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도 못 막은 회사채 한파···재무·수익성까지 다 잡아야 팔린다
10월 수요예측 참여율, 작년보다 84% 줄어···유동성 축소 영향
기관 옥석 가리기 확대···말뿐인 ESG보다 기업 내실 중요
공개 2021-11-18 09:30:00
이 기사는 2021년 11월 16일 12:47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회사채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이른 겨울을 맞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이달부터 테이퍼링(Tapering 자산 매입 축소)에 나선 데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는 등 유동성 축소가 본격화하면서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ESG 등 흥행 요소뿐만 아니라, 내실까지 갖춘 기업이어야 수요예측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6일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10월 회사채 순발행금액은 1조6161억원으로, 3조2655억원이던 지난 9월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순발행금액은 총 발행액에서 만기도래분 상환액을 뺀 금액으로, 자금조달 상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지난 10월 한 달 수요예측 참여율(수요예측참여금액/수요예측금액)도 265.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9%포인트 줄었다. 미매각이 발생한 수요예측도 지난 10월에만 무려 7건이었는데, 해당 기업 모두 신용등급 A의 기업이었다.
 
IB 업계에서는 미 연준의 테이퍼링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등 유동성 축소가 현실화하면서 기관투자자의 투심이 약화한 것으로 분석한다. 유동성 감소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고, 금리 상승기에 채권을 샀다가 채권가치 하락으로 평가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미국·중국 등의 경기 둔화 우려도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수요예측 실패와 높은 금리 등의 부담으로 회사채 발행에 뛰어드는 기업도 줄었다. 11~12월 회사채 수요예측을 앞둔 기업은 이달 17일 예정인 보령LNG터미널과 12월2일 예정인 삼양식품 두 곳뿐이다. 기업들은 회사채 대신 기업어음(CP)과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CP)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이달 10일 기준 CP 발행 잔액은 77조9041억원으로, 10월1일보다 3조7000억원 이상 늘었다.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CP) 잔액 역시 같은 기간 4조5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은행들의 기업대출도 대폭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 통계에 의하면 10월 중 은행 기업대출 증가 규모는 10조3000억원으로, 7조7000억원이던 지난달에 비해 2조6000억원 늘었다. 9조2000억원이던 지난해 10월보다도 5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10월 기준으로는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최대폭의 증가다. 회사채 발행을 피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의 수요와 가계대출 축소에 기업대출을 확대하려는 은행의 수요가 일치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회사채 시장 한파에 최근에는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ESG 채권을 들고나왔음에도 수요예측에 실패한 사례가 나왔다. 지난 11일 이랜드월드는 만기 2년물 1000억원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인 10억원의 매수 주문만을 확보했다. 이랜드월드는 이번 채권을 마곡 연구개발센터 건립을 위한 ESG 채권으로 발행했고 금리 범위도 4.5~5.5%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제시했지만, 미매각 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다. 
 
 
미매각의 주요 원인으로는 재무건전성·수익성 약화로 인한 신용도 불안이 꼽힌다. 이랜드월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4조6315억원으로 전년도보다 22.17% 줄었고, 영업이익은 128% 감소하며 적자 전환했다. 당기순이익은 무려 294.39% 줄어 3676억원 손실이 났다. 총차입금의존도도 올해 상반기 기준 50%를 넘고 있고, 순차입금의존도 역시 42.6%를 기록하며 신용평가사의 건전성 기준인 30%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을 BBB0/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코로나19로 영업실적이 저하되고 재무 부담이 확대된 가운데, 패션을 제외한 여타 사업 부문에서의 더딘 실적 회복세를 고려하면 확대된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설명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ESG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금리 인상이 겹쳐 더 이상 ESG라는 간판만으로는 수요예측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졌다”라며 “자금 활용 목적과 수익성·재무 상황 등이 확실해야 기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진(002320)은 BBB+ 등급이고 금리도 2년물 3.373%·3년물 4.320%로 이랜드월드보다 낮았지만, 지난달 27일 공모채 400억원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240억원의 주문을 받는 흥행을 기록했다. 한진은 지난 7월에도 ESG 채권을 포함한 6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740억원을 끌어모았다. 지난해 매출·영업이익이 모두 성장하고 당기순이익이 흑자전환하는 등 수익성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고, 올해 상반기에도 당기순이익이 지난해보다 무려 2593% 증가한 1912억원을 기록하는 등의 성과를 낸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진의 경우 부채비율도 166.8%로 건전성 기준인 300%를 밑돌며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순차입금의존도도 37%로 비교적 건전한 편이다.
 
회사채 모집 자금의 활용처가 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한진이 회사채 한파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지목된다. 한진은 이번 공모채로 조달한 자금을 전액 휠소터(Wheel Sorter) 도입 등 설비 확충에 활용할 방침이다. 휠소터(Wheel Sorter)는 자동으로 택배를 배송 지역별로 분류해 주는 장비로, 분류 시간 단축 등 운영 효율 상승을 통해 비용 절감과 택배 종사자 근로 환경 개선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석탄발전 등 ESG에 역행하는 사업을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지만, 지난 7월 회사채 공모 당시 ESG 채권을 모두 열 수송관 공사에 투입한다는 점을 인정받아 수요예측에 성공했다. 열 수송관을 활용한 집단에너지사업은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여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며, 개별난방방식보다 대기오염 물질을 덜 배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제 업계의 눈은 수요예측 예정인 보령LNG터미널과 삼양식품(003230)으로 쏠리고 있다. 보령LNG터미널의 경우 신용등급이 AA0로 안정적인 편이고 올해 상반기 수요예측에 성공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실적이 정체된 상황이고, 부채비율과 순차입금의존도도 상반기 기준 각각 555.6%·74.9%로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시장 경색을 뚫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창사 이래 최초로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삼양식품 역시 올해 들어 분기 기준으로는 실적이 나아지고 있지만, 전년 대비로는 아직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3분기 기준 매출액은 지난 분기보다 약 11% 늘었지만,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는 0.36% 적은 수준이다. 영업이익도 전 분기보다는 12%가량 증가했으나 작년에 비하면 32%가량 줄었다. 다만 부채비율 67%·순차입금의존도 –2.5%로 재무건전성이 매우 높다는 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삼양라면의 인지도와 생산량도 늘고 있다는 점 등이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미국 연준은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계속되는 물가 상승 우려에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는 만큼 회사채 시장에서도 기업의 내실과 수익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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