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강화되는 ‘자금세탁방지(AML)’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대면 금융이 확산되면서 관련 금융사고가 늘어난 데 따른 조치다. 점차 고삐를 죄는 규제 흐름에 맞춰 금융권의 대응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IB토마토>는 AML 규제 강화에 따른 금융권의 대응 현황과 변화의 흐름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금융권이 조직을 격상시키고 임원을 선임하는 등 AML 규제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대면 업무 비중이 점차 증가하면서 관련 범죄도 급증해서다. 불분명했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인공지능(AI)을 관련 업무에 도입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금융정보분석원)
디지털 금융 확산에 '규제 강화'
금융권이 자금세탁 방지 관련 동향에 촉각을 기울인다.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특히 연초 조직 개편을 하는 등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관리 당국의 규제에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고시된 자금세탁방지 업무규정 개정안이 지난달 13일 적용됐기 때문이다.
자금세탁방지제도란 국내외로 이뤄지는 불법 자금의 세탁을 예방하고 적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다. 우리나라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불법 재산의 취득·처분 사실을 가장하거나, 그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 및 탈세 목적으로 재산의 취득·처분 사실을 가장·은닉하는 행위를 자금세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정보분석기구는 금융정보분석원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세탁 관련 의심 거래 보고 등 금융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법집행기관에 제공하는 중앙국가기관으로, 외국의 FIU와의 협조와 정보교류도 맡고 있다.
지난달 13일부터 적용된 개정안도 금융정보분석원이 주축이 됐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지난 2023년 7월 자금세탁방지 업무 책임성·전문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적용된 이번 개정안도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이뤄졌다. 담당자별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보고책임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이 꾸준히 자금세탁 방지 역량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자금세탁 기법이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금융의 발전도 한 몫 했다. 비대면 금융 서비스가 확대되고 가상화폐가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자금세탁 방식도 다양해진 탓이다.
자금세탁방지는 크게 의심거래보고제도(STR),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 고객확인제도(CDD) 등으로 나뉜다. STR는 금융회사 등이 금융거래와 관련해 수수한 재산이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 상대방이 자금세탁 또는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하도록 한 제도다. 몇 년 새 STR건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2022년 STR 건수는 82만 2644건에서 지난 2023년 90만6462건으로 10.2% 증가했다. 특히 가상가산과 관련된 건은 같은 기간 48.8% 늘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디지털 거래 확산의 영향으로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중요도가 올라가고 있다"라면서 "이번 개정안을 시행 이후 책임자 새로 선임하는 등 내부 통제에 최선을 다할 계획"라고 말했다.
책임 소재 명확화…"양 날의 검 될 수도"
이번 개정안은 자금세탁방지 업무 주요 책임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경영진으로 규정됐던 이사회 감독 대상이 대표이사와 준법감시인, 보고책임자로 구체화 됐다. 지금까지는 특금법에 따라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 관행상 대표이사에 책임을 씌우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애매했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 대표이사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이사가 관여할 수 없는 사유로 위법이 발생한 경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부담을 덜었으나, 만약 법적으로 정한 역할을 다 하지 못했을 경우 바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은 경영권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부터는 책무구조도를 도입하고 내부 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올 초 도입을 완료했으며 7월부터는 대형 증권사와 보험사도 따르게 된다. 금융사고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취지로, 소관 업무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른 내부통제기준 및 위험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지배구조법 시행령과 지배구조감독규정에서도 대표이사의 역할을 확실히 했다. 내부 통제 등 총괄 관리 의무의 세부 내용을 규율하면서다. 이처럼 금융당국은 AML 개정안과 책무구조도 도입 등 금융사의 내부 통제 관리 고삐를 죄고 있다.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리스크도 명확해지고 있다. AML을 포함해 대표이사가 내부통제 관리 미달로 법적 제재를 받게 될 경우 수익성과 신인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표이사가 책임을 질 경우 경영 리스크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적게는 주의, 과징금부터 문책경고, 무겁게는 해임권고까지 가능하다. 문책경고 이상 징계는 연임이 제한되고 최소 3년간 금융회사 취업이 제한돼 중징계로 분류된다.
자금세탁방지 관련 제재는 금융사의 신인도뿐만 아니라 수익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의심거래보고를 허위로 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미보고하는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다. 고객확인의무를 위반할 경우에도 3000만원, 강화된 고객확인의무(EDD)를 위반하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이 처럼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 금융권이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은행권의 경우 자금세탁방지 관련 본부 조직 개편을 완료했으며, 준법감시인 산하에 자금세탁방지 본부를 신설하면서 임원급 보고책임자를 선임하기도 했다. 2금융권 등에서도 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모호했던 부분이 명확해지면서 리스크의 축소와 확대 가능성이 모두 커졌다고 볼 수 있다"라면서 "앞으로 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관련 자문 수요도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