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벨트의 한국인들)④비자 협의 진전에도…현장 지원은 기업 몫
체류자격·생활 기반 마련…기업·근로자 부담
E-4 비자 신설 지연…미 의회 입법 문턱
송석준 "파견 전 점검·공관 인력 확충 필요"
공개 2026-10-16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10월 15일 06:00에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미국 남부가 한국 첨단산업의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텍사스주 오스틴·테일러에는 반도체 투자가 이어지고, 조지아주 서배너 일대에는 자동차·배터리 공장과 협력업체들이 모여들고 있다. 공장을 세우고 생산라인을 가동할 한국인 엔지니어와 기술 인력도 함께 향하지만, 투자 규모와 생산능력에 가려 이들의 생활과 노동환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업무에 맞는 체류자격부터 주거와 의료, 체재비 부담까지 현장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사고나 비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 협력사와 파견근로자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IB토마토>는 미국 현장에서 생산기지를 움직이는 한국인들과 중소 협력사를 만났다. '테크벨트의 한국인들' 4부작을 통해 대기업의 해외 투자 이면을 들여다보고, 동반 진출을 뒷받침할 지원과 보호 장치를 짚는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정준우 기자] 미국 조지아주와 텍사스주에서 만난 한국인 파견 근로자들은 비자 준비부터 현지 생활까지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기업들이 출국 전 체류자격 확인을 강화했지만 필요한 기술 인력을 제때 보내기 어렵다는 협력사가 있었고, 미국에 도착한 후에는 주거와 의료,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이어졌다. 자체 법무·인사 조직이 부족한 중소 협력사일수록 이를 해결할 여력도 부족했다.
 
지난해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 이후 한미 정부는 비자 협의체와 투자기업 전담창구를 마련했다. 현지 공관도 법률 교육과 상담, 미국 이민당국과의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지원이 개별 협력사와 근로자에게 닿으려면 투자 일정에 맞춘 파견 전 점검과 현지 후속 대응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국회에서는 한국 전문인력을 위한 비자 신설을 지원하는 의원 외교와 재외공관의 인력·예산 보강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사진=정준우 기자)
 
공장 가동 일정과 비자 절차 사이…파견 전 점검 강화
 
2일 <IB토마토>의 취재를 종합하면 대미 투자 인력 보호를 위해서는 파견 전에 실제 업무와 체류자격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공장 건설과 장비 설치, 시운전에는 여러 단계의 협력사가 참여한다. 투자기업 직원뿐 아니라 현장에 함께 투입되는 협력사 인력까지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송석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장(국민의힘)이 <IB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IB토마토)
 
송석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국민의힘)은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기 전에 정부가 기업과 함께 체류 자격과 근로자의 법적 위험을 점검했어야 한다"라며 "공장 건설과 설비 구축에 필요한 기술인력의 투입 일정과 비자 발급 절차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면 양국 외교 당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조지아 구금 사태 이후의 대응과 별개로 파견 전 위험을 확인하고 예방하는 과정이 충분했는지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송 위원장은 국회의 역할로 대미 투자의 실익 확보와 이를 뒷받침할 제도 보완을 꼽았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는 만큼 상업적 이익과 전략적 국익을 확보하고 경제안보 협력이 한미동맹 강화로 이어지도록 정부에 대한 지원과 견제를 병행하겠다는 설명이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원 외교도 추진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우원식 전 국회의장과 한미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들은 미국 의회 방한단에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MASGA) 등 대미 투자사업에 필요한 인력의 비자 발급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송 위원장도 한국 기업이 진출한 텍사스·조지아 등을 지역구로 둔 미국 의원들을 중심으로 별도 비자 신설을 위한 초당적 의원 외교가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다.
 
대표적인 입법 과제는 미 의회에 계류 중인 '한국동반자법(PWKA·Partner With Korea Act)'이다. 한국 전문인력을 위한 E-4 취업비자를 연간 최대 1만5000개 신설하고 체류 기간은 최대 2년으로 하되 고용이 유지되면 횟수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미 투자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파견하기 위해 2013년부터 미 의회에서 매 회기 발의돼 왔지만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송 위원장은 "전략투자를 원활히 이행하려면 초기 현지 인력 교육과 설비 설치부터 공정 수정과 수율 관리까지 숙련 기술인력을 적기에 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적 공백으로 필수 인력 파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우리 전문직 인력을 위한 비자 쿼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중견 협력사에 대한 지원도 별도로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자체 지원 체계를 갖춘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 협력사에는 별도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며 "한미 비자 워킹그룹에서 현장 애로를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필요한 법·제도 정비와 행정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청 대기업도 협력사 인력의 입국·체류를 함께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B-1 활동 기준 구체화…현지 공관도 상담·교육 확대
 
정부 차원에서도 기존 비자의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주요 지역 재외공관을 통해 기업의 신청 절차 및 파견 근로자들의 체류 지원 방안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조지아 구금 사태 이후 결성된 한미비워킹그룹은 이미 세 차례 열리면서 이를 통해 △B-1 단기상용 비자로 가능한 활동을 구체화 △ 대미 투자 기업들의 전담 창구로서 주한미국대사관에 한국 투자 및 방문 데스크(KIT Desk)를 설치 △ 미국 내 한국 공관과 이민법 집행기관 사이의 연락 체계망 구축 등 결과물을 내기도 했다.
 

박종한 경제외교조정관(오른쪽)과 조나단 프리츠 국무부 동아태국 선임부차관보의 면담 모습.(사진=외교부)
 
올해 초 열린 3차 협의에서는 미국 국무부 외교업무매뉴얼(FAM)에 신설된 '전문 트레이너' 항목을 신설한 것이 소기 성과다. 미국 밖 기업에서 도입한 산업 장비·기계·공정과 관련해 현지 근로자를 교육하거나 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하는 인력의 B-1 활용 기준을 구체화한 것이다. 미국 내에서 널리 제공되지 않는 고유한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미국 내 보수를 받지 않는 등의 요건이 적용된다.
 
재외공관은 이러한 협의 결과를 현장에 안내하고 미국 관계기관과 소통하며 이행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아주에는 삼성전자(005930)·SK(003600)·현대차(005380)그룹·LG(003550)·포스코·CJ(001040) 등 한국 대기업이 다수 진출해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1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1만7000여개의 직접 고용을 창출한 주요 대미 투자 거점 중 하나다.
 

조지아주에 위치한 주애틀랜타 총영사관 모습.(사진=김규리 기자)
 
이솔님 주애틀랜타총영사관 경제영사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조지아는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 등 주정부가 한국과의 경제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한국 기업을 적극 유치해 와 소통이 원활한 편"이라며 "총영사관도 지방정부와 의회 등을 접촉할 때마다 한국 기업의 동남부지역 투자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정부와의 협력에 더해 연방 이민당국과의 연락도 강화하고 있다. 기업 유치는 주정부와 협력할 수 있지만, 비자와 출입국 제도는 연방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이 경제영사는 "비자와 출입국 관련 법·제도는 미국 연방정책에 따른 것이어서 양국 중앙정부의 제도 개선과 총영사관의 이행 지원이 병행되고 있다"며 "관할지역 이민법 집행기관과 공항 당국 등에 협의 내용을 전달하고 원활한 입출국과 오해로 인한 불필요한 단속을 예방하기 위한 협조관계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법률 지원을 받기 어려운 중소 협력사에는 교육과 상담을 제공한다. 그는 "현지 유관기관과 협력해 중소·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이민법과 노동법·노무관리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며 "자체 법무인력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업체는 대응 여력이 부족한 만큼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애틀랜타총영사관은 'K-이니셔티브 협의체'에 기업지원 분과를 마련해 KOTRA 애틀랜타 무역관과 현지 경제인·단체 등과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노사발전재단의 미국 인사노무관리 안내서와 질의응답 자료도 기업에 안내하고 있다.
 
텍사스에서는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 프로젝트와 관련해 주재원과 가족의 거주가 늘면서 영사 민원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경은 주휴스턴총영사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틴 지역의 영사민원 편의를 높이기 위해 순회영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상·하반기 연 2회 실시하던 순회영사를 분기별 시행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견 전 비자 점검과 현지 당국과의 협력도 병행한다. 이 총영사는 "기업들이 파견 인력의 비자 종류와 실제 수행 업무가 부합하는지 사전에 확인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허용 범위가 불분명한 업무는 충분한 법률 검토 등을 거쳐 인력을 파견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스턴총영사관은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관세국경보호청(CBP) 현지 지부와의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
 
상담 이후 문제 해결까지…공관 인력·기관 연계 과제
 
기존 비자의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는 행정 조치와 E-4 비자 신설은 별개의 절차다. 한국동반자법이 시행되려면 미국 의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송석준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한국동반자법에는 최초 발의자 2명 외에 하원의원 13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했으며 상원에서는 아직 발의되지 않았다. 회기별 공동발의 의원 수가 줄어든 데다 미국 내 반이민 기조도 강해져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법안 통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지 지원 역시 비자 발급과 입국 안내에서 끝나서는 근로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해소하기 어렵다. 앞선 현지 취재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의료비 부담, 주거 확보 문제 등이 확인됐다. 직원이 체류자격을 갖췄더라도 일하고 생활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체류 상담은 공관, 노무·안전 문제는 고용노동부, 협력사 지원은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나뉘는 만큼 기관 간 연결도 필요하다. 공관이 파악한 애로를 관련 부처의 지원으로 연계하고, KOTRA와 현지 경제단체를 통해 필요한 정보와 후속 조치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법무·인사 담당자가 없는 소규모 협력사도 상담 이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국회는 후속 대책의 이행 여부와 지원에 필요한 인력·예산을 점검할 방침이다. 송 위원장은 "별도 보고와 국정감사를 통해 문제점과 후속 조치를 확인하겠다"라며 "부족한 재외공관 인력과 지원 기능을 국회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 공관들은 이민당국과의 연락을 강화하고 법률 교육과 순회영사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파견 전 실제 업무를 확인하고, 체류 중 사고나 노동·생활 문제에 대응하는 일은 여전히 기업의 준비와 지원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 자체 대응이 어려운 협력사에 상담 이후의 후속 지원까지 연결할 수 있을지가 현지 지원 체계에 남은 과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애틀랜타=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댈러스·오스틴=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
 

김규리 경청하고 질문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