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주요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내 금리 방향도 바뀌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과 투자 판단이 복잡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산업과 기업의 신용도에 따른 조달 여건 격차는 확대되는 모습이다. 2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종합투자계좌(IMA)·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 새로운 자금 공급 통로가 열리는 가운데 기업들은 성장 단계와 사업성에 맞는 조달 방식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변화하는 자본시장의 흐름을 짚고 기업의 자금 조달과 배분 전략을 모색했다.
27일 김선영 IB토마토 대표가 '2026 캐피탈마켓 포럼'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사진=IB토마토)
<IB토마토>는 27일 소공동 더그랜드롯데 서울에서 <200조 돈의 대이동, 기업의 조달과 배분을 다시 짜다>를 주제로 '2026 캐피탈마켓 포럼'을 개최했다.
김선영 IB토마토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2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중심으로 정책금융의 무게가 첨단산업과 성장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IMA와 BDC, 정책펀드, 사모자본 등 새로운 자금 공급 통로도 열리면서 기업이 성장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마다 미래사업 투자와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 주주환원 등을 두고 다른 답을 찾아야 한다"며 "상법 개정과 밸류업, 상장제도 변화로 자본배분은 주주와 시장의 평가를 직접 받는 영역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포럼이 기업의 조달과 배분 전략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2026 캐피탈마켓 포럼'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사진=IB토마토)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장의 실적과 담보에 더해 기업의 기술과 성장 가능성을 살피고 투자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 함께하는 금융이 필요하다"라며 "중소·중견기업과 지역기업에도 이러한 기회가 충분히 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기업의 성장과 투자자 보호가 함께 이뤄져야 자본시장도 단단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고 투자자는 믿고 그 기업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인재 육성에 자금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라고 언급했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AC협회) 회장은 새롭게 공급되는 자본이 성장 초기 기업까지 이어질 수 있는 투자 생태계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전 회장은 "기술을 개발하고 첫 고객을 확보해 사업을 확장하기까지 단계마다 서로 다른 자본이 필요하다"라며 "기업의 성장 속도와 자본 공급 시점이 어긋나면 가능성이 있는 기업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초기기업의 기술과 역량을 검증하고 후속 투자에 필요한 근거를 마련하는 액셀러레이터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초기투자 업계도 기업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 이후 성과와 위험을 꾸준히 점검하겠다"라며 "투명한 정보와 체계적인 기업 관리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기업의 업종과 성장 단계에 맞는 평가와 투자 수단이 필요하다"라며 "M&A와 세컨더리 거래 등 회수 경로가 다양해지면 회수된 자금이 새로운 창업기업으로 돌아갈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생산적 금융의 관점에서 국민성장펀드의 역할과 과제를 짚었다.
강 교수는 "노동력과 자본 투입으로 고속 성장하던 시대는 한계생산성이 둔화했고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의 시대가 왔다"라며 "향후 4~5년간 첨단산업 투자에 50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자금의 양보다 생산성 높은 분야로의 배분이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금융의 구조적 한계도 지적했다. 강 교수는 "자금은 충분하지만 생산적 분야로 흐르지 않는 상황"이라며 "수도권 중심의 은행 자금 편중과 벤처·모험·인내자본 부족 그리고 지방 혁신기업·중소기업의 금융 접근 제약을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자금이 쏠리고 기업금융마저 담보·보증 중심으로 이뤄지는 만큼 정부가 초기 위험을 먼저 흡수해 민간자금이 AI·에너지·딥테크 등으로 이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향후 과제로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초대형 시설투자 재원 조달을 꼽았다.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 지원과 우주항공·양자 등으로의 지원 범위 확대도 주문했다.
그는 "초대형 첨단산업 투자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려면 사모대출 구조를 국민성장펀드와 접목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며 "펀드 내에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대출 모펀드를 두고 정부 자금이 후순위 위험을 부담하는 구조로 설계할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다만 "사모대출은 분명 위험성이 있어 위험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첫 번째 세션에서는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 연구위원이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와 기업의 대체조달 활용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인플레이션 재확대와 성장 전망 상향, 통화정책 긴축 전환을 조달 환경 변화의 배경으로 꼽았다. 유가와 관세 부담으로 글로벌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진 가운데 국내에서는 반도체 활황에 따른 성장 속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연속 인상으로 회사채 금리를 포함한 시장금리가 상승했고 기업들은 회사채에서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은행대출 등으로 조달원을 선회했다"라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면에서 조달 만기가 짧아져 차환 위험도 증가했다"라고 분석했다.
산업별 신용도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반도체·조선·방산·전력기기 부문은 신용도가 상승한 반면 석유화학·건설·건축자재·유통 등은 하방 압력이 이어졌다. 공모사채 조달은 대부분 대기업에 집중됐으며 중소기업은 대체조달 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고금리가 지속되면 채권 조달이 줄어들고 대체 수단 활용이 확대된다"라며 "국내는 사모채권 투자자가 제한돼 사모시장 전반이 확대되는 데 제약이 있는 만큼 산업별 양극화에 따른 기업금융 시장의 격차도 일정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대체조달 수단으로는 증권사 IMA와 자산운용사 BDC를 비롯해 사모대출·사모사채, 주가수익스왑(PRS), 전환사채(CB) 등 메자닌, 유동화와 신종자본증권 등을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은행대출이 회사채를 대체하는 주요 경로지만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라며 "증권사 채널과 정책금융 비중이 확대됐지만 하위등급 공모채 수요를 개선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을 맡은 신현식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상법 개정 시대의 이사회와 자본배분'을 주제로 기업가치 창출과 주주 간 공정한 가치 배분을 위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신 변호사는 개정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당순이익(EPS) 유지나 지분율 희석 금지, 잉여현금의 일률적인 환원 의무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가 투자나 거래의 합리성을 따지는 동시에 그에 따른 이익과 부담이 주주 사이에 어떻게 배분되는지도 별도로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을 예로 들며 "지분율은 줄었지만 가치가 반드시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며 "신주 발행가격의 공정성과 중복상장에 따른 시장 평가 변화, 이해상충과 소통 부족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시행된 중복상장 제도 개선에 따라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 대한 영향과 보호 방안을 검토하고 물적분할 자회사의 상장에는 모회사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설명했다. 다만 "절차를 지켰다고 해서 거래 조건까지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환사채(CB) 발행과 자기주식 매입 등 자본배분에 대해서도 조건과 가격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변호사는 "이사회는 왜 투자하고 어떤 가격과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지,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부담을 지는지 주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기업가치를 높이면서 그 가치가 일부 주주에게 쏠리지 않도록 합리적인 내용과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함께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변화하는 자본시장 환경 속에서 자금 조달과 배분 전략을 모색하려는 기업들의 관심도 이어졌다. 지성배
위메이드(112040) 과장은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기업이 필요한 성장자금을 어떻게 확보하고 전략적으로 배분해야 할지 방향성을 얻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라며 "변화하는 정책금융과 시장 환경에 맞춰 자금 조달과 운용 전략을 점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정한영
코스모신소재(005070) 팀장은 "자금 조달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상법 개정 등으로 제도가 엄격해지는 환경 속에서 기업이 시장의 질문과 책임에 어떻게 답해야 가치를 지킬 수 있는지 보여준 포럼이었다"라고 전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