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이성은 기자] 국내 은행권이 베트남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최근 급증하는 중국계 자본 공세로 인해 경쟁 환경이 녹록지 않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현지 금융 생태계가 커지고 있지만, 중국 본토 은행을 선호하는 '차이나 머니'의 특성상 국내 은행들이 파고들 틈이 좁아지고 있어서다. 이에 은행권은 직접 영업 대신 '신디케이트론(집단대출)' 참여 등 우회 전략을 통해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각 사 )
베트남 FDI, 5년 내 '최고치'…주도권은 싱가포르·중국으로
6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베트남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액은 285만4000만달러다. 신규 투자와 증액 투자 모두 각각 연초 대비 18.6%, 48% 증가했다. 특히 집행액은 전년 동기 대비 8.5% 늘어난 188억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5년 내 최고치다.
눈에 띄는 점은 투자 주체 변화다. 투자액 기준으로는 싱가포르, 프로젝트 건수 기준으로는 중국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3분기까지 814개 프로젝트에 69억 1000만 달러를, 중국은 1530개 프로젝트에 34억 2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전체 투자액 비중은 싱가포르(24.2%), 한국(15.1%), 중국(12%) 순이다. 미·중 무역 갈등 심화로 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 생산 기지로 부상하면서, 관세를 피하려는 중국 기업과 싱가포르 자본이 최근 3년 새 베트남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린 결과다. 싱가포르는 제조업과 부동산, 대형 공단 개발 등을 중심으로, 중국은 전기·전자 등 첨단 분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누적 기준으로는 베트남 최대 제조업 투자국이지만 최근 흐름은 신규 보다 기존 공장 증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전기·전자 중심의 제조업이 북부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대베트남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48.9% 증가했으나, 신규 투자는 상위 투자 5개국 중 가장 작은 330건에 그친 반면, 증액은 213건으로 30억달러에 달했다. 이미 2010년대에 주요 생산기지 이전을 완료한 한국 기업들이 설비 확충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계 자본 선호에 '신디케이트론'으로 우회 공략
국내 기업의 투자 확대와 글로벌 자본의 베트남 러시에 맞춰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현지 법인을 통해 영업 중이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2017년 현지 법인을 설립, 지난해 3분기말 기준 26개의 영업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연계 현지 리테일 영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으며, 현지 가맹점과 소상공인 집금계좌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여신 상품으로는 일반대와 시설대, 신용대, 지급보증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신용장 등도 취급한다.
신한은행은 ANZ은행 베트남 리테일 부문을 인수하면서 베트남 내 외국계 은행 중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호치민과 하노이 등지에서 지점을 운영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BIDV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애경케미칼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현지 시설 확충은 국내 은행들에 확실한 호재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대베트남 신규 투자 대비 증액 투자 규모가 큰 이유다.
하지만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 기업에 대한 영업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중국 기업의 경우 중국계 은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과 싱가포르 모두 중국 본토 자본을 베트남에 끌어오고 있어 국내 은행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벽을 뚫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평가다.
중국계 자본의 폐쇄적인 금융 거래 관행 탓에 국내 은행들은 법인 영업 대신 '신디케이트론' 참여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신디케이트론은 다수의 금융기관이 차관단을 구성해 공통된 조건으로 융자하는 중장기 대출이다. 단독으로 중국 기업의 주거래 은행이 되기는 어렵지만,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프로젝트에 차관단으로 참여해 수익을 내겠다는 계산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베트남 현지에 중국 자본이 들어오고 있어 해당 법인과 프로젝트 등에 대해 다방면으로 공략하고 있지만 중국 은행을 선호하는 탓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현지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점차 영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