적이다. 여기에 하청업체까지 포함하면 약 20만명에 이르는 고용 규모와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라는 연구개발 핵심 조직까지 있어 GM 본사 입장에서도 한국 사업장을 쉽게 정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