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BBB)②안 팔린 BBB채권, 결국 개인에게…위험 고지 '빈틈'
크레딧 우려에 기관 수요 위축…미매각 물량 개인에 셀다운
위험등급 고지에도 ‘기관 미매각’ 이력 빠져…투자판단 한계
공개 2026-08-20 0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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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BBB급 회사채 금리가 급등한 데 이어 중앙그룹 계열사의 신용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비우량채를 향한 투자심리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공모채 시장의 문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사모채와 은행대출 등 대체 조달 수단을 찾고 있다. 수요예측에서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한 미매각 물량은 증권사가 떠안은 뒤 기관과 리테일 시장에 다시 매각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BBB급이라도 재무구조와 상환능력에 따라 투자수요가 엇갈리면서 기업별 자금조달 여건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IB토마토>는 BBB급 회사채의 조달 경로 변화와 미매각 위험의 이전, 신용도에 따라 재편되는 시장 구조를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송혜림 기자] BBB급 회사채 시장의 투자 주체가 기관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용 우려가 커지면서 기관투자자들이 수요예측 단계에서 비우량채를 외면하자 미매각 물량을 떠안은 증권사들이 리테일 시장을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재판매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문제는 개인이 사들이는 채권이 기관 수요예측에서 외면받은 물량인지, 발행사의 신용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반기 BBB급 회사채의 미매각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증권사의 셀다운 과정과 위험 고지 수준을 둘러싼 금융소비자 보호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하반기 '미매각' 폭탄 온다
 
18일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발행된 BBB+급 이하 회사채는 총 13건이다. 발행사로는 엘에스엘엘중앙과 한진(002320), 이랜드월드, 한솔테크닉스(004710), AJ네트웍스(095570)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한 곳은 동화기업(025900)과 한진이다. 동화기업은 1년 6개월물 400억원 모집에서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해 전액 미매각됐고, 한진은 1년물 200억원 모집에 190억원의 주문을 받아 10억원이 미매각됐다.
 
연초 BBB급 회사채가 비교적 흥행할 수 있었던 데는 발행 시점의 영향도 컸다. 당시에는 대형 크레딧 이벤트가 본격화하기 전이었고 금리 여건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비우량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유지됐다. 실제 이랜드월드는 올해 상반기 두 차례 수요예측에서 모두 모집액 이상의 주문을 확보했다. 지난 4월에는 300억원 모집에 730억원의 주문이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4월 이후 제이알글로벌리츠(348950)와 중앙그룹 계열사의 연쇄 부도가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크레딧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긍정적' 전망의 BBB급 회사채마저 미매각되면서다. 이랜드월드는 오는 19일에 다시 최대 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설 계획이나, 시장에선 이번엔 미매각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회사채가 미매각된다고 해서 발행 자체가 무산되는 건 아니다. 대표 주관사가 미매각 물량을 인수한 후 기관이나 리테일 시장에 재판매(셀다운)하기 때문이다. 증권사 입장에선 미매각 물량을 계속 안고 있으면 채권 평가손실이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물량을 털어낼수록 이점이다. 반면 개인투자자로선 주식 대비 안정성이 높고 은행 예적금보다 수익이 높은 회사채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여겨진다.
 
 
다만 개인 투자자가 사들이는 회사채가 비우량일 경우 소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란 점에서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비우량채는 신용위험이 높기 때문에 수익률은 높고 가격은 낮아진다. 이에 따른 기대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비우량채는 기본적으로 부도위험뿐만 아니라 신용등급 하락, 유동성 위험도 공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적정가격에 매도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보통 우량채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대부분 소화되지만, 비우량채는 기관들이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의 몫으로 흘러가게 된다.
 
올해는 특히 개인들이 기관이 외면한 채권을 순매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전체 회사채 순매수 규모는 14조 5405억원으로 전년 동기간(23조 2797억원) 대비 크게 줄어들었다. 다만 개인이 사들인 회사채가 전체 회사채 순매수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에서 25.4%로 상승했다.
 
증권사 현업 IB 부서에 있는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예전이면 기관에서도 소화했을 비우량채지만 최근 크레딧 시장이 경색되며 눈에 띄게 매수세가 줄어들었다"라면서 "시간이 지나 시장이 완화되면 다시 기관들의 순매수가 늘어날테지만 하반기에 중앙그룹같은 사태가 번복되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산 주식이 '미매각 물량'?…금융소비자 정보 비대칭성 도마
 
금융 소비자들은 자신이 매수하는 비우량채의 위험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현행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19조에 따르면 금융상품판매업자가 일반금융소비자에게 상품을 권하거나 소비자가 설명을 요청하는 경우 금융상품의 중요 사항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회사채는 '투자성 상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히 투자에 따른 위험과 위험등급이 설명 대상이다.
 
또, 금융위원회가 지난 2023년에 마련한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에서도 투자성 상품에 대해 시장위험과 신용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험등급을 산정하고, 소비자에게 등급별 위험수준 등을 설명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투자성 상품의 중요 설명 사항은 투자대상·투자위험·위험등급·수수료 등이 거론된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회사채 판매 고지 현황을 살펴본 결과, 여러 증권사들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투자설명 화면이나 상품설명서에 원금 손실 가능성이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 등을 안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카카오톡 등의 소통 채널을 통해 신용등급의 변동 현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곳도 있었다.
 
다만 정작 회사채가 기관 수요예측에서도 미매각되어 나온 고위험 사채란 점을 고지하는 곳은 없었다. 이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채권의 셀다운 경로를 면밀히 알 수 없어, 자신이 구매하는 채권이 얼마나 위험한 상품인지 쉽게 인지할 수 없다. 또, 발행사가 완전 자본잠식 상태이거나 관리종목에 지정되는 등의 크리티컬한 이슈도 소비자가 먼저 증권사에 확인을 요청하지 않는 한 증권사가 소비자에게 고지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이처럼 기관투자자가 신용 분석을 거쳐 외면한 물량이 정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개인에게 넘어가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리테일 시장이 사실상 BBB 시장의 최종 종착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7월 중앙그룹 계열사인 JTBC의 회사채와 유동화 전자단기사채 판매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했다며 민원을 제기해, 금융감독원이 신한투자증권과 키움증권(039490)의 현장 검사에 착수한 바 있다. 채권은 주로 온라인 채널을 통해 유통됐으며 점포가 없는 키움증권은 대다수 물량을 온라인으로 판매한 것으로 추정됐다. 금감원은 두 증권사가 JTBC의 재무 악화 위험을 인지하고도 회사채를 발행·판매했는지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고객이 먼저 회사채 정보를 물으면 그 후에 수익률이나 신용등급을 비교하여 고지하고 있다"라면서 "물론 고령자나 초기 투자자 등 각 고객 성향에 맞게 회사채를 추천하는 게 맞지만, 최근엔 금융소비자 보호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예년만큼 무리해서 회사채를 판매하고 있진 않다"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선 소비자들이 온라인 채널을 통해 쉽게 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만큼 증권사들의 위험 고지 의무를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우량 채권의 셀다운 경로를 상세하게 공개해서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 부담을 낮추고,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 역시 주식을 판매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는 투자자들이 직접 기업의 재무를 살피고 증권사에 매수하고자 하는 회사채 정보에 대해 면밀히 묻는 게 최선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송혜림 기자 diving@etomato.com
 

송혜림 한 걸음 더 깊게, 꼼꼼하게, 예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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