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벼락부자보다 벼락거지가 많은 시장
주식시장 역대급 호황에 늘어나는 '빚투 개미'
지수 홍보로 시장 왜곡…기업 체질 개선 먼저
공개 2025-11-12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1월 12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작년 이맘때쯤인 걸로 기억한다. SK하이닉스(000660) 주가가 10만원대에서 꿈틀대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SK 측 한 지인이 SK하이닉스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며 내부에서는 삼성전자(005930)를 이미 따돌렸다는 얘기까지 돈다고 했다. 지금와서 보니 기자생활을 접고라도 그때 주식을 샀어야 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전세계 주요국 가운데 수익률 1위다. 코로나19 시절의 침체는 잊힌 지 오래다. 가뭄에 콩 나듯 하던 불기둥도 요샌 ‘우후죽순’이다. 코스피 지수는 잠시 조정을 거치더니 다시 4000대로 올라섰다. 한땨 국장을 떠났던 서학개미가 동학개미로 복귀할 정도다.
 
겉으로만 보면 돈 놓고 돈 먹기 시장인듯 한데, ‘벼락부자’ 보단 ‘벼락거지’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 코스피는 분명 역대 최대치를 연일 경신 중인데, 본인 계좌는 여전히 파란색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고점에서 물린 주식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상대적 박탈감이 더하다. 여윳돈이 없는 2030세대는 투자기회마저 놓쳐 더 크게 다가온다. 벼락거지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문제는 없는 돈까지 끌어쓴다는 데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88조2709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하루 만에 1조4383억원이나 급증했다. 이날 신용융자 잔고도 25조8225억원을 기록하며 4년 2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일 장중 한때 코스피 지수가 6%대 폭락하자 시중 자금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빚투를 그동안 너무 나쁘게만 봤는데 ‘레버리지 투자’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라며 주식투자를 사실상 권장한 셈이다. 마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분노한 서민들을 주식투자로 눈을 돌리게 하려는 의도인지 의심스럽다.
 
증시의 구조적 왜곡도 심각하다. 최근 시장을 끌어올린 건 반도체·방산·대형 수출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비중만 40%에 육박한다. 거대 기업 몇 곳이 지수를 끌어올린 결과지, 시장 전체가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이제 지수가 4000을 넘어 5000을 논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에게 중요한 건 지수가 아니라 자산 회복과 미래의 안정성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지수를 홍보하며 개미를 현혹한다. 지수 상승이 시장 전체의 성장성을 말해준다고 왜곡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은 빚내서 뛰어드는 도박판이 아니다. 정책이 지수 띄우기에 치우치면 개미의 안정적인 미래는 더 멀어질 뿐이다.
 
기업에도 부정적이다. 기업 성장에 관심이 없는 개미만 잔뜩 몰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더 이상 지수 홍보가 아닌 기업 체질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일부 수출 중심 대형주가 아닌 기술력과 성장성을 가진 중소기업에 자금이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 전체의 체력이 붙는다.
 
이와 함께 투자자 보호와 금융 관련 교육 강화도 필요하다.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분산투자와 리스크 관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유도해야 한다.
 
실질적 성장의 토대를 마련해 개인투자자가 다시 시장을 믿고, 그 투자 경험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건전한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호황이다.
 
금융시장부 유창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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