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둘러싸고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의문을 표했다. 투자은행(IB) 전문가 역시 현산의 행동에서 인수 의지를 찾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난 17일 '산업은행 온라인 기자 브리핑'에서 이 회장은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 대한 의견을 냈다. 이 회장은 "중요한 건 상호신뢰"라면서 "상호신뢰가 전제돼야 충분하고 안전하게 딜을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나는 현산을 신뢰하고 있다"면서 "현산 측도 우리를 신뢰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하자"라고 덧붙였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출처/산업은행
이 회장은 '신뢰'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며 강조했다. 이는 지난 9일 현산이 보도자료를 통해 '아사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점검하자'라며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책과 아시아나항공의 존속 방안 마련을 산업은행에 요청한 것이 대한 대답이다.
전문가들은 현산의 요구에서부터 의아해했다. 20년 이상 인수·합병(M&A) 계약을 한 IB업계 관계자는 "우선 계약 조건을 바꾸자는 쪽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라면서 "어떤 근거로 얼마를 깎아달라고 해야 할 지와 같은 구체적인 제안을 해야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의 경우 현산은 산은에 지원책 마련을 요청했다"면서 "요구인지 요청인지 모르겠지만, 산업은행이 현산에 지원책과 존속방안을 제출하고 검토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27일 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
금호산업(002990)은 아시아나항공 관련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현산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6868만8063주를 3228억원에 인수하고, 2조177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2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출처/뉴스토마토, HDC현대산업개발
이 회장은 재협상을 서면으로 하자고 요구한 현산에 불편한 기색도 내비쳤다. 그는 "1960년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서면협의를 왜 하려고 하는가"라면서 "멀리떨어져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산업은행으로) 찾아오면 된다"라며 대면협상을 재차 촉구했다.
이 회장 특유의 웃음과 넉살과 함께 그는 완곡하게 현산이 제안한 협상 방식을 거절했다. 앞서 현산은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 이후 4조5000억원의 추가 부채가 인식됐다"라며 "향후 서면으로 협의하고 싶다"라고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자료와 관련해 반박자료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현산은 △기준 재무제표상 재무상태와 계약 체결 이후의 재무상태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 이유 △계약 체결일 이후 추가자금 차입 규모의 산정 근거 △영구전환사채로의 변경 조건 △차입금의 조건·사용 용도·상환 계획 등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공식적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산의 요구 사항과 문제 제기에 대해 제 3자인 M&A 협상 전문가들은 현산의 협상 의지가 떨어진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다른 IB 관계자는 "현산의 전반적인 태도가 아시아나항공 매각거래가 철회될 경우, 그 이유를 다른 쪽으로 전가하려는 모습"이라면서 "협상테이블에 앉으려는 의지를 찾기 어렵다"라고 분석했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아시아나항공을 사는 순간 1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기에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서 "지금보다 인수가가 크게 줄어들면 모르겠지만, 구주 매출 자금은 금호그룹의 사활이 걸린 자금이기에 이 역시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상황이라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계약 파기와 같은 최악의 상황도 상정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최 부행장은 "현재 (현산의 인수 포기와 같은) 플랜B를 언급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M&A를 할 경우, 딜 드랍을 상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언급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