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003060)가 '타법인 증권 취득'을 목적으로 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섰지만, 취득 대상조차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부터 조달하기로 해 논란이다. 발행주식총수의 78%에 달하는 물량을 최대 주주 단독 참여로 찍어내면서도 정작 취득 대상은 미확정인 상태다. 적자에 허덕이는 모자회사 상황을 고려할 때 해당 유증이 이뤄지면 소액주주들의 지분 가치만 희석될 가능성이 커 시장의 비판이 거세다.
(사진=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
'타법인 증권 취득' 명분 200억 조달…대상은 '미확정'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최대 주주인 에이프로젠을 대상으로 2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조달 자금은 전액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으로 용도를 못 박았지만, 정작 거래상대방과 증권 발행회사, 취득가격 산정근거는 모두 '미확정'으로 기재됐다.
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유상증자 자금으로 취득할 타 법인에 대해 "현재까지 결정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
발행가액과 이사회 결의, 납입일, 신주 상장 예정일(내달 2일)까지 일정이 모두 확정된 상황에서도 정작 200억원을 어디에 쓸지는 여전히 백지상태인 셈이다. 자금 조달 절차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정작 자금 사용처는 정하지 않은 상태다. 자금조달 목적의 실체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통상 인수·합병(M&A) 목적의 자금 조달은 인수 대상과의 협상이 상당 부분 진척된 뒤에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처럼 거래 대상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액의 자금부터 확보하는 이번 방식은 시장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발행 규모도 작지 않다. 예정 발행 주식 수는 보통주 1270만 6481주로, 증자 전 발행주식총수 1626만 1203주의 78.1%에 달한다. 발행가액은 기준주가 1748원 대비 10% 할인된 1574원으로, 최대 주주 단독 참여로 진행돼 기존 소액주주의 지분 희석 폭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유증은 정관 제9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특정인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발행 예정 주식은 상장일로부터 1년간 의무 보유가 걸려 있어 별도의 증권 신고서 제출 대상 또한 제외됐다. 절차적 요건은 갖췄지만, 정작 자금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실체적 내용은 비어 있다.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날 최대 주주인
에이프로젠(007460) 역시 20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며 조달 자금의 용도를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 증권 취득'으로 명시했다. 모회사가 CB로 자금을 조달해 자회사의 제3자배정 유증에 그대로 투입하고, 자회사는 다시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제3의 법인 지분을 사겠다는 구조다.
취득 대상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회사 측 설명을 고려하면, 해당 자금이 실제로 그룹 밖 자산 취득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계열사 사이를 맴돌다 그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자금부터 오간 셈이다.
대규모 물량의 저가 발행을 견제할 최소한의 내부 장치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증이 안건으로 올라온 이사회 결의에 사외이사 1명과 감사위원이 모두 불참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에이프로젠, 유증·CB 오가며 자금 지원 반복…재무 여력도 빠듯
에이프로젠의 이런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짚어볼 대목이다. 공시된 최근 6개월간 거래 내역을 보면 지난 3~8월 용역 매출 등으로 19억원, 4월에는 오송 공장 토지·건물 등을 담보로 630억원을 제공했고 같은 달 20억원 규모 유상신주에 참여했다. 5월에는 제19회 CB 100억원을 인수했고, 6월에는 추가로 90억원 상당의 담보를 제공한 데 이어 7월에도 2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유상증자와 CB 발행을 오가며 반복된 자금 지원 패턴에 대해 최대 주주의 지분 확대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지적을 꾸준히 받아온 만큼 이번 유증 결정 또한 같은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에이프로젠이 지난해 매출액(결산 기준) 1180억원, 영업 적자 956억원을 기록해 재무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것 또한 의구심을 키운다. CB로 빚을 내 자회사 지분을 늘리는 구조를 통해 관련 부담을 시장으로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의 실적 부진 속에서 자금 조달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를 더한다. 회사는 올해 상반기 447억원의 매출, 영업손실은 311억원을 기록했다. 바이오사업 부문은 305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로 실적 악화를 주도했다. 제약 사업 부문도 33억원 규모 손실을 냈다. 반도체사업 부문만 22억 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뿐이다.
실적이 악화 상태에서 취득 대상조차 정해지지 않은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이라는 명분을 내걸며 소액주주의 지분 희석을 감수하는 유상증자를 감행하는 점에서 시장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